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구시청사거리의 과거와 현재의 역사, 문화적 삶의 시간을 기록 중이다
광주 구시청 사거리의 옛 그리고 지금까지의 역사, 문화적 이야기 기록화 작업 중이다. (세칭 구시청 사거리라 말하지만 행정용어상의 물리적 범위는 조금 다름) 문헌자료에 의하면 옛 구시청사거리의 모습은 현재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1908년에는 이곳 불로동에 사립 측량 학교가 문을 열었다. 1910년 일제강점기 직전까지 운영된 이 학교 건물에는 광주 농업학교가 개교했고 농업학교가 임동으로 이전한 뒤에는 20대 청년들이 모여 ‘신문 잡지 종람 소’라는 단체를 이곳에서 열었다. 이 단체는 1919년 3.1 운동의 산파 역할을 했다는 점에 큰 의미를 지닌다. 이 단체가 이곳을 떠난 뒤에는 1925년까지 광주 면사무소로 이용되기도 했다.
1921년에는 광주 청년 및 시민사회단체의 활동이 활발히 이뤄진 흥학관이 있었다.
1935년 광주 부청 및 1969년 계림동에 시청을 신축하여 옮기기 전까지 구시청사거리라는 이름에서 비롯되듯이 광주의 행정중심 광주시청이 있었다.
지금은 광주천이라 불리지만 강이었던 시절의 구시청사거리 특히 불로동에는 넓은 모래벌이 펼쳐 저 있었다. 1백 년 전 광주천의 강폭은 갑자기 좁아진 곳도 있지만 불로동과 사동 사이에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은 130m가량 되었다. 고고학에서 유물을 발견한 듯 유의미한 장소, 그곳에서의 문화적 활동, 사람 사는 이야기 관련 자료를 발견할 때마다. 우왓!!! 반갑다.
그렇지만 이곳의 상징과도 같았던 공동의 기억의 장소는 옛 지도 속에, 사진 속에만 남아 있을 뿐 현실에서는 사회적, 공간적 맥락이 사라지고 없다. 천천히 사라진 것도 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소멸된 공간들에 대한 애석함이 남는다.
하지만 무엇보다 아카이빙(Archiving)의 방향성에서 중요한 것은 과거 기록에 대한 기록화만큼이나 지금 여기의 삶과 문화, 지금 소중한 장소, 함께하는 사람들... 히어 앤 나우(here and now)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다. 지금껏 사적인 것이라 하여 기록화되지 않은 우리의 삶과 문화의 기록들에 주목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친숙하게 드나드는 장소,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이 곧 지역성이자 지역의 정신과 같은 소중한 자산이다.
우리의 삶은 여전히 ‘나’로부터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작은 지역’으로부터 시작된다.
53년째 구시청 사거리에서 약국을 하셨던 분의 기억 속 구시청사거리는
“병원이 30~40개나 있었지”이다.
이곳에 시청이 있던 시절에 시청 출입기자였던 분의 기억 속 구시청사거리는
“하루 일과가 끝나면 으레 정종 집에 들렀지.. 정종을 한 홀씩 팔았는데 웬만한 요릿집에서나 먹을 수 있는 안주가 푸짐하게 나왔어... 황금동, 불로동에 꽤 많은 정종 집이 있었다” 고 추억한다.
어떤 것을 기억한다는 것은 같은 장소라도 기억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물리적 또는 정서적인 간극이 존재한다. 하나의 장소라도 누군가에게는 중요한 장소로 인식되는가 하면 다른 누군가에게는 덜 중요한 장소로 인식되기도 한다. 특정 장소에 대한 기억은 일상적으로 자주 가는 곳, 각자의 취향, 함께 했던 사람, 시간에 따라 날씨에 따라 의미를 부여하는 장소들은 달라지고 각자의 기억으로 재구성된다.
구시청사거리에 있는 히어 앤 나우 문화 아지트 중 한 곳
‘우린 좀 심해(深海)’ 등을 캐치프레이즈로 사용하는
심해 랩에 갔다.
커뮤니티 팀이자 콘텐츠 그룹 심해(deepocean)는 서브컬처 아지트 심해를 운영하며 디제잉 파티 등 음악과 함께 다양한 장르의 결합,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을 다루며 이를 통해 음악을 사랑하는 심해의 세계로 이끌고자 한다.
‘자! 이제, 호흡을 가다듬고
깊고 깊은 심해로 뛰어들자!
DEEP! DIVE! DANCE!’
“왜 구시청사거리에 심해를 만든 거예요?”
“접근성이 좋잖아요”
기록단의 모찌님 그리고 나반장과 함께 심해에서 밤 8시에 심해를 이끄는 가도균, 김다혜, 이대로 님을 만나 인터뷰 및 영상기록화를 했다. 밤 10시가 넘어서야 인터뷰를 마쳤다. 재밌는 이야기가 많지만 재밌는 얘기는 다음 기회로 미룬다. 왜냐면 심해 랩뿐만 아니라 구시청사거리에서 ‘문화를 만드는 사람들’이란 키워드로 좀 더 많은 히어 앤 나우 사람들을 인터뷰한 다음 이에 대한 결과물을 2월에 낼 예정이라 더 이상의 이야기는 스포일러(spoiler)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분주하던, 호황을 이뤘던 구시청사거리의 상권이 매일이 축제와 같았던 시절을 뒤로하고 광주 동명동과 양림동 지역으로 주도권을 뺏기면서 여기저기 임대 현수막이 붙은 상가들이 눈에 띈다.
그럼에도 오후가 되고 해질 무렵이면 구시청 사거리의 가게들 창문 밖으로 따듯한 불빛이 새어 나온다. ‘앰블(AMLBLE)’, ‘원스 인 어 블루문’, ‘너바나’ , ‘페니 레인’,‘트뤼포’, ‘포플레이’ 등이 지나간 시간을 품은 채 ‘문화살롱 1935’가 새롭게 그 안에서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
어둠을 지우며 하나둘씩 켜지는 가게의 불빛들을 바라보노라면 사실주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의 그림이 생각난다.
호퍼는 도시 일상의 한 순간을 그렸다. 어딘가 많이 익숙한 장면인데도 왠지 낯설게 느껴진다. 자연의 빛이든 인공의 빛이든지 간에 ‘카페에서 차를 마시는 여인’,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그림 속 빛과 대비되는 그림자에서 고독의 무게감과 불안이 느껴진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S. Freud)는 말했다.
‘불안은 인간에게 지워지거나 제거되지 않는 얼룩과 같은 것으로 인간의 모든 인식, 판단, 욕망 , 행위를 하기 위한 동기로 작동하는 조건이다’
본능이 통제되지 않는 신경증적 불안, 위협적 상황에 대한 두려움 등은 우리에게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되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내적 감정으로 자기 정립 과정에서 불안을 경험한다.
어두운 구시청 사거리를 걸어본다.
우리는 내면 깊숙한 곳에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불안은 어둡다
불안의 마음도 어둡다.
그러나 어두움이 있어야 빛이 난다.
모두가 다 이어져 있다.
광주의 시작이자 심장
광주 구시청사거리가 기록화 작업 동안 나의 일상 공간이 되었다.
고요한 골목길에서 들려오는 음악소리, 창문 밖으로 새어 나오는 불빛들이 따듯하다.
내 마음에도 따듯한 불빛 하나 둘 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