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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Jan 21. 2022

그들만의 작당모의(2)

< 작당모의(作黨謀議) 14차 문제(文題): 작당모의 >


(1)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피가 났는데 휴지가 없어서, 대충 옷에 쓱쓱 닦았다. 차에 시동을 걸고 예열을 하며 기다리는 동안 초록창에 '복숭아밭', '복숭아 과수원'을 검색했다. 시골이라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내비게이션에 '자연농원'을 입력하고 보니 21분이 걸린다.

  히터를 틀고, 왼손 가운뎃손가락 거스러미를 잡아 뜯었다. 피가 날 정도는 아니었는데 피가 난다. 그러고 보니, 그들이 낸 주제도 모두 그런 것들이었다. 피를 연상시키지 않지만 어쩐지 피와 연관 있다고 여겨지는 것들이었다. 삶이 죽음을 연상시키지는 않지만 끊을 수 없는 관계이듯이. 가위, 노을, 복숭아.

  복숭아, 라는 주제는 어쩌면 마지막 기회이자 힌트가 아니었을까. 이 매거진의 정체에 대한 힌트, 지금이라도 눈치채라는 기회.

  생과 사,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 같은 거창한 테마를 끌어오지 않더라도, 나는 그런 존재들을 아주 거부하거나 믿지 않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이 슬쩍 건네는 메타포들을 잘 챙겨 생활의 구석구석에 잘 끼워 넣는 편이었다. 할머니가 꿈에서 웃으시면 괜히 로또를 사본다던가, 반대로 울으시면 외출할 일이 있어도 취소를 했다. 얼굴 없는 이들이 집을 돌아다니는 꿈을 꾼 날은 남편도 하루 연차를 쓰게 했고, 길에서 죽는 꿈을 꾸면 괜스레 엄마 아빠에게 전화 걸어 객사한 조상이 있느냐 물어보곤 했다.

  그러니까 그건 꿈에 관한 것이었다. 이건 그냥 글쓰기라고, 그것도 한낱, 브런치 글쓰기. 그들이 먼저 쓰자고 했고 인정받는 기분이 들어 함께 했다. 처음 발행하던 날, 꼬리말을 붙이던 뿌듯했던 기억이 난다.


제대로 한번 써보자는 모의이며, 함께 생각을 나누며 어울려 살자는 시도입니다.


  함께. 함께, 라니. 함께, 라는 단어가 이렇게 이물감이 포함된 단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함께, 라는 단어는 원래 이물감, 이질감 같은 것과 결이 다른 단어이니까. 그런데 오늘 느낀 함께, 에는 사선이 포함되어 있었다. 사선線일지 사선線일지 모를 삐딱함이었다. 그 삐딱함을 일으켜 세우기에 조금 늦었다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애써 예열한 차의 시동을 껐다. 지금 필요한 건 복숭아 나뭇가지가 아니라 냉정함이었다. 차에 감돌던 열기도 빠르게 냉기를 회복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내게 기회의 열쇠를 던져 주셨어, 다행히 나는 잡은 거고 내 곁엔 할아버지가 있어.


  신발을 툭툭 던져 벗어놓고 외투는 식탁에 툭 던져놓고 단톡을 열었다.


- 다들 발행하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말이 없다. 그렇겠지, 말이 필요 없는 사람 아니 존재? 것들? 일 테니. 좀 더 기괴한 생각이 머리 속 바깥 쪽부터 어두운 색으로 스며들기 시작했지만, 그들과 함께 한 시간이라는 게 분명 내 인생에 뿌려져 있었다. 스며든 생각의 부분을 주욱 찢어 버렸다.  


  다시 읽어 보자, 할아버지가 준 힌트처럼 그들도 몰래 어디 구멍이나 흠을 내놨을지도 모른다. 영화에 보면 많이 나오지 않는가, 얇은 틈으로 햇살이 쏟아져 내리는, 그 틈으로 나가거나 결국 구조되는. 다시 읽어보니, 말 그대로 가관이다. 복숭아나무에서 죽은 그녀의 이야기, 복숭아 털이 닿아 사라지게 된 고양이, 복숭아를 싫어하게 된 이유. 복숭아와 죽음 또는 죽은 자를 열심히 연결 짓고 있는 한가운데서 나 혼자만 살리는, 살려내는, 기어코 은혜 갚고야 마는 복숭아를 썼다.

  확신의 순간 울린 알람, '아이들 하원.' 현실은 부지런하게 흘러 때를 놓치지 않는다. 다시 코트를 걸쳐 입고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다 읽어 보자, 어떤 단서를 찾게 될 때까지 읽고 잘 매듭짓고 진짜 그만 하자. 매거진의 맨 처음 글로 갔을 때,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문이 열렸다가 다시 닫혔지만 나는 그대로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매거진의 맨 처음 글이 '없다'. 그 또한 삭제'되었을' 것이다. 새로고침, 새로고침, 세 번째 새로고침에 전화가 왔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엘리베이터 탔어요. 금방 갈게요."



  아이들 밥을 먹이고 씻기고 나서 보니 글이 두 개가 더 없어졌다. 단톡에 묻고 싶지만 묻는다고 돌아올 것은 좀 더 비뚤어진 침묵 뿐임을 알고 있다. 첫째의 수학을 봐주고 받아쓰기를 봐주는 동안 폰을 손에서 놓치 못했다. 삭제의 순간을 목격하려는 나의 마음을 읽은 것이 분명하다. 12개의 글 중 9개의 글이 아직 살아 있다. 아이들 양치시키고 오니 또 하나가 줄어 있다.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그저 숫자의 크기에 반비례하게 늘어나는 조급함을 숨길 방도가 없을 뿐이다. 이 조급함마저 꿰뚫어 보고 있겠지. 인간이라 불안하고 인간이라 불만이긴 처음이다. 할아버지, 어떻게 해야 그만할 수 있는 건가요.


  지금은 글이 얼마나 지워지고 있을까, 라는 생각의 꼬리가 잠이 되어 아이들 눈을 가렸다. 폰을 들어 브런치를 켰다. 매거진 글은 4편. 복숭아만 살아 있었다. 남편은 당직이다. 할아버지, 제 곁에 계신 거죠. 4편이 지워지기 전 뭐라도 해야 한다.

  내가 낸 글제는 '비밀'이었다. 급하게 마지막 발행 글을 썼다. 그들이 갖고 있는 비밀에 대해. 그들이 왜 나를 선택했는지 모르겠지만, 그건 실수이자 실패야. 너희의 비밀은 이제 끝이야. 글을 쓰고 보니 세 편이 지워져 있다. 마지막 글, 은혜 갚는 복숭아만 남아 있다. 이 글로 할아버지는 그들만의 작당모의를 내게 알려 주셨다.

  글로 장난치는 것들은 글로 사단이 나야 한다. 맞춤법이고 퇴고고 다 필요없다. 마지막 글 발행이자 비밀이 탄로 나는 순간이다. 오른쪽 상단의 민트색 발행, 너에게 모든 것이 달렸다. 할아버지, 이제 진짜 그만 할게요. 발행.







  "엄마?"

  7살 유은이가 눈을 뜨자마자 하는 일은 엄마를 부르는 것이다. 노란 빛을 띈 붉은 햇빛이 커텐 사이를 비집고 고집스럽게 들어왔는데, 엄마는 아직이다. 엄마는 부르면 침대방 아니면 컴퓨터방에서 대답을 하고 나오곤 했다. 그런 엄마가 답이 없다.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어딨어. 엄마!"

  엄마가 아침부터 없다. 어제 잘 때만 해도 '내일 만나'하던 엄마였다. 엄마 어딨어.

  눈물도 닦지 않고 엄마를 부르던 유은이가 엄마뿐 아니라 엄마 작은 컴퓨터도 없어진 것을 알았을 때는 동생들도 모두 깨어나 울고 있었다.

  엄마아아아아아아!

  창밖으로 검은 새들이 푸드덕 날아올랐다. 비둘기인지 까마귀인지 모를 새였다.







- 다들 발행하느라 수고하셨습니다.
- 네, 이번에는 생각지 못한 변수가 생겨 마지막에 갑자기 서두르게 되었어요. 휘몰아쳤네요 ㅎㅎ
- 다음 글은 좀 더 여유 있게 써보도록 합시다. 이번엔 어쩔 수 없었지만, 다음 객원 멤버는 좀 둔했으면 좋겠어요. 젊고 둔하고 ㅎㅎ
- 글에 미친 자들은 쉬우니까 좀 여유를 갖고 골라보도록 하지요. 다들 글에 영혼을 너무 쉽게 담아요. 치유하고 나를 알아가고 위로하고 받고, 쉽게 만족하고 쉽게 자멸하고, 약한 영혼을 가진 자들이 글을 쓰지요. 글이 만만한 겁니다. 하긴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긴 하니까요.
- 글 신이여, 제발 저에게도ㅋㅋㅋㅋ 이런 작자들이 많은 곳이니 천천히 둘러보도록 해요^^ 다음 글제들 생각하시고요~ 글제에서 티 좀 내지 말고! ㅎㅎㅎ
- 그게 쉽지 않다니까 ㅋㅋㅋ 그럼 다들 천천히 둘러보시고 좋은 후보 있음 알려주시길! 전 이미 찾음 ㅋㅋ 초이스라고, 보신 분 있으십니까? 글이 나쁘지 않고 젊고. 둔할지는 아직 모르겠고 ㅋㅋㅋ



끝.




* 사진출처: 경북매일, 복숭아꽃



그간 함께 해오던 진우 작가님께서 일신 상의 사정으로 더 이상 함께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필진의 건강 및 신변의 변화 등의 이유로 작당모의는 3월까지 휴식을 가지려 합니다. 따뜻한 바람이 불 때 새로운 글들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4인 4색, 결 다른 사람들이 글쓰기 위해 모였습니다.

제대로 한번 써보자는 모의이며, 함께 생각을 나누며 어울려 살자는 시도입니다.

매주 목요일 매거진에 글로 작당 모의할 예정이니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자, 그럼 수작(手作) 들어갑니다~, 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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