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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Apr 07. 2021

부활의 알람을 울려 구원의 이름으로

검은 詩의 용서


  저에게 단 하나의 종교를 고르라고 한다면, 저는 시를 고를 것이에요. 친정이 불교 쪽이라 불교도 경험해 보고 결혼하고는 남편을 따라 내내 교회에 다녔어요. 종교 모임에서 하는 말들은 하나같이 옳고 아름다워요. 새겨듣고 인생의 지침으로 삼아야 할 말들이 많아요. 법회에 다녀오면 깨달음에 한 걸음 다가간 나 자신의 무상(無常)에 대해 명상했고, 예배를 다녀오면 은혜로운 말씀에 한동안 눈물이 멈추지 않았어요.

  그러나 대부분은 그 순간이었어요. 여전히 나는 사람들의 잘못과 그에 대한 나의 태도와 내 안의 감정들에 어찌해야 할지 몰랐어요. 사랑과 자비와 용서와 베풂의 말씀을 듣고 와서는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친구에 대한 의심을 피웠어요. 종교가 생활이 되기까지는 나는 아직 미숙한 영혼이었어요.


  단 하나, 시만큼은 생활 곳곳에서 저를 깨웠어요. 저를 이르고 달래고 가끔은 혼내기도 하고 미소 짓게 하고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을 일으켰어요. 시를 쓰기 위해 자연에 좀 더 순수하게 다가가고 싶어 했고, 문학사와 역사, 철학에 이름을 남기고 간 이들을 떠올렸어요. 아이들의 미소를 닮은 시를 써보고 싶어 했어요. 밤을 새워 시어들의 목적지 없는 유랑을 지켜보기도 했어요.  

  무엇보다, 시는 내 안에서 끓어오르는 모든 것들을 잠자코 바라보아 주었어요. 나를 향한 사람들의 비난과 증오, 또는 내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비슷한 감정들, 결코 용서받지 못할 죄에 대한 끝없는 원망, 생각지 못한 곳에서 엉뚱하게 솟아오르는 무한한 용서의 마음, 탐욕, 시기, 질투, 좌절, 절망, 어리석음에서 비롯한 그르침 이러한 것들에 대해 시는 한없이 숭고한 손길과 발걸음으로 다가왔어요. 늘 시 앞에서는 저는 목자가 필요한 작은 양이 되고 깨치지 못한 중생이었어요. 시의 언어 안에서 용서는 참의미를 갖는 용서가 되었고, 속죄는 그제야 진정한 눈물을 흘렸어요.







  저에겐 이 시 말고도, '검은 시의 탄생'이라는 시도 있어요. 두 시가 쓰인 시점은 꽤 차이가 나는데도, 시의 형상은 모두 '검은'이에요. 전혀 의도한 바도 아니었고, 기억하고 있지도 않았어요. 이상하게도, 제게 시는 그랬어요. 시가 형상을 가진다면 '검은'일 것이다. 물론 밤에 쓰여서이겠지만, 그것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어요. 어설프게 궁금해하고 있다가 문득, 파블로 네루다의 시가 떠올랐어요. 그 안에서, 시의 비밀에 대한 힌트를 찾을 수 있었어요.              

                   

그래 그 나이 즈음이었어
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모르겠어.어디서 나왔는지,
겨울에서였는지, 강에서였는지.
모르겠어.
어떻게였는지, 언제였는지도.
아냐, 아니었어.
목소리도, 말도, 침묵도.
단지 어느 길가에서 날 불렀어.
밤 나뭇가지들에서,
번뜩 어떤 다른 것들 사이에서,
거센 불길들 속에서
혹은 혼자 돌아오는 길에,
거기에 얼굴 없이 있다가
날 툭툭 치는 거야.

- 파블로 네루다, <시> 중에서 -


  시는 원래, 그런 거였어요. 얼굴이 없고 형체도 없는 그 무언가. 그러나 늘 주위에 있다가 나를 툭툭 치는 존재. 그리고 나를 늘 일깨워주는 존재. 내 안의 죄와 용서와 구원과 바람과 웃음소리와 사랑, 모든 것을 흔들어 주고 채워주고 사라지도록 하는 존재. 이 것이 신이 아니면 무엇일까요.

  세상의 모든 시와 시를 쓰는 존재들과 시로 다가오는 것에 절을 올리고 예배를 드리며 남은 평생을 채워나가려 해요. 금강경의 구절, 잠언의 구절 모두 시의 형태를 갖추고 있어요. 시가 존재 자체로서 종교인 이유예요.


  저도 어디선가 갑자기 검은 모습을 하고 올 시를 받아들이려 해요. 세상사에 흔들릴 때마다, 내 안의 감정들이 나를 감고 덮치려 할 때마다 시를 붙잡고 기도하며 살아가려고 해요. 매 순간 시로 용서받고 새로 태어나고 구원받으려 해요. 그러다 보면, 시와 신의 공통점이자 종착지인 '사랑'에 이르러 있겠지요. 그래요, 결국은 '사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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