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차다. 만나는 사람들이 "날씨가 춥네요." 하고 인사를 한다. 산에도 겨울바람이 나무사이로 쌩쌩 지나간다. 바람이 신났다. 나무둥치를 붙잡고 "바람이 신났네." 하고 나지막하게 말을 건넨다. 찬바람에도 소나무 둥치에 켜켜이 붙은 겉껍질이 따뜻하다. 매끈매끈한 둥치도 가만히 쓰다듬는다. 매서운 바람에도 나무둥치에 손을 대고 있으면 온기가 전해져 온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저마다의 온기를 가지고 있나보다. 빈 몸뚱이로 서 있는 나무에서도 포근함과 친근함이 묻어난다.
거침없이 나무 사이를 지나는 바람을 맞으며 서 있는 커다란 나무의 너른 품에 눈길이 간다. 어릴적 시골마을에서 나무를 타고 놀던 아이들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내가 살던 시골은 마을 앞에 강과 들이 펼쳐져 있지만 마을 뒷쪽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겹겹이 쌓인 산을 옆으로 펼쳐놓은 듯 고만고만한 산들이 골짜기를 따라 깊이를 더해가며 이어져 있었다. 서로 이웃하며 둘러 선 산에는 저마다 이름이 있었다. 작은 골짜기, 깊은 산 할 것 없이 산의 특징을 딴 이름이었다. 어미산, 서지골, 집터골, 불당골, 샘골, 잔솔밭,두텁골 등등
동네 아이들은 그 산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가리지 않고 철따라 해야 하는 일을 했다.
그 때에는 봄이면 산에 각종 산나물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봄 햇살이 두터워지면 아이들은 샘골의 양지바른 곳에 올라가 고사리같은 손으로 취나물을 캤다. 샘골에는 이름처럼 샘이 있었다. 노래 가사처럼 새벽에 토끼가 세수를 했을 것 같은 맑고 청량한 옹달샘이었다. 진달래가 앞다투어 꽃봉오리를 터트릴 즈음 옹달샘 옆 양지바른 곳에서는 솜털이 보송보송한 취나물이 삐죽빼죽 올라왔다. 아이들은 토끼처럼 폴짝거리며 샘에 가서 물부터 마셨다. 새로난 이파리에 물을 떠서 장난스럽게 들이키고는 작은 칼을 꺼내 소쿠리에 취나물을 캐서 담았다. 집으로 오는 길에는 잊지 않고 논둑과 밭둑으로 들어가 쑥과 달래도 캐서 담았다.
취나물이 억세져서 먹을 수 없게 되면 고사리를 꺾었다. 고사리를 꺾고 도라지도 캤다. 소쿠리에 봄나물이 수북하게 쌓이면 소쿠리를 옆구리에 끼고 집으로 갔다. 집집마다 밥상에는 아이들이 캐온 것들로 만든 반찬이 올라왔다. 도라지 무침, 쑥국, 달래 된장찌게는 가난한 살림에 먹을 것이 변변치 않았던 사람들에게 영양을 공급하고 힘을 내게 해 주는 보약이었다.
'내가 캐온 봄나물로 만든 반찬을 가족들이 맛있게 먹는구나.' 하는 보람과 뿌듯함이 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봄이 되어 나물을 뜯어 오는 일은 내가 당연히 해야 할일이라고 무심히 넘겼던 것 같다.
여름에는 산에 소를 몰고 가서 풀을 뜯겼다. 취나물이 많은 산, 비가 올 때 귀신이 나온다는 산, 소를 자주 잃어버리는 산, 무덤이 많은 산, 소나무가 많은 산, 재를 넘으면 도시로 곧장 갈 수 있는 산을 가리지 않고 올라 갔다.
모내기철에 시작된 소먹이는 추석 때까지 계속 되었다. 가을이 깊어 풀이 말라서 소가 먹을 것이 없을 때에야 소먹이가 끝이 났다. 가을산에서는 도토리와 굴밤을 줍고 머루와 다래를 따 먹었다. 다래는 달았다. 게다가 열대과일 처럼 찐득하고 풍부한 맛이 났다. 엄마는 도토리와 굴밤으로 밤색에 도토리 향이 짙게 풍기는 굴밤 떡을 해 주기도 했지만 대개는 묵으로 만들어져 겨울에 시집가고 장가갈때 귀한 잔치 음식이 되었다.
겨울방학에는 아이들도 산에 가서 나무를 한 짐씩 했다. 추운겨울에도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으며 솔갈비를 긁어 모으거나 죽은 가지를 주워 모아 새끼로 꽁꽁 묶은 나뭇짐을 이고 내려왔다.
그 때는 아이들도 어른들이 하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해냈다. 어른과 다른 점은 아이들에게 일은 일이기도 했지만 놀이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산은 일터이기도 하고 동시에 놀이터이기도 했다.
운동을 위해 요즘 내가 오르는 산은 다 같은 산이지만 내가 나고 자란 어릴 적 시골마을에 있던 산과 다른 모습이다. 어린 시절에 산에서 볼 수 있었던 대부분의 것들이 없다. 오직 한가지만 빼고, 그 한가지가 바로 커다란 나무둥치에 두갈래 세갈래로 갈라진 튼실한 가지가 뻗어있는 나무들이다.
어릴 적 튼실한 나무가지들은 아이들의 좋은 놀이터였다. 남자아이들이 좀 더 높은 곳에 잘 올라가기는 했지만 여자아이라고 올라가지 못하는 법은 없었다. 위험하다고 말리는 어른도 없었다. 누군가 나무에서 떨어져서 팔이나 다리가 부러졌다는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아마 떨어진다 해도 사방에 푹신한 흙과 풀이 있어서 많이 다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이들은 원숭이처럼 나무를 잘 탔다.
아이들은 나무 꼭대기를 쳐다보며 누가 더 높이 올라가나 내기를 했다. 나무 위에 올라가면 아래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나보다 높이 올라간 사람 있으면 나와봐." "날 잡아 봐라." 하며 나무타기 실력을 마음껏 뽐내고 자랑했다.
여름방학 때마다 시골에 오던 도시 소년이 있었다. 옆집 아지매의 조카였는데 그 오빠는 크고 날씬한 몸에 얼굴이 유난히 희었다. 그 오빠는 도시 아이답지 않게 나무를 잘 탔다. 나무가 휘청거릴 정도로 높은 가지까지 올라가 거기서 휘파람을 불었다. 한번도 그 오빠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지만 속으로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동네에서 우리 오빠처럼 나무를 잘 타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오빠는 달리기와 높이뛰기에서 군 대표선수였을 만큼 운동신경이 좋았다. 어른들이 다람이라고 했다. 다람쥐처럼 나무를 잘 타서 붙은 별명이었다.
오빠는 봄이 되면 나무에 올라가 새집에서 새알을 꺼내왔다. 여름에는 소들이 산에서 풀을 뜯는 동안 나무에 올라가 장수하늘소며 사슴벌레를 잡아서 동물채집 숙제를 했다.
오빠는 내게 나무에 올라가지 말라고 했다. 계집아이들은 올라가면 안 좋다고 했다. 나는 겁이 많아서 나무에 올라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오빠에게 들켜서 혼날까봐 더 엄두를 내지 못했다.
등산로에는 거칠거칠하고 위로 가지가 두 개 세 개가 튼실하게 뻗어 있는 나무가 많다. 때때로 동심으로 돌아가 나무 아래에서 양말을 벗고 나무를 안고 발을 나무 둥치에 밀착시켜 한 발 한 발 위로 올라가 보고 싶다. 옆으로 뻗은 가지 위에 앉으면 세상 편안하게 앉아 동네를 굽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튼실한 가지도 이런 내 마음을 안다고 하는 것 같다. 나도 사실은 편안한 자리를 마련하고 누구라도 올라와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그게 나의 꿈이라고.
나무의 꿈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지만 한겨울에도 온기를 잃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위로를 건넨다. 겨울 바람이 신나게 뿜어내는 한기에 엄살이 나서 겨우겨우 발걸음을 뗀 날, 생명이 있는 것끼리 온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가끔 동심을 불러일으켜 주는 건 덤으로 받는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