새롭게 공존하기 I
이렇게 살아있는데 공통점이 단 하나라도 없을까. 관계란 거기서부터 시작돼.
그렇지만 다른 점이 훨씬 많기 마련이야. 그럴 땐 이면의 소리를 찾아보면 어떻겠니?
그렇게 너희들의 앞날에 아름다운 여정이 되길 바라.
단, 서로가 서로를 살펴봐주는 거야. - 심인 서점
[아모스와 보리스] 윌리엄 스타이그 | 우미경 옮김 | 시공주니어
그림책 [아모스와 보리스]에 아직은 어색한 시선을 주고받는 고래와 생쥐가 함께 있다.
자기 체구의 몇 갑배되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항해를 시작했지만 어쩌다 홀로 망망대해에 표류하게 된 생쥐가 죽음을 떠올리고 있을 때 기적처럼 고래가 나타난다.
공존할 수 있다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두 생물이 함께하는 여정 끝엔 무엇이 남을까.
사람과 달리 순수한 이 둘은 너무 쉽게 포유류라는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생쥐는 바다에서 살 수 없고, 고래는 육지에서 살 수 없다. 어찌 보면 생존과도 직결될 정도로 큰 다름을 갖고 있는 두 존재는 어떻게 긴 여정을 이어갈 수 있었을까. 그것에서 내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얼까 생각해본다.
내겐 보리스와 같은 친구가 있다. 큰 아이 유치원을 오며 가며 우연히 알게 된 동갑내기 엄마였다. 우리의 만남은 아모스와 보리스 같았다. 별 일 없이는 만날 일이 거의 없었다는 뜻이다. 유치원 일로 모임에서 만난 첫날 우리는 나이가 같고 경력을 가졌던 분야가 같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을 그만둔 시점까지 비슷해 단숨에 친밀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런데 왠 걸! 현실판 아모스와 보리스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공통점을 알고 난 후부터 다른 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유독 마땅히 비슷한 구석조차 없단 생각까지 들었다! 우리가 서로 경청하지 않은 게 아니다. 열심히 듣고 말하는데도 좀처럼 의견이 다른 길을 갈 때는 새벽까지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시간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내가 이 친구를 붙잡고 이렇게까지 하고 있는 게 어이없을 정도로 우리는 붙어 지냈다. 그런 어이없는 우리를 꼭 이어주는 딱풀이 바로 그림책이었다. 팽팽하게 우리의 관계를 이루던 띠지가 새롭게 휘어지며 신선한 흐름을 타게 된 어떤 날이 있었다. 처음으로 공감하며 함께 감상한 책이 생긴 거다. [아모스와 보리스]였다. 내 마음에 쏙 든 책을 친구도 좋아하는 걸 알았을 때 기쁨이 정말 컸던 기억이 난다. 그런 종류의 반가움은 잊히지 않는다. 이 세상 가장 진한 에스프레소처럼 짧고 강렬한 반가움이다.
그런데 이 친구와 헤어지게 됐다. 남편과 심도 있는 결정의 시간을 갖고 이사를 결정했지만 마음이 심란했다. 어떻게 이 말을 해야 할까 고민이 되었다. 연애도 아니고 이 무슨 유난이냐 이해 못 할 사람들도 있을 테다. 더욱 이해가지 않을 심정은 친구와 간단하게라도 이별 의식을 치르고 싶었던 마음이다. 엄마로서 친구로서 함께 공부하고 연구하는 그림책 벗으로서 온 마음으로 세계관을 열고 소통하며 함께 성장해왔기에 안녕이라는 말로는 아쉬움을 달랠 수 없었다.
자신의 최정상에 서 본 많은 사람들이 팬들 앞에서 멋진 모습으로 마지막을 장식하고 싶어 하는 심리가 뭘까. 헤어지는 연인이 굳이 이별 여행을 가려는 심리가 무얼까. 이번엔 좀 알 것 같다.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표현하지 않으면 지금은 달리 설명할 방도가 없을 것 같다.
우리의 한없던 여정 속에서 내가 배운 것을 정리하며 마무리한다.
이렇게 살아있는데 공통점이 단 하나라도 없을까. 관계란 거기서부터 시작돼.
그렇지만 다른 점이 훨씬 많기 마련이야. 그럴 땐 이면의 소리를 찾아보면 어떻겠니?
그렇게 너희들의 앞날에 아름다운 여정이 되길 바라.
단, 서로가 서로를 살펴봐주는 거야.
우정이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요즘 우리 첫째가 밀고 있는 문장 패턴. ^^)♡ - 심인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