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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숙 Aug 15. 2024

이 모자 주인은 누구예요?

가을이 깊어 가면 정말 둘레길을 걷는 맛이 난다. 

여기저기 나무 위에서 무엇인가 '툭툭' 떨어지는 소리를 듣게 된다. 특히 바람이 훅하고 지나가면 동시에 '후드득'하고 사방에서 소리가 들린다. 

괜히 머리에 맞을까 봐 몸을 움츠려 볼 때도 있다. 그러다 발끝에 도르르 굴러온 귀여운 도토리를 보면서 생각한다. ‘절대로 줍지 말자’라고 다짐해 본다. 숲 속 친구들의 겨울 식량을 쉽게 가져갈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천사와 악마가 다투다가 결국 한쪽의 승리로 대부분 결론이 난다. 악마가 이긴다. 난 너무나 가벼이 무너져 내린 나 자신을 생각할 틈도 없이 앙증맞은 도토리 몇 개와 그 깍지를 주워서 주머니에 담아본다. 혹시나 누가 봤을 가봐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슬쩍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손을 털고 다시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가을에는 발끝마다 도토리 지뢰폭탄이 있어 한걸음 한걸음 발걸음을 옮기기가 매우 어렵다. 또한 '주울까? 말까?' 하는 내면적 갈등과 시름하다 보면 1시간 거리의 둘레길은 2시간이 되고 나의 주머니는 조금씩 무거워지고 결국 둘레길 마지막에 다다라서는 큰 후회와 함께 주운 도토리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몇 개만 남기고 숲 속 멀리 하나씩 던져버린다. ‘청설모야.. 다람쥐야.. 멧돼지야.. 다른 숲 속의 친구들아… 다가오는 겨울 굶지 말고 잘 보내야 한다.’라고 마음속으로 소리친다. 

그런데 이때부터 나의 고민은 깊어진다. 

깍지의 주인 도토리를 찾아야 하는데 내 눈에 비슷하게 보여서 정말로 헷갈려서 짝을 찾을 수 없는 경우가 있다. 불암산의 둘레길을 걸을 때마다 만나는 참나무 종류는  상수리나무, 신갈나무, 굴참나무, 떡갈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그리고 아마도 다른 종류의 참나무도 있을 것이다. 이 중에서 떡갈나무의 깍지는 다른 것에 비해 독특한 모양을 가졌고 도토리 끝에도 암술대가 좀 길게 남아있어 다른 것과 구별이 쉽다. 그리고 신갈나무 도토리도 암술대가 좀 길게 남아 있고 도토리 아래 부분이 동그랗지가 않고 좀 편평한 모습이고 깍지는 부처님 머리모양 같다. 그리고 신갈나무의 깍지는 같은 모양의 다른 참나무의 깍지보다 좀 두텁고 강해 보인다. 

둘레길을 걸으며 발견한 상수리나무와 굴참나무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상수리와 굴참나무는 도토리나 깍지의 모양은 비슷하다. 하지만 굴참나무는 남성적이다. 나무도 그렇고 깍지도 그렇다.  반면에 상수리나무는 굴참나무에 비해 여성스럽다. 그래서 깍지 모양은 비슷한데 굴참은 '나는 힘센 남자요.'라고 말하듯 깍지에 나 있는 돌기들이 거칠게 펼쳐져 있다. 상수리나무의 깍지는 굴참나무 깍지의 돌기들보다 좀 가늘고 손이 닿으면 쉽게 잘 부러진다. '난 여자예요. 좀 가녀린 ….'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졸참나무의 열매는 대체적으로 작고 다른 참나무 열매에 비해 길쭉한 모양이다. 마지막으로 갈참나무의 열매도 조금 길쭉한데 깍지가 도토리 길이의 대략 1/5 정도를 덮고 있다. 

여기에 각 참나무마다 나뭇잎을 매칭하면 좋은데 아직도 갈참, 졸참, 신갈나무의 잎이 머릿속에 '쏙'하고 들어오질 않는다. 하지만 둘레길을 걸으면서 관찰하다 보면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체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좀 천천히 즐기면서 배우고 싶다. 외워서 머릿속에 각인하는 것보다 느끼면서 머릿속에 지워지지 않는 그림으로 남기고 싶다.

무엇인가 꽉 채워지지 않음이 나를 더욱 자유롭게 하고 그 비어 있는 공간이 내 삶의 여백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준다는 것을 둘레길을 걸으며 알게 되었다. 


자연은 말이 없지만 그 공백에 많은 진심과 따스한 언어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껴보자. 이 아름답고 소중한 가을에. 


상수리나무-깍지                                                                                     굴참나무-깍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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