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농한기였지만 두 손 놓고 쉴 수는 없었다. 어른은 어른대로 땔감을 마련하고 겨울로 미뤘던 동네의 대소사에 일손을 보태느라 여전히 분주했으며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할 일이 있었다. 어른 처럼 나무를 해 오고 점심에는 식은 밥이 담긴 그릇을 고구마 위에 얹어 고구마를 삶고 도랑에 가서 얼음을 깨고 걸레를 빨아서 집안 소제를 하고 어두워지기 전에 소죽도 끓였다. 동생이 있는 집에서는 동생을 돌보았다. 아이들은 집안 일을 하면서도 니집 내집 할 것 없이 고만고만하게 가난하고 거칠고 가부장적인 부모에게서 아침 저녁으로 욕세례를 받았다.
아이들에게 놀이는 집안 일과 부모의 잔소리에서 벗어나 마음껏 뛰놀며 몸과 마음이 건강을 회복하는 시간이었다. 겨울에도 아이들은 틈만 나면 친구들을 불러내어 함께 놀았다. 함께 노는 친구의 범위는 넓었다. 또래 친구는 물론이고 동네의 언니, 오빠, 동생 모두 함께 어울려 놀았다. 양지 바른 곳에서 딱지치기와 땅 따먹기, 재기 차기를 했고 아이들이 많이 모이는 날은 부잣집 타작마당에서 편을 갈라 자치기를 했다.
바람이 좋은 날은 들에 나가서 연날리기를 했다. 창호지를 방패모양 가오리 모양으로 오리고 꼬리를 만들어 대나무를 쪼개서 만든 연 살을 균형을 잘 맞추어 붙이면 방패연, 가오리연, 꼬리연이 되었다. 심혈을 기울여 만든 연에 연실을 달면 완성이었다. 아이들은 연과 연실이 감겨진 육각형 모양의 육모 얼레를 들고 나가 높이 더 높이 날리기 위해 연을 조종하느라 추운 줄도 모르고 지칠 줄도 모른 채 바람을 맞으며 이리저리 뛰어 다녔다.
썰매는 아이들에게 더할나위 없는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스케이트는 겨울에만 할 수있는 놀이였다. 저녁에 윗목에 떠놓은 물사발에 살얼음이 얼 때 꽁꽁 얼어 붙은 무논에서 지치는 스케이트는 그래서 더 특별했다. 스케이트는 오빠나 아버지가 주로 만들었는데 한사람이 넉넉하게 앉을 수 있도록 했다. 스케이트 위에서 아이들은 양반 다리를 하거나 꿇은 무릎을 세워서 자세를 잡고 손을 최대한 앞으로 뻗어 끝이 송곳처럼 뾰족한 손잡이를 얼음에 꽂은 후 몸통에 반동을 주었다. 스케이트가 주욱 미끄러져 슈웅하고 앞으로 나가면 아이들은 스케이트를 밀어낸 손잡이를 위로 들어올리며 환호성을 질렀다. 마음껏 내지르는 환호와 솟구친 희열이 아이들의 마음에 박혀 있던 멍 자국과 상처를 몸 밖으로 몰아 냈다.
언니나 오빠들은 어린 동생들을 앞에 앉히고 둘이서 탔다. 둘이서 타다가 얼음이 깨져도 위험하지 않았다. 무릎이 까이거나 엎어져서 이마를 부딪혀 피가 나는 일이 있었지만 그런 일은 돌부리에 걸려도 일어나는 일이었다.
물에 젖은 바지가랑이가 꽁꽁 얼고 코에는 콧물이 줄줄 흘렀지만 낮 볕에 녹기 시작한 얼음이 스케이트 날에 얼음이 울통불퉁해져서 더이상 스케이트가 나가지 않을 때까지 아이들은 논바닥을 종횡무진 누비고 다녔다. 온통 젖고 진흙이 묻은 옷 때문에 욕을 먹었지만 엄마의 욕지거리는 무게를 잃고 아이들의 건강한 몸과 희열로 뒤덮인 마음에서 퉁겨나갔다.
우리집에는 스케이트가 2대가 있었다. 오빠 전용 스케이트와 언니와 내가 타는 스케이트였다.
오빠 것은 좁고 날렵했다. 손잡이 끝에 박힌 못도 더 길고 뾰족했다. 우리 것은 펑퍼짐하고 못도 짧았다. 내가 언제 부터 혼자서 탔는 지는 모르지만 학교에 들어간 그 해 겨울 방학에 혼자 타다가 스케이트가 중심을 잡지 못해 헛도는 바람에 옆에서 신나게 달리는 스케이트와 부딪혔다. 스케이트가 곤두박질을 칠 때 손등과 무릎이 얼음에 쓸렸다. 쓰라린 줄도 모르고 있다가 쓸린 무릎에서 피가 나는 것을 보고 울음이 터졌다.
엉엉 울면서 스케이트를 들고 집으로 갔다. 집에 아무도 없을 줄 알았는데 엄마가 쇠죽 솥이 걸려 있는 아궁이 앞에 앉아서 숯불에 뭔가를 굽고 있다가 나를 쳐다보았다. 무릎에서 피가 난다고 해도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는 다짜고짜 옷 갈아 입고 불 앞으로 오라고 했다.
을음을 그치고 젖을 옷을 갈아 입는데 그제서야 익숙하고 맛있는 냄새가 풍겨오는 것을 알아챘다. 냄새의 진원지는 아궁이였다.
"엄마 이게 뭐꼬? 토끼 고기 아이가?"
"하모, 피가 나도 괜찮다 고기 먹으면 다 낫는다. 식구들 오기 전에 많이 묵어라."
"오늘도 오빠가 토끼 잡았는 갑네, 까치밥으로 잡았나, 고(철사로 만든 덫)로 잡았나?"
"그렁거 알아서 뭐할끼고 잔소리말고 어서 묵어라."
얼음에 쓸렸던 상처는 언제 나았는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없어졌다. 쓸린 부분은 서서히 아물었지만 내복에 덮여서 눈에 띄지 않다가 옷을 갈아 입을 때 "어, 다 나았네." 했다.
교실에 늘 앉던 책상에 자리를 잡고 앉아 스케이트와 까졌던 무릎과 토끼고기와 호미를 떠올리고 있을 때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오셨다.
빨간 스웨터와 검정 치마를 입은 선생님이 그 날따라 유난히 예쁘다고 생각했다. 선생님은 처녀이고 면사무소 근처에 살았다. 면소재지 중에서도 가장 번화한 곳에 커다란 상점이 있었는데 선생님은 그 집 딸이었다. 상점의 문은 항상 열려 있었다. 언젠가 엄마를 따라 장에 간날 그 상점 앞을 지날 때였다. 엄마는 상점을 가리키며 "너거 선생님이 저 점빵 집 딸이다." 했다.
"엄마 점빵하면 돈 많나?" 엄마는 "몰라, 쪼매난 애가 그런 걸 와 묻노?"했다.
나는 선생님의 부모님이 어떤 사람들인가 궁금해서 문 안을 기웃거렸다. 상점안에서 일을 보는 사람이 왔다갔다 하고 있었지만 선생님과 무슨 관계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보다 뜻밖에 내 시선을 잡아 끈 것은 문 안 구석진 곳에 산처럼 쌓여 있는 빈 소주병이었다. 우리 집에서 익숙하게 보던 술병이었다. "엄마, 술병 좀 봐." 라고 하자 엄마는 장돌뱅이 들이 장날에 마신 술병이라고 했다.
장날에 술에 잔뜩 취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돌아오는 아버지를 떠올리며 '빈 소주병 중에 아버지가 마신 것도 분명히 있을 것 같았다. '아버지가 술에 취한 모습을 우리 선생님도 보신 것은 아닐까? 선생님이 보셨다고 해도 설마 우리 아버지인 줄은 모르겠지? 몰라야 하는데, 선생님이 아버지의 술 취한 모습을 제발이지 보지 못했기를 바랐다.
첫 시간은 국어 시간이었다. 선생님은 지난 번에 우리가 써낸 시를 돌려주며 시를 써 봤으니까 이번 시간에는 편지를 써 보자고 하셨다. 선생님은 종이를 나눠주며 친구나 가족에게 편지를 쓰라고 했다. 지난 번에 쓴 시처럼 이번에도 선생님만 읽을 거라고 하시며 평소에 하고 싶었던 말을 글로 쓰면 된다고 했다.
나는 가족에게 쓸 생각을 잠시 해 보았지만 엄마나 아버지에게 하고 싶은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언니나 오빠에게 쓰는 것도 어색할 것 같았다. 내 편지를 반갑게 받아 줄 사람은 호미 밖에 없었다. 호미에게 편지를 쓰기 전에 먼저 선생님이 돌려준 시를 다시 읽어 보았다. 내가 처음 쓴 시이고 선생님께 칭찬도 받았으니까 호미한테도 자랑하고 싶었다. 편지는 책에 나오는 것처럼 표준말로 썼다.
호미에게
호미야 안녕, 잘 있었니?
아침에 학교에 올 때 논 바닥 봤니? 물이 너무 조금 밖에 없어. 물이 많이 갭혀야 되는데 어떡하지? 방학 전에 비가 오던가 눈이 왔으면 좋겠다.
호미야,
빨리 겨울방학이 왔으면 좋겠어. 내 머리 속에는 방학이 벌써 성큼성큼 들어 와서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단다.
호미야, 지금은 국어 시간이야 선생님이 편지 쓰라고 해서 너한테 편지를 쓰는 중이야. 지난 번에는 시를 써라고 해서 시를 썼어. 오늘 내가 쓴 시를 받았어. 선생님이 잘 썼다고 칭찬 해 주셨어. 너도 한 번 읽어볼래?
제목은 '소'란다.
호미야 시가 너무 아기 같다고 욕하지 마
제목 : 소
소는 비싸다.
아버지가 소는 큰 재산이라고 했다.
소는 일을 잘 한다.
소가 쟁기 질을 할 때
오빠가 소 코뚜레를 잡고
앞에서 땡기고
아버지는 뒤에서 고삐를 잡고
소한테 명령을 한다
이랴이랴, 자라자라, 워워
소는 소죽을 먹는다
소죽은 오빠도 끓이고 언니도 끓인다
사랑방 아궁이에 불을 때서 끓인다
오빠는 여름에 아버지처럼 소 꼴도 베온다
소가 소죽을 많이 먹고
빨리 엄마소가 되어
새끼를 자꾸자꾸 낳아서
부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끝
호미야 국어시간에는 글짓기를 많이 해서 좋아.
호미야, 안녕 잘있어.
12월 17일 너의 제일 친한 친구 소금이가
호미에게 쓴 편지를 선생님께 드렸다. 방학 전에 돌려 받았지만 쑥스러워서 호미에게 차마 전해 줄 수가 없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