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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하 May 04. 2020

“항상”과 “늘”

“다 왔다. 이제 여기까지인 것 같네.”


“그러게.”


“뭐 하고 싶은 말 없어?”


“음... 항상 응원할게.”


“거짓말 하지마. 어떻게 사람이 항상 응원해? 맨날 내 생각만 할거야?”


“아니...? 그거 알아? ‘항상’이라는 말은 ‘맨날’이라는 말과는 달라. ‘맨날’이라는 말은 ‘늘’이라는 말과 동의어이지, ‘항상’이라는 말과는 미묘하게 다르거든.”


“열차 시간 다와가는데 또 이상한 얘기 시작하려고 하네?”


“빨리 끝낼게. 들어봐. 자, ‘항상’이라는 말은 “언제나 변함 없이”라는 뜻이야. ‘늘’이라는 말은 “계속하여 언제나”라는 뜻이고.”


“비슷해보이는데?”


“철학에서는 ‘성향적 속성’과 ‘정언적 속성’을 나누거든?”


“벌써 머리 아프려고 해.”


“... 성향적 속성은 맨날 나타나지는 않지만, 그 대상 안에 잠재된 속성이야. 내가 백킬로짜리 아령을 들 수 있다고 해서, 맨날 그러한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


“너 백킬로 못들잖아.”


“아니, 그렇게 가정해보자고. 내가 그러한 성향을 가지고 있지만, 그 성향은 내가 그 아령을 들 때에만 드러나는 거야. 하지만 그 성향은 늘 나와 함께 있지.”


“그런데?”


“자, 반대로 정언적 속성은, 언제나 그대로 드러나 있는거야. 가령 네가 ‘못생겼다’는 말은, 네가 무얼 하건 늘 네게 드러나 있는 성격이야.”


“죽을래?”


“아니, 그렇다고 가정해보자고. 그러면 네가 웃든, 얼굴을 찡그리든, 밥을 먹든, 어쨌든, 넌 늘 못생김이 드러나 있어.”


“가정이라고 해도 점점 기분 나빠지려고 하는데?”


“자 이제 거의 다 왔어. 조금만 참아. 나는 널 늘 생각할 수는 없어. 우리는 이제 아주 가끔도 못만나게 될 테니까. 어쩌면 나는 내일부터 해야할 일에 집중해야만 할 수도 있고, 어쩌면 다시 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살아갈 수도 있겠지. 그 안에서 어쩌면 너는 아주 가끔만 생각하게 될지도 몰라.”


“나, 아주 가끔만 생각할거야?”


“적어도 늘 생각하지는 못하리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널 생각하는 것은 정언적 속성은 아냐.”


“...”


“그런데 말야, 나는 널 항상 응원할거야. 네가 앞으로 누굴 만나든, 누구와 다투고 또 사랑을 하든, 어떠한 직업을 가지든, 어떠한 표정으로 어떠한 마음으로 어떠한 방식으로 살아가든, 내가 너를 떠올릴 때는 말야, 그리고 누군가 오늘이든 내일이든 십년 후이든 삼십년 후이든 말야. 너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다면, 그때가 온다면, 나는 그때에도 너를 응원한다고 말할거야. 내가 들고자 원하기라도 한다면 그때마다 백킬로 아령을 들 수 있는 것처럼.”


“그래도 너 백킬로 아령은 못들잖아.”


“항상 응원할 거라는 것은 사실이야.”


“...이제 진짜 가봐야 할 것 같아.”


“그래. 늘 너를 생각할 수는 없어. 하지만 당분간은 늘 너를 생각할거야. 그리고 그 생각은 점차 사라지게 되겠지.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거야. 하지만 나는 항상 너를 응원할거야.”


“잘 지내. 아프지마. 술 조금만 먹어.”


“응. 당분간은 모르겠지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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