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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준 호 Jun 04. 2024

내숲길의 발자취를 좇는다

골목이 콘텐츠다

은평문화재단에서 실시한 아카이빙 프로젝트 <잘가 나의 대문>를 진행하다 보니 40여 년 전에 신사2동에 살았던 김 할머니에게 내숲길 골목의 과거를 들을 수 있었다.     

 

 “지금은 버스가 이쪽 길에도 저쪽 길에도 다니지만, 그전에는 차가 없어서 골목마다 장사가 잘됐어. 옛날에는 고택골(이 근방을 이르던 이름) 쪽에 들어와 3년만 살면 집 사서 나간다고 했어요.”     


골목길의 위치한 세탁소 사장님에게도 또 다른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옛날에는 앞이 확 트이고 물이 흐르면 명당이라고 생각했지. 그래서 아마 사람들이 여기를 명당이라고 말하는 것 같은데, 명당이라기보다는 집이 싼 데 비해서 살기가 엄청 좋은 곳이었지. 내가 와서 보니까 시내에서 사업하다가 좀 안 좋게 되면 여기 들어와서 한 5, 6년 쉬고 나가는 거야. 쉬면서 돈 벌어서 일산 신도시 같은 데로 싹 나갔어.”     


<잘가 나의 대문>를 취재하면서 내숲길의 역사를 조금씩 알아갔다. 서울 지역에서 집값이 높지 않아 서민들이 재기를 위해서 충전하던 곳. 살아가기에 너무도 좋은 환경에 마음과 몸을 힐링하다가 좀 살만하면 다른 곳으로 이사를 했단다.      

신사1구역 재건축의 출발이 되었던 숭실연립(왼쪽)

현재는 신사1구역 재건축 아파트를 한창 짓고 있지만 이곳의 재건축 시발이 되었던 곳이 숭실연립이다. 이곳에 살았던 이충훈 씨는 이 연립빌라에 관한 추억이 많다.     


“원래 이곳 재건축은 숭실연립에서 시작했어요. 그곳은 정말 낡았거든요. 연립 주민들이 자신들만이라도 재건축하겠다고 나섰지요.”     


숭실연립은 배관이 낡고, 건물이 노쇠하면서 재건축의 필요성이 증대됐다. 결국, 숭실연립에서 시작한 재건축의 바람은 동네 전체로 퍼져 신사1구역 재건축의 태풍으로 바뀐 셈이다.     


신사2동에는 팥배마을이 있다. 40여 년 전에 이곳은 산이었다. 이곳에서 50여 년을 살았다는 한 할머니의 이야기이다.     


“지금 팥배마을도 그 당시에는 그냥 산이었는데 내가 오기 전에 한일은행에서 직원들을 위해서 은행주택을 지었어요. 지금은 다 빌라로 바뀌었지만. 50년대는 여기랑 증산동 쪽은 다 논밭이었다고 들었어요. 60년대부터 개발되었고. 저기 예인음악학원 건물 바로 옆쪽 골목이랑 기타짐 옆쪽 골목의 집들은 내가 여기 오기 전부터 있던 집들이에요. 한 50년쯤 되었을 거예요. 숭실빌라보다 먼저 생겼어. 여기 집들은 ㄱ자 모양 집들인데 마당에서 뜰판 딛고 올라가면 마루가 있고 양쪽에 방이 있어요. 지금은 아궁이를 없애고 입식 부엌으로 개조하고, 화장실도 수리했지만, 전체적으로는 그때 모습 그대로예요. 내가 여기 왔을 때만 해도 아궁이도 있었고 화장실도 밖에 따로 있었는데.”     

신사2동은 정월대보름에 지신밟기 행사를 개최한다

1996년에 결혼하면서 팥배마을로 온 권영옥 님도 그 당시 이곳의 모습을 기억한다.     


“이 동네에 왔을 때는 도서관 앞길이 흙길이었어요. 버스는 안 다녔고. 버스는 저쪽 상신중학교 앞쪽으로만 다녔어요. 미성아파트랑 신성아파트 지을 무렵에 여기도 집을 많이 지었어요.”    

 

내숲길 옆 비단산에서는 새소리가 들린다. 임형준 씨는 비단산에 얽힌 추억이 많다.       

“지금도 그렇지만, 비단산에 사는 새들 소리가 너무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줬어요. 봄에는 소쩍새가 울고 여름에는 뻐꾸기가 울고. 새소리를 들으며 기분 좋게 아침잠을 깨곤 했죠. 또 창문을 열면 들어오는 아카시아 향 덕분에 그날 하루를 상쾌하게 시작했어요.”     


40여 년 전 살았던 신사2동 주민들의 목소리에서 내숲길의 과거가 묻어난다. 이제 이 신사1구역 골목 주택들은 철거하고 새로운 아파트 건설이 한창이다.     


과거를 회상하는 주민들의 얼굴에는 지난 세월의 추억이 아로새기듯 엷은 미소가 보였다.     

슬픔이든 기쁨이든 이전 세대가 살아가던 방식과 수많은 이야기가 서려 있는 그곳을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둘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콘크리트 아파트숲에서 자랄 후세들에게, 낮은 담장 너머로 우리집 감꽃이 건너가고 좁은 골목 너머로 이웃집 소리가 건너오던, 다정했던 골목의 시대가 있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 시작한 <잘가 나의 대문> 프로젝트.     


추억의 도구로 에세이집이라도 만들게 되어 이별 앞에서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해했다.     


골목 보물지도

    

은평구와 은평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은 지역문화 아카이브 구축 활성화 사업 <아카이빙 콘텐츠 개발 지원 사업>의 결과물로 은평구 신사1구역(신사2동)의 재건축을 앞두고 사라져가는 단독주택지의 대문과 골목을 사진으로 찍어 에세이와 함께 담은 책이다. 이주가 거의 끝난 2022년 3월말부터 9월까지의 모습이 담겨있고 원주민과 주변 이웃에게서 들은 동네 이야기도 살짝 실려있다. (교보문고/예스24 전자책 무료 다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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