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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준 호 Jun 19. 2024

내숲길 동네 시인의 방문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길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윤동주 시인의 <새로운 길>이다. 윤동주 시인이 나온 학교가 평양에 있는 숭실중학교이다. 이 학교가 1950년대 은평구 신사2동에 자리 잡았다. 그런 인연으로 은평 신사2동에는 내를 건너 숲으로(내숲) 도서관이 생겼고, 구에서는 이곳을 문화의 거리 내숲길로 지정했다.     


내숲도서관이 윤동주 시인의 특화 도서관으로 자리를 잡기 이전부터 내숲길에는 시인이 많다. 

비단산과 봉산은 녹지가 많아 이른 아침에 소쩍새를 비롯한 딱따구리 등의 새소리가 정겹다. 은평문인협회 회원인 두 분은 신사2동에서 아름다운 시를 쓰는 시인들이다.     

하루는 그분들이 나를 찾아왔다.      

신사2동의 주민자치위원으로도 활동하는 두 분은 2023년 새로 신사2동의 주민자치위원으로 선정됐는데, 환경분과 분과장과 총무로 임명됐다고 전했다. 그런데 환경분과로 배정된 사업이 ‘봉산 편백나무숲 힐링 프로그램’이라는 것. 그런데 막상 사업을 하려고 보니 뚜렷한 아이디어가 없어 평소 교류가 있던 내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신사2동 뒤편에 있는 봉산에는 지난 2014년부터 편백나무숲이 조성됐다. 편백나무는 피톤치드가 가장 많이 나는 나무로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혈중농도를 절반 이상 줄여줘서 면역력을 강화하는 건강증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편백나무가 봉산에 1만 주가 넘게 조성돼 있다.      

평소에도 봉산 편백나무숲 전망대를 일주일에 2~3회씩 오르내리는 나로서는 관심이 가는 사업이었다. 그래서 ‘숲해설과 함께하는 책쓰기 레크리에이션’을 제안했다. 기본 아이디어의 뼈대는 숲 해설사와 편백나무숲을 오르면서 숲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고, 봉산 편백나무숲 정상에서 나도 한마디, 삼행시, 에세이 등을 써보는 가벼운 글쓰기를 통해 동네 문집을 만들어보자는 콘셉트였다.     


내숲길 시인들은 OK를 했고 ‘책쓰기 레크리에션’는 추진됐다. 하지만 신사2동 주민자치회 사무국과 주민센터 직원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책쓰기 레크리에이션’이란 부제를 달다 보니 주민들에게 책쓰기란 무거운 소재가 아니냐는 걱정의 목소리였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편백숲과 글을 쓰는 이벤트를 병행하면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주민들이 가볍게 글을 쓰고, 아주 쉽게 삼행시, 나도 한마디 등을 썼다. 이를 문집 형태로 담아내는 프로그램은 실제로 진행되면서 반응이 꽤 좋았다. 총 5회 실시됐는데 1회당 20명 내외의 주민들이 참여해 봉산 편백나무숲을 오르면서 힐링 되고 글쓰기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100명 가까운 주민들이 <내숲길 지나 편백숲>이란 문집에 글쓴이로 참여하였다.     


숲 해설을 들으면서 산에 오르니 힐링도 되고, 그런 감성에 에세이를 쓰고, 시를 노래했다.      


문집이 출판되고, 호응이 좋으니 2024년에도 다시 해보자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다만 작년과 유사한 기획보다는 새로운 것을 가미하자는게 중론이었다. 그래서 [편백숲과 함께하는 문화콘텐츠]라는 제목으로 명상, 그림그리기, 사진 배우기, 에세이와 책쓰기 등 6회차의 프로그램을 기획하였다.     

그 결과 편백숲 쉼터에서 열린 6회차 프로그램에 호응이 컸다. 참여한 강사님들과 참가자들은 동네에서 실시한 프로그램으로는 질이 매우 높다고 격려하였다. 명상하는 편백숲,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리는 편백숲이 되었다.      

이러한 주민자치회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는 쉽지 않다. 사업의 주체인 주민자치위원들은 봉사를 기초로 활동하다 보니,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고 한 사업이 이뤄지려면 주민센터 공무원, 주민자치회 사무국 활동가, 주민자치회 위원, 이런 기획을 담당하는 실무주체 등이 하나의 콘셉트를 갖고, 일사불란하게 활동하는 운영이기 때문이다.     



2024년만 해도 나는 프로그램의 한 강사일 뿐이었다. 하지만 주민자치회 분과원 활동도 겸하면서 아예, 이번 [편백숲 산책과 함께하는 문화콘텐츠] 사업의 총괄 기획자가 되었다. 사업을 설계하고 챙기면서 주민자치회 사업도 배워나갔다.     


주민자치회는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기 시작한 김대중 정부에서 시작되었다. 1999년 시작된 주민자치회는 박원순 시장 시절인 2017년 서울형 주민자치회로 정립되면서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은평구에서도 10여 년 전 시작한 ‘주민참여위원회’와 더불어 지역자치에 주민들의 참여를 이끄는 쌍두마차로 주민자치회가 기능하고 있다. 각 16개동별로 활동비가 지급되는 사무국 직원들도 뽑고, 주민들이 참여하는 사업을 이끌어 오고 있다.     


그런 주민자치회에 나도 동네 문집을 만들고, 본격적인 골목 출판으로의 길로 나아가게 된 것이다.     

2년간의 사업을 통해 봉산 편백숲도 널리 홍보되었다. 주변 복지관, 지역위원회, 외부 지역 동우회 등에서도 봉산 편백숲을 자주 찾는다. 그런 맛에 문화콘텐츠 기획자가 된다.               


2023 신사2동 문집


골목 보물지도      

은평구의 경우 16개 동 주민자치회와 주민자치위원은 50여 명으로 구성돼 있다. 한 달에 한 번 전체 회의를 하고, 자주 분과별 회의도 한다. 주민자치위원과 주민자치 분과원은 다르다. 가령 분과원은 회의를 참여해도 회의비가 없고, 주민자치위원은 소정의 회의비가 나온다. 난 분과원으로 활동했는데, 좋은 점은 주민자치위원은 정치적인 소견을 밝히는데, 제약이 있지만 분과원은 자유롭다. 그래서 난 분과원이 좋다. 주민자치회장이든, 위원이든 임기제로 운영된다. 동네에 주민자치회가 구성돼 있고, 다양한 사업에도 참여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2023년에는 동별로 1억 원의 사업비가 책정되었으나 2024년에는 7천만 원의 사업비로 예산이 줄었다. 공공의 주민예산이 줄어드는 듯해서 안타깝다. 정부의 정책 방향은 이렇게 주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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