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속았다. 33km,,,?
드디어 순례길 시작이다.
새벽 댓바람부터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언니랑 나는 대략 도착지점을 정했고
첫째 날의 도착지는 출발점인 포르투에서 36km 떨어진
Vila do conde라는 지역이다.
첫 번째 루트는 포르투의 해안길을 따라 쭉 걷기만 하면 되는 코스라
순례길 초보인 언니와 나는 33km 정도는 가뿐하지는 않더라도
쉬엄쉬엄 걸으면 걸을 수 있겠다. 라면 쉽게 생각했고
이 생각은 아주 큰 고통을 불러일으켰다.
처음 시작은 아주 상쾌했다. 도우루강을 지나 걷는 길은
시원한 새벽바람과 떠오르는 햇빛의 따뜻함과
이른 시간부터 순례길을 시작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인사로
아주 활기찼으며 에너지가 넘쳤기에!
특히나 순례자들끼리는 서로의 안전과 무탈한 순례길을 기원하며
"BUEN CAMINO!"라고 인사를 나눈다.
사실 이웃끼리도 인사를 잘 나누지 힘든 요즘이라
서로를 향해 웃으며 나누는 이 인사가 참 좋았다.
그렇게 10km 정도를 걸으니 남녀노소를 불문한 순례자들이 많아졌고
포르투갈의 뜨거운 햇빛을 잔뜩 받으며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광활한 대서양이 눈앞에 펼쳐졌다.
잠시 앉아 바다를 바라보고 싶었지만 갈 길이 멀었기에 잠시 눈으로만 담고
다시 바삐 걸었다. 걸을수록 다리는 아파왔고, 배는 고파졌고, 햇빛은 강렬하고
당장이라도 바다에 빠지고 싶었다.
유유히 바다 수영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아직도 제일 아쉬워하는 점이
바로 바다 수영을 하지 않고 오로지 도착에만 집착했다는 점이다.
대서양 바다 옆길에 난 나무 데크길을 계속 걷다 보니
점점 발바닥까지 아파왔다. 발을 잠시 풀어주려고 데크 난간을 잡고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툭툭. 내 어깨를 두드렸다.
네덜란드에서 오신 할아버지 한 분이 나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잘 들어보니 나보고 “발목이 아프니? 막네지움 하나 줄게”라고 하시는 거다.
막네지움? 막네지움이 뭐지? 하면서 건네받은 물건에 적혀있는 건
‘마그네슘 파우더’였다.
마그네슘이 발목이나 아픈 곳에 좋다며 하나 건네시더니
언제부터 순례길을 걷기 시작했냐며 스몰토크를 이어갔다.
할아버지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발목을 풀어주다가
뒤에 할머니 한 분에게 인사를 건네며 자신의 와이프라며 말씀하셨다.
그렇게 할아버지, 할머니와 “부엔까미노!”를 외치고 헤어졌다.
사실 순례길에서는 장거리를 걸어야 해서 다리 아픈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챙겨주신 할아버지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고 이게 바로 순례길의 묘미구나 싶었다.
마침 근처에 가게가 있어 점심을 먹고 물 한병 사서 마그네슘을 타서 마셨다.
그렇게 걷고 걷고 장장 33km를 걸어 드디어 숙소에 도착했다.
정말 숙소까지 5km 남은 지점부터는 한 걸음 한 걸음이 100m처럼 느껴졌고
남은 5km가 500km 되는 것처럼 고됬다.
숙소에 도착해서 호스트랑 스몰토크를 하면서
오늘 33km 걸어오는데 너무 힘들었다. 이거 정말 33km가 맞냐
라고 물으니 포르투에서 Vila do conde까지는 36km라고 하는 것이다.
어쩐지 뭔가 이상하다 했어. 걷는데 왜 km수가 안 줄어드나 했어. 하면서
언니랑 아주 오늘의 힘든 여정을 토로하느라 바빴다.
짐을 풀고 씻고 나오니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아무래도 대서양의 뜨거운 햇빛에 심하게 탄 듯 싶어 바로 알로에 팩을 해주고
누워서 다리 마사지도 해주고 하면서 쉼을 가졌다.
그러고 나서 역시나 바로 배고픔을 해결하러 맛집을 찾아 나섰다.
순례자 정식이라고 순례자들에게 제공되는 세트메뉴 같은 음식이 있는데
정식을 먹으러 가려면 숙소에서 1km 정도를 걸어야 하는데
그 마저도 엄두가 나지 않아 숙소 바로 앞에 있는 케밥집에 갔다.
배고픔에 뭐든 맛이 없을까. 맛있게 먹고 동네 구경 잠깐 하고
숙소 와서 내일의 계획을 세우고 “잔다!”하자마자 잠들었다.
이렇게 순례길의 첫 번째 날이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