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화를 내는 이유
내 마음속 '화' 들여다보기
육아를 시작한 지 19개월이 지났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겠지만 나 역시 부모 노릇을 처음 하는지라 매일이 실수의 연속이다. 온종일 아이와 복닥거리며 긴 하루를 마무리하고 나면 '오늘 하루도 잘 견뎠구나.' 하며 고단한 한숨을 쉬곤 한다. 육아(育兒) 는 말그대로 아이를 키우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 자신을 끊임없이 대면하고 되돌아보게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엄마로서의 나, 아내로서의 나, 교사로서의 나, 어떤 직업이나 역할을 모두 벗어나 그냥 있는 그대로의, 민낯의 나...육아를 하면서 새로운 내 모습을 발견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그것은 참 낯설고 때로는 당황스러웠다. 얼마 전부터 내가 남편에게 자주 하는 말이 "여보, 이상해. 내가 원래 이렇게 화가 많은 사람이었나?" 이다. 집에서 아이와 함께하다 보면, 갑자기 화가 치밀어올라 더이상 참을 수 없을 것 같은 순간이 찾아올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거나(거의 괴성에 가깝다) 순간적으로 내 머리를 쥐어뜯기도 한다. 화장실로 달려가 잔뜩 일그러진 내 얼굴을 거울에 비추어 보며 '육아를 하다 드디어 내가 미쳤구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지난날을 가만히 돌이켜보니 거의 한 달 주기로 나는 이런 이상증세를 보여왔던 것이다.
아이도 갑작스런 엄마의 모습에 놀랐겠지만, 나 역시 이전에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내 행동에 적잖이 당황스럽고 속이 상했다. 나는 왜 이렇게 화가 나는 것일까? 어떨 때 분노 게이지가 이토록 상승하는 것일까? 원인을 찾고 싶었다. 단순히 애 키우다 보니 몸이 지쳐서 그렇다던가, 육아를 하는 많은 사람들이 흔히 겪는 우울감과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치부하고 넘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내 화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현상이 언제고 반복될 수 있고, 시간이 지나며 더 심해질 거라는 확신마저 들었다.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의 답은 남편과 나눈 대화 속에서 찾을 수 있었다. "당신이 원하는대로 안 돼서 그런 거 아닐까?" 상심에 빠진 내게 조심스럽게 건넨 남편의 말은 내 마음 속에서 크게 울렸다. 나는 매사에 굉장히 계획적인 사람이다. 여행, 업무 등 크고작은 일들에 앞서 미리 체계적인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대로 순차적으로 일을 진행해 나가는 것을 좋아한다. 그것이 일의 시행착오를 줄이고 혹시모를 돌발상황에 대비하며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계획적인 습관은 나의 큰 무기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이런 성향은 메모하는 습관으로 이어져서, 나는 요즘도 그 날 할 일을 노트에 적어놓고 일일이 실행 여부를 체크한다.
결혼과 출산 전에는 '나' 하나만 생각해도 되었으므로 독립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했고, 따라서 내 계획대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내가 하고 싶은 건 뭐든지 할 수 있었고 그것은 내 삶의 큰 기쁨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가 생기면서부터 내 계획의 틀을 벗어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아이와 엄마가 함께하는 프로그램에 시간을 맞춰 도착하는 일은 너무나 어려운 미션이었다. 아이 준비물을 후다닥 챙기고 이제 막 집을 나서려는 찰나 아이가 응가를 해서 기저귀를 급히 갈아야 하는 때도 많았고, 시간이 촉박한데 아기가 옷을 안 입겠다고 떼를 쓰며 우는 날은 나도 주저앉아 함께 울고 싶었다. 외출해야 하는 시간에 갑자기 아이가 잠이 들거나, 내가 재우려고 하는 시간에 낮잠을 자지 않을 때 내 마음 속에는 점점 화가 쌓여갔다. 내가 준비한 반찬과 밥을 아이가 다 먹지 않을 때, 이제 그만 놀고 집에 들어가면 좋을 텐데 아이가 도통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을 때, 성장 호르몬 때문에 밤 10시 전에는 재워야 한다는데 그 시각이 훌쩍 지나서도 눈이 말똥말똥할 때 나는 힘이 빠졌다. 계획대로 되지 않음에 좌절감에 휩싸였다. 언젠가 직장 동료분이 출산을 앞둔 내게 '아이는 절대 엄마의 사정을 봐 주지 않는다'고 한 말이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아이를 낳기 전부터 굳건하게 가져왔던 육아관은 '아이를 독립된 인격체로 보고 최대한 존중하자'였다. 어른 또는 부모란 이름으로 아이에게 명령하거나 선택을 강요하는 일은 없기를 바랐다. 그러나 나는 나만의 계획을 만들어놓고 그 궤도에서 자꾸만 벗어나는 아이에게 불만이 쌓여갔고, 결국 그것이 걷잡을 수 없는 화로 표출되었던 것이다. 아이는 인간이 셋팅해 놓은대로 행하는 로봇이 아니라 심장이 있고 생각을 할 수 있는, 살아 움직이는 사람인데 말이다. 나의 육아에는 오로지 나의 욕심만 있고 아이는 없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화를 돌아보기 전에는 나는 내 분노가 당연하다고 여겼다. 물론 아이가 있는 곳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머리를 쥐어뜯는 행동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누구는 내 상황이 되면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아이가 나를 힘들게 했으니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본능적 행동이었다고 합리화했다. 반성이나 성찰은 없이, 이제 그만 죄책감에서 벗어나라고 다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였었다. 내 화가 모든 것을 계획대로 해 나가려는 나의 이기심에서 촉발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이후, 아이의 행동에 반응하는 내게 한층 더 여유가 생겼음을 느낀다. 밥을 잘 먹지 않을 때 뾰족한 얼굴로 식판을 치워버리기보다 '지금은 많이 먹고 싶지 않은가 보네. 그럼 이따 점심은 더 잘 먹어보자.'라고 공감하는 말을 건넬 수 있게 되었고, 잘 시간을 넘겼는데도 계속해서 책을 갖고 오며 읽어달라고 조르는 아이에게 '채훈이가 이 책 읽고 싶었어? 그럼 두 권만 더 읽고 자자. 타요 버스랑 뽀로로 친구도 이제 잘 시간이래.' 좀 더 부드러운 협상을 제시할 수 있게 되었다. 놀라운 변화다.
육아를 담당하는 엄마로서 당연히 계획이 있을 수 있고 어느 정도의 기대를 설정할 수는 있으나, 아이가 엄마의 계획을 그대로 이행해야 하고 또 그것이 당연하다고 믿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가를 나는 배웠다. 아이와 나는 별개의 인격체이므로 엄마의 이상과 아이의 행동이 다른 것이 당연하다는 아주 단순한 진리를 깨닫는 데 참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이제라도 알아차릴 수 있어서 다행이다. 스스로를 제어할 틈도 없이 소리를 지르고 머리를 쥐어뜯던 지난 날을 돌아보며, 앞으로의 나의 육아는 육체적으로는 여전히 고되고 힘들지언정 마음은 좀 더 넉넉해지고 편안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