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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던 파티 기획자, 현실이 되다

by 구가영

평택에서 역삼까지, 매일 왕복 네 시간. 새벽 6시에 일어나 고속버스를 타고, 강남에 닿으면 다시 지하철로 몸을 옮겼다. 반쯤 녹아내린 하루는 출퇴근길에 삼켜졌고, 남은 반쪽은 회사에서 쏟아부었다. 업무를 마치고 나면 다시 피아노 학원으로 향했는데 연주회와 파티 기획 준비까지 겹쳐 있었기 때문이다. 이게 다 무슨 상황이냐면..



나를 꿈꾸게 해준 로렐라이 길모어



몇 년 전 우연히 본 미국 드라마 길모어 걸스 속 장면에서 본 파티 기획과 호텔 운영이 늘 마음속에 꿈으로 새겨져 있었다. 그때 느꼈던 전율은 오랫동안 묻혀 있었고 언젠가 돈이 생기면, 시간이 많아지면..이라는 변명 속에 늘 미뤄왔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누구인가. 좋아하는 인생을 살기로 한 사람이지 않은가!



그토록 갈망하던 피아노를 열심히 배우는 와중에 학원에서 연주회를 연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순간적으로 길모어걸스 드라마의 파티 기획자이자 호텔 대표인 로렐라이가 떠올랐다. 나도 로렐라이가 될 수 있겠다. 이건 기회다!



로렐라이의 파티 기획 & 직접 제작한 피아노 연주회 팜플렛


피아노 원장 선생님께 이번 연주회를 기획해도 되는지 여쭤봤고, 선생님은 오히려 감사하다며 승낙해 주셨다. 그날부터 내 하루는 완전히 달라졌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뭐부터 시작할지 몰라 도서관에서 관련 책부터 읽었다. 그리고 매일 퇴근 후에 파티 기획 레퍼런스를 수집하고 내가 원하는 파티의 모습을 구상했다. 주말에는 학원에 가서 좌석 배치와 동선을 손수 점검했다. 팜플렛도 직접 제작했는데 밤을 지새워가며 수정했고, 디저트를 고르려고 핑거푸드 사진만 몇 백개를 봤는지 핸드폰 사진첩에 음식 사진으로 가득했다.



사실 파티를 기획하는 한 달 동안은 몸이 많이 지쳐갔다. 이미 회사에서 열정을 쏟아내고 난 뒤였기에 퇴근 후에 연주회 준비로 2차전을 실행해야 했으니까. 근데. 정말 이상하게도. 정신은 신명 나는 게 아닌가..? 멈출 수가 없는 기분이 들었다. 이때만 해도 고시원에 들어가지 않아 평택-역삼을 왕복 출퇴근하는 루트였음에도 불구하고, 퇴근하고 돌아와서 늘 노트북을 다시 켜고 파티 기획을 끝까지 준비해 나갔다.



퇴근하고 학원으로 달려가 파티 컨셉을 짜보았다



재밌는 건 나는 연주회를 개최하는 기획자였지만, 연주회에도 참여하는 연주자였다. 정말 지금 생각하면 대단했다. 성장에 미친 회사를 다니며, 피아노 연습도 하고, 파티 기획도 했으니 몸이 열개였음에 틀림없다. 이러니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말이 생길 수밖에.



연주회 당일이 되었다. 새하얀 천을 깔고 그동안 하나 둘 사놓은 소품들을 테이블에 세팅했다. 아침 일찍부터 준비해 온 핑거푸드와 과일들을 접시에 예쁘게 담았다. 반짝이는 촛불 모형들도 흐드러지게 흩뿌렸다. 연주회 시간이 다가오며 하나 둘 연주회장으로 사람들이 모였다.



연주회장에 문을 열고 들어온 모든 사람들의 반응에 미칠 듯한 짜릿함이 느껴졌다. 환한 미소로 놀라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니 그동안의 노력들이 보상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진짜 파티장에 온 것 같다며 칭찬을 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가도, 이게 나의 길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만족함과 더불어 처음 해본 일이라 아쉬움도 남았지만, 올해 송년회 연주회도 맡게 되어 용기내어 더 전문가가 되어볼 심산이다. 아마 파티 기획자로서의 엄청난 성장이 될 것 같다.



음식도 모두 손수 준비했다.



연주회를 마치니 몇 달간 쌓인 피로가 사라지고 온몸에 벅찬 전율이 흘렀다. 돌이켜보면 이 경험의 본질은 단순한 파티 기획이 아니었다. 머릿속에서만 떠돌던 상상을 현실로 꺼냈다는 사실이 나를 미친 듯이 살아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준비가 완벽하지 않아도, 경험이 부족해도, 직접 부딪혔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던 성취감이었다. 그제야 확신이 들었다. 이 두 달간의 경험 하나가 앞으로의 기회를 여는 열쇠가 될 수 있다는 것. 언젠가는 파티 사업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오늘 남긴 기록과 데이터가 훗날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자산이 될 수도 있다.



좋아하는 것을 하는 인생!



만약 여전히 가슴속에만 묻어두었다면 죽는 날까지 하염없이 한 번쯤 해볼걸.. 하는 후회로 남았을 터였다. 하지만 실행했기에 결과는 달라졌다.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은 하루들이 현실에 나타났고 그 덕분에 새로운 길 하나가 눈앞에 열렸으니 말이다. 이로써 좋아하는 것으로 일상을 채우는 선택은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음을 깨닫는다.



이 경험은 내 삶을 또 어떤 멋진 기회로 만들어 줄까?


내 인생 첫 피아노 연주회와 파티 기획... 짜릿했다!
그리고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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