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가을하늘을 보면 눈을 조용히 감고 옛날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있다.
또는 그때를 멀리서 영화 보듯이 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지금보다 더 많이 웃고, 옆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 정도로 서로 친근한 이웃사촌이었으며 끈끈한 정이 너와 나를 하나로 만들어 주는 소박하지만 따뜻한 시절이었다.
불과 사오십 년 전의 이야기이다. 그땐 지금 컴퓨터가 일상생활을 지배하고 스마트폰에 의존한 인간들의 뇌가 퇴화하는 기로에 서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내가 살던 마을은 10여 가구가 있었고 공동 수돗가에서 수돗물을 이용했다. 우리 집에는 술도가에서 사용하는 아주 큰 항아리가 있었다. 어린 나에게는 위압감을 주는 크기였다. 아마 지금 보면 좀 달라지겠지만…
엄마는 매일 물을 길어 그 항아리에 가득 채우셨다. 그리고 중간정도 크기의 파란색 물동이가 있어 그곳에도 항상 물이 가득했다. 봄이면 수돗가에는 아줌마들의 웃음소리, 애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특히 살두나무가 수돗가를 품듯이 있어 바람 살랑이는 봄이면 살구나무꽃이 눈처럼 내렸다. 그리고 살구나무 옆자리 감나무에는 가을이면 주홍색의 맛난 감이 주렁주렁 해마다 많이 달였던 것이 생생하다. 난 감나무가 더 좋았다. 왜냐하면 그 감이 홍시가 되어서 달랑거릴 때 따 먹는 그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살구도 맛났지만 나에겐 늦가을 찬 공기 속에서 '쪽'하고 입속으로 빨아들인 그 홍시의 맛은 천상의 맛이었다. 약간 설익은 감을 따서 짚을 깔고 항아리에 켜켜이 엄마가 놓아두면 겨울에 하나씩 몰래 꺼내 먹던 그 긴장감 속의 맛은 희열이었다. 그래서 홍시의 단맛은 나의 뇌 어느 곳에 맛을 기록하는 곳이 있다면 아마도 1순위로 저장되어 있을 것이다.
감은 나의 기억을 이끌어 내는 열쇠이다.
감은 나의 입안에 맴도는 추억의 맛이다.
감은 나의 어릴 적 그 시절을 되새김하게 하는 향수이다.
늦가을의 감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