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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고기1

by 분홍소금

이불 밖은 추웠지만 이불 속은 기분 좋은 온기가 게으름과 짝이 되어 밖으로 나가는 걸 방해했다. 지난밤에는 방바닥이 아랫목 뿐아니라 윗목까지 뜨끈뜨끈했는데 새벽녘이 되자 윗목 부터 식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내가 일어날 시간이 다 되어 갈 때 쯤 따뜻함을 되찾았다. 엄마가 아침 일찍 밥을 짓느라 아궁이에 땐 땔감의 불기운이 고래를 타고 들어가 식은 구들을 데웠기 때문이었다. "조금만 더 자면 안 되나?" 한창 열이 올라와 따뜻한 이불 속을 빠져나가야 하는 것이 못내 아쉬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라고 해 보았지만 부엌에서 그만 일어나라고 소리를 지르는 엄마의 성화를 이길 재간이 없었다. 이불 속에서 밍기적밍기적 빠져나오는데 며칠만 있으면 방학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머리 속에서 겨울방학이라는 단어가 떠오르자 몸놀림에 활기가 돌았다.



나는 여느 날처럼 엄마가 미리 데워 놓은 물을 바께스에 퍼 담고 마당 한 켠으로 가져갔다. 우그러지고 희끗희끗한 세수대야에 뜨거운 물과 찬물을 섞어 세수를 하려는데 엄마가 그 새를 참지 못하고 부엌에서 소리를 질렀다.

"소금아 밥상 안 펴고 뭐 하노?"

"낯 좀 씼고 갈게." 물을 끼얹는 손을 빠르게 놀리며 서둘러서 세수를 마쳤다.



방에 들어가 이불을 대충 개고 방 한가운데에 두레상을 폈다.

행주로 상을 닦고 식구 수 만큼 수저를 가지런히 놓고 나서 부엌으로 들어가 부뚜막에 엄마가 썰어둔 김치와 된장 독에서 꺼내 놓은 삭힌 고추가 담긴 접시를 날라다 놓고 다시 부엌으로 갔다.



엄마는 무쇠 솥 뚜껑을 옆으로 밀어 놓고 식구들의 밥을 푸고 있었다. 밥솥에서 김이 한꺼번에 피어 올라 따뜻한 안개처럼 주걱을 잡은 엄마를 감쌌다. "쪽(국자)가지고 어서 국 떠라."

엄마가 밥을 푸는 사이 나는 국을 떴다. 아버지와 오빠의 국을 따로따로 한 그릇 씩 정성스럽게 담았다. 그리고 나서 엄마가 나와 언니, 엄마 셋이 먹을 밥을 한 양푼이에 담듯이 셋이 먹을 국을 양푼이 하나에 떠 담았다. 밥상에 차린 김이 무럭무럭 나는 밥과 된장국이 식욕을 돋우었다.


엄마는 밥을 다 퍼낸 무쇠솥에 쌀 씻을 때 받아 놓은 뜨물을 붓고 숭늉을 끓이느라 조금 늦게 방으로 들어왔다. 식구들의 밥 그릇에 밥이 다 비어갈 때쯤 언니가 부엌에 가서 식구들이 먹을 숭늉을 떠 올 것이다. 아침에는 유독 김치가 맛이 없다. 나는 배가 부를 때까지 밥과 된장 국을 번갈아 떠 먹었다.



언니가 떠 온 숭늉은 쌀뜨물로 끓인 것이라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지만 숭늉 그릇을 들고 꾸물거릴 시간이 없었다. 급하게 마신 숭늉이 목구멍이 데일 것처럼 뜨거웠다. "앗 뜨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손으로는 책보를 집어 들었다.



학교는 멀지 않았지만 아이 걸음으로 20분은 족히 걸어야 했다. 가는 길에 드문드문 낯 익은 아이들이 보였다. 학교 가는 길은 길을 빼고는 사방이 논이었다. 가을에 벼를 베고 난 논에는 질척해진 흙 바닥에 벼를 베내고 남은 벼 꼬투리가 쭝굼쭝금 솟은 채로 남아 있었다. 나는 논에 물이 질펀하게 고여 있기를 바랐다. 논 여기저기 물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썰매를 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올해는 꼭 논에서 썰매를 타고 싶은데, 비가 안 오면 우짜지. 제발 어서 비나 눈이 내려서 꽁꽁 얼어야 될낀데.' 학교를 가는 내내 작년 처럼 논에서 썰매를 타지 못하고 허탕을 칠까 마음이 논바닥처럼 질척거렸다.



교실에 도착해 보니 반 아이들 중 먼저 온 2명을 제외한 나머지 친구들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비어 있는 자리를 쳐다보며 '내 친구 호미가 같은 3학년이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생각했다. 학교에 입학한 지 벌써 2년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스스로도 어이가 없었지만 저절로 그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호미는 바로 앞집에 사는 동갑나기 친구이다. 호미는 위로 딸 여섯과 막내인 아들이 한 명 있는 딸 부잣집의 넷 째이다. 얼굴은 엄마를 닮았지만 행동은 부지런하고 빠릿빠릿한 엄마와는 반대로 느릿느릿 늑장을 부려서 자주 혼이 나곤 한다. 엄마가 나를 꾸짖는 소리가 담장을 넘어 앞집으로 날아가듯이 호미를 야단치는 소리가 우리 집에서도 잘 들린다. 호미가 야단 맞는 소리를 들으며 '너도 오늘 나랑 똑 같구나.' 한다.



야단치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호미의 할머니이다. 할머니는 며느리가 아기를 낳을 때마다 딸을 낳는 바람에 날이 갈수록 신경이 예민해졌다. 어른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어서 안다. 할머니는 손녀들을 '잘난 가수나들'이라고 비꼬며 함부로 대했다. 특히 호미를 많이 구박 했다. 집안 일을 시킬 때도 말끝마다 욕을 접미사처럼 갖다 붙였다. "빨리 마루 안 닦고 뭐하노 이xx년아, 도랑에 가서 걸레 빨아오라고 언제 말했는데 여지껏 뭐하고 자빠졌노 이xx년아," 했다.



"호미야 너거 할매 니 한테 왜 그리 욕을 많이 하노? 할매가 그리 욕하는데도 니는 너거 할매가 안 밉나?" 하고 물으면 호미는 "내가 잘 몬한께 그라지." 하면서 히죽히죽 웃어 넘겼다.



호미가 7살 때 드디어 호미의 엄마가 아들을 낳았다. 집안의 경사였다. 가장 좋아한 것은 두말할 것 없이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손자를 불면 날아갈까 쥐면 꺼질까 하며 애지중지했고 손자에 관한 일이면 어떤 것이든 좋은 의미로 해석했다. 손자 바로 위의 누나까지 남동생을 보게 한 누나라고 하면서 뜬금없이 귀애했다.



그렇지만 정작 그 손자를 업어 주고 안아주는 것은 호미 차지였다. 아무리 손자가 좋아도 할머니가 직접 손자를 돌보기에는 연로한 체력이 따라주지 않았다. 할머니는 손자 사랑을 주로 말로 했다. 손자가 기분이 좋아 방긋방긋 웃을 때는 온 마음을 다해 얼러 주었고, 손자가 울거나 배가 고프거나 기저귀를 갈아야 할 때는 호미를 재촉하며 잔소리나 욕을 했다. 밖에 나가 손자를 자랑하는 것도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할머니의 주된 일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할머니의 뻔한 자랑에 지겨워진 동네 사람들이 건성건성 대답을 하기 시작하자 돌 떡을 돌리며 실컷 자랑을 한 이후로는 그만두었다. 그래봤자 손자의 생일에 생일 떡을 돌릴 때를 벼르고 있겠지만 말이다.



막내가 업을 수 있을 만큼 자라자 그때부터 호미는 동생를 업어주어야 했다. 호미는 아기가 백일도 채 되지 않을 때부터 업고 다녔다. 아기는 젖을 먹거나 자는 시간을 빼고는 늘 호미의 등에 업혀 있었다. 호미는 아기를 재우거나 얼러기 위해 동네를 돌아다니거나 간단한 심부름을 가기도 했지만 대개는 아기를 업고 우리 집에 와서 나랑 놀았다. 아기를 업고 줄넘기를 하다가 할머니한테 들켜서 갖은 욕을 들은 적은 있지만 줄넘기만 아니면 막내를 업고 나랑 놀아도 할머니는 별 말을 하지 않았다. 덕분에 공기 받기도 하고 소꿉놀이도 했다. 소꿉놀이는 아기 덕분에 훨씬 더 재미나게 할 수 있었다.



호미가 빨리 여덟 살이 되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호미도 같은 마음이었다. 아니 나보다 더 기다렸다. 여덟 살이 되면 호미와 나는 학교에 다니게 될 것이고 그러면 아기 없이 둘이서 더 재미나게 놀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예상과 기대는 빗나가고 말았다. 호미의 할머니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호미가 남동생을 1년 더 돌봐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호미의 부모님도 할머니의 뜻을 꺾을 수가 없었다. 나는 할 수없이 입학식 날에 하얀 손수건을 가슴에 달고 혼자서 힘없이 터덜터덜 갔다. 가장 기쁜 날이 되어야 할 입학식 날을 하루 종일 시무룩하게 지내야만 했다.



내가 2학년이 되었을 때 호미는 1학년이 되었다. 호미가 나랑 같은 국민 학생이 되었으니까 드디어 같이 놀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호미는 한 살 아래였지만 함께 놀던 경아와 같은 1학년이 되었고 둘이는 자연스럽게 단짝이 되었다. 학교 갔다 온 후에도 동생를 데리고 우리 집보다 경아네를 더 많이 갔다. 경아 동생도 호미의 동생과 또래였기 때문에 동생들 끼리 놀게 하면 편했기 때문이었다.



호미의 남동생이 3살이 되어 호미의 두 여동생과도 잘 놀 수 있게 되자 나와 호미는 다시 친해졌다. 예전처럼 늘 함께 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몇 가지는 확실하게 함께 할 수 있었다.

특히 겨울방학에는 더 그랬다. 아침 밥을 먹고 나면 나와 호미는 언니들과 함께 산에 가서 나무를 해와야 했지만 무논에 얼음이 꽁꽁 얼면 동생들을 데리고 지칠 때까지 실컷 썰매를 타고 놀 수 있었다.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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