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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와 흰구름

이사한 동네 첫 외출에서 만난 까마귀와 흰구름에 대한 이야기

나윤이에게.


이건 '나윤아, ' 하고 바로 시작하면 될 글인데 꼭 이렇게 형식을 갖추어야 직성이 풀리는 나를 친구로 둔 너에게 쓰는 첫 편째 편지야. ^^


내가 이사하던 날, 너는 나에게 편지를 썼더라. 이런 일은 살면서 참 행복한 기억이 돼. 

그리고 그 편지 글에서 발견한 건 겉멋과 속멋 중 어느 것 하나를 놓지 못하고 발버둥 치며 사는 나를 친구로 여겨 온 고마운 '너'였어.


네가 우리 집에 처음 놀러 왔을 때 그냥 '저기 저금통이 있구나'라고 말할 때, 나는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우리 아이들은 도금 수저 만들어야지~'라며 엄하게 대답했던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니 그 대목에서 난 손으로 얼굴 반쪽을 가렸어. 왜 그런 데서 심각할까 나는? ^^


진지함과 우스꽝스러움의 꽤나 기이한 조합. 나의 이런 양면성을 재미있게 봐주는 네가 있어서 고마워.


양면성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며칠 전 일이야. 평택에 와서 5일 만에 첫 외출을 하게 되었어. 웃지 마. 백신 맞으러 가는 건데도 왜 그렇게 홀가분하던지. 마침 날도 상쾌해 아주 맑은 하늘에 그렇게 예쁜 하얀 구름은 얼마나 오랜만인지 잘 생각도 안 났어. 그림도 잘 모르는 내가 저 순백색 속에 어떻게 저런 노랑과 저런 파랑이 아련히 깃들어 있을 수 있는지 알 수 없었어. 이 세상에 가장 신비한 건 자연의 색이 아닐까 생각했었어. 그렇게 눈 알을 열심히 굴리며 운전을 하다가 갑자기 새까만 까마귀 떼를 만났어. 전깃줄에 즐비하게 늘어선 셀 수 없는 어마어마한 까마귀 집단을 본 거야. 순간 나는 압도되었어. 왜 인지 상상해봐. ^^ 흠칫 놀라서가 아니야. 예뻐서. 이번엔 까만색이 너무너무 예뻐서 멈춘 거야. 그 장면을 그냥 스케치해버리고 싶었어. 사진을 찍는 걸로는 성에 안 차는 아름다움이었어. 그 하얀색과 까만색의 공존에서 오는 매력은 블랙 앤 화이트는 언제나 옳은 조합이겠구나라는 확신이 들 정도였어.


집에 도착했을 때 나만의 황홀했던 감상은 와장창 깨지고 말았어. 글쎄 말이야, 평택 까마귀라고 검색을 해보니 경기 남부 쪽 까마귀 떼 출현으로 까마귀가 아주 밉상을 받고 있는 거야. 맘 카페에서 나오는 말들은 '소름 돋는다', '까마귀 소리가 듣기 싫다', '너무 까매서 무섭다' 뭐 그런 거였어. 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나에겐 꿈결 같이 다가온 장면이 비주류의 감상인 거야.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럴 수는 있을 것 같더라.


코로나로 아이들을 오롯이 데리고 있으면서 이삿짐을 정리하는 일 말이다. 과연 이 부담을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 게다가 30년 가까이 된 집에 살다 신축 아파트로 오니 그 세월 동안 건축적인 설계가 얼마나 많이 달라졌겠어. 완전히 새로운 공간에서 완전히 새로운 동선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그 속에서 나만의 철학이 담긴 육아 동선을 짜면서 동시에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참... 곡예를 하는 것 같았어. 나와 남편의 뇌는 전시 상황처럼 풀가동되고 손과 발은 쉼 없이 굴러가는 기계처럼 첫 며칠 밤은 거의 꼬박 새웠지.


그래서 내가 백신을 맞으러 가는 길에서 해방감을 느꼈고, 그 때문에 세상이 아름다워 보인 게 아닐까. ^^ 

그리고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어. 바로 너와 함께 연구하는 그림책의 마음?! 언젠가부터 나도 모르는 사이 그림책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 것 같아. 터키의 작가, 멜리케 귄위즈의 [까마귀 노래자랑 대회]라는 그림책이 있어. 까마귀의 시끄러운 울음소리를 소재로 문젯거리를 유쾌하고 지혜롭게 잘 풀어낸 이야기야. 언젠가 까마귀 떼를 접할 아이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어. ^^


한편으로는 까마귀가 시베리아로부터 날아오는 겨울 철새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어. 그러니 우리 사람들과 잘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일도 중요하겠구나 라는 생각도 들어. 까마귀는 실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매우 영리한 새이고 북유럽 신화로 거슬러 올라가면 지혜를 상징할 정도로 예로부터 길조로 여겨져 왔대. 그런데 인간의 이해관계에서 비롯해 의미가 반전되었다는 거야. 그런 양면적인 까마귀의 특성을 철학적인 서사로 푼 아름다운 정보 그림책을 한 권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도 떠올라.


양면성. 까마귀와 새하얀 구름의 아름다운 대비가 육아의 결은 사뭇 다르지만 이렇게 열심히 공존하고 있는 너와 나의 관계를 비추는 듯하기도 하고. 나의 공상과 상상을 망설임 없이 내어 놓을 수 있는 친구가 있음에 감사하는구나.


다음에, 또, 만나.


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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