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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박 Oct 21. 2021

겨울엔 장사 어떻게 해?

왜 그런 걸로 글을 써?

운영하는 가게의 정식 명칭은 '아이스크림 할인점'이다. 업태는 소매업이고, 종목은 아이스크림, 세계 과자, 반려 간식. 아이스크림이 주종목이다 보니 한기가 돌자마자 걱정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지인들의 우려에 짐짓 괜찮은 체하지만 사실은 나야말로 고민이다. 겨울에 무슨 수로 아이스크림을 팔지?


가게에는 노력과 연구가 깃든다. 전자레인지를 놓았고, 즉석에서 먹을 수 있는 식품들도 늘렸다. 햄버거는 물론 핫도그, 핫바, 치킨, 피자까지! 친구가 찐빵 기계도 놓으라는데 장소가 협소해 그건 어려울 것 같고, 개별 포장된 찐빵을 사서 데워먹도록 비치해두어야겠단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매출 인상에 만전을 기하자. 물론, 근처 편의점에는 온장고도 많고, 원래 간식 종류 개수 자체가 차이나지만 우리만의 파워를 고민해 봐야 할 때!!!


"여기 자몽 바 없어요?"


며칠 전, 손님이 냉동고 앞에서 물었다. 그날은 마침 빙과 기사님이 아이스크림을 채우고 있었다. 기사님을 주인이라고 생각했는지 곁에 가서 묻길래 나는 달려가 찾아 드리마고 했다. 그랬더니 기사님이 단호하게 '없어요'라고 했다. 조금만 친절하게 말해주시지 하는 차에 이렇게 말했다.


"이제 날이 추워져서 손님들이  바bar 보다는 샌드sand 류를 더 찾아요. 원래 인기가 많은 상품은 바여도 나오지만 자몽 바나 복숭아, 자두, 청포도처럼 써머시즌 상품은 가을부턴 공장에서 생산을 안 해요."


그러니까 겨울엔 붕어싸만코나 빵또아처럼 빵이 들어있는 아이스크림의 선호도가 높아서 그걸 주력으로 생산한다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소리까지 내면서 감탄했다. 아이스크림 하면 모두 차가운 이미지지만  종류와 샌드류가 다르고, 쭈쭈바와 컵이 다르다는 .  안에도 온도가 있다는 것에 이상한 감동 같은  밀려들었다. '아이스'라는 이미지는 모든 종류를 '차가움'으로 뭉뚱그리는  알았는데 저마다의 온도가 있어서  와중에서도 다른 매력을 뽐내는구나! 샌드가 가득 덮인 냉동고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자니 추운 겨울  지내보라고 이불을 덮어준  같았다. 남이 보면 미쳤다고 할지도 몰라.  


샌드류의 아이스크림들


사람은 살면서 얼마만큼 생각을 고정해 살아갈까? 내가 합리적이라고 이해한 것들이 때론 좁고 낡은 사고방식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번의 기회를 만났다. 오해와 편견을 쳐부수는 용감무쌍한 히어로는 아니더라도 우후죽순 생겨나는 무인 가게를 향해 던지는 냉소적 시선을 조금이라도 바꿔 보려고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정작 변한  나였다. 아주 간단한 변화에도 민감해지고,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던 어떤 통로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되었다. 저절로 돈이 벌리는  알았던 지난날을 반성했다. 세상에 어느  하나도 거저 되는 것은 없음을 절감했다. 나와 남은 생각부터 같을  없다는 것도 새삼 느꼈고, 어쩌면  다른 생각이 몰라서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 버렸다. 아이스크림을 먹을  종류마다 체감하는 온도가 다르듯 사람 사이에서도 다른 온도가 존재한다. 어는 속도와 녹는 속도도 다르고, 선호도도 같을  없다. 아주 단순하고 가까운 원리도 모르고 그렇게 투덜거렸던 처음의 내가 떠오른다.


 글을 끝까지 읽고 나서, 누군가는 그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별것도 아닌 걸로 글을 쓴다고, 모든 편의점주가 그런 것도 아닌데 마치 모두가 그런 것처럼 미화시킨다고! 무인 편의점이니만큼 상업적 인과관계  이외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리 기계가 계산을 하고, CCTV 감시한다고 해도 결국 다녀가는 것은 사람들이고, 그것이 돌아가게 노동력을 보태는 것도 사람이다. 무인이라고 해도 주인과 마주치게 마련이고, 주인이 가게에 애착을 가지면 가질수록 그러하다. 모든 사람이 같은 곳에서 출발한  아니듯  과정도 같을  없다. 그러기에 함부로 평가하고 판단해 버리면  된다는 것을 같이 이야기 나눌 사람이 필요했다. 무인 편의점에도 저마다의 사연이 있고, 가치가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어서 자꾸 글을 쓰고 싶었다. 그리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무인 편의점에는 사람이 있으니까.


아이스크림 할인점에도 겨울은 찾아오고 있다. 이미 날이 부쩍 추워졌고, 4개월 내 매일 돌리던 에어컨도 껐다. 6월이어도 개업 초기엔 에어컨을 미리 켜놔야 한다는 걸 몰랐다. 초도 물량이 깔린 다음 날, 초코바는 녹아서 물컹해지고, 곰돌이 젤리들은 다 붙어 버리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도저히 팔 수가 없어서 우리 가족이 먹거나 버렸다. 거의 울면서 재주문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의 추위는 오히려 반갑다.


겨울이 되면 추워서 아이스크림은 안 팔릴지 몰라도 여전히 우리 가게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곳으로 남으면 좋겠다. 역시 학원 가는 친구들이 추위를 피할 수 있을 테고(냉동고에서 나오는 열기 때문에 가게는 상당히 따뜻하다) 먹고 돌아서면 또 배가 고픈 학생들이 와서 따뜻한 요기를 부담 없이 하면 좋겠다. 겨울밤 심심할 때 이불 덮고 나눠 먹을 쫀득한 아이스크림도 한 봉지씩 사가고!! (어, 이건 내게 도움인 것 같은데?)

우리 애들도 사시사철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골라먹는 유명 아이스크림 가게보다 소위 말하는 '하드'를 좋아한다. 옛날부터 겨울에도 근처 할인점에서 사다가 냉동고에 쟁여두고 뜨뜻한 곳에서 이불 덮고 먹고 그랬다. 하지만 모든 집이 그런 것은 아닐 테고, 역시 추위와 아이스크림은 상극인 건가. 그럼 겨울에 어떻게 해!?


너무 겁먹지 말기로 했다. 그때 되어서 불만이 생기면 또 투덜거리다 어느 틈에 한 걸음 또 나가겠지 뭐. 어쨌든 나의 첫 번째 사업은 성공적으로 정착했다. 그리고 난생처음 같은 주제로 된 열 편의 글을 나름대로 엮어본다. 만약 내가 두 번째 책을 완성한다면 그땐 또 어떤 이야기들을 쏟아낼 수 있을지 궁금하다. 겨울이 부쩍 지나 다시 시즌 빙과가 나올 때는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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