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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리제 본느 Jun 23. 2020

당신의 가사도우미를 그만두려고 합니다

이제 그만 품고 있던 사직서를 던질 때

아이들과 친정에서 하루 자고 집에 온 지 1시간 정도 되었을까. 바쁘게 저녁을 준비하고 있는데 남편이 말했다.


"나 토요일에 약속 있어”

“뭐? 애들이 아빠랑 토요일에 인라인 탈 거라고 얼마나 기다리는데. 무턱대고 그렇게 약속을 잡으면 어떻게 해?”

“안 가. 씨발. 넌 니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난 못하냐?”


멀쩡하게 저녁을 준비하던 나에게 남편은 순식간에 욕을 하고 안방 문을 닫고 들어갔다. 주말에 아이들과의 약속은 무시하고 혼자만의 일정을 잡은 그에게 화가 나기는 했다. 그래도 나는 대화를 통해 풀어가고 싶었는데 순식간에 일어난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순간 나는 몸이 먼저 움직였다. 육수를 우리 던 가스불을 끄고 자동차 키와 핸드폰만 들고 그대로 도망치듯 나와버렸다.


‘미친놈. 또라이. 사이코.’


이게 무슨 상황일까. 지하주차장에 세워진 차 안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 도대체 저 상황에서 왜 욕이 나와야 하는 걸까. 그가 제정신이 아닌 걸까 내가 아닌 걸까 혼란스러웠다.


이김에 평소에 하고 싶었던 혼자 호텔 가는 것을 해볼까. 얼마일까 알고나 고민하자 싶어 호텔 예약을 검색하니 만실이다. 그리고 나머지 후진 모텔과 리조트들이 말도 안 되는 두 배 가격이다. 아뿔싸. 오늘 황금연휴의 시작이구나. 마침 남편이 다음날 출근을 안 하니 오늘 외박하기 좋은 날이라 생각했는데. 하필 쉬는 날이라 호텔콕을 못하는 이유가 되었다.


‘아이들 저녁 어떡하지’

‘목욕 끝내주고 바로 밥 먹여야 하는데’

‘집에 가서 애들 밥이나 먹이자’

호텔 가격을 보고 나의 헛된 로망은 접어두고 다시 집으로 올라가려는 순간 남편에게 전화벨이 울렸다. 받을까 말까 고민하는 사이에 전화벨이 멈췄다. 그리고는 문자 하나 도착.


“애들 밥 안 먹여? 목욕 안 끝내? 이거 완전 제멋대로네? 빨리 들어와”


나는 문자를 보자마자 다시 차에 타서 시동을 걸었다. 화가 치밀어 올라서 지금 올라가면 애들 앞이고 뭐고 남편과 소리 지르며 싸울 것 같았다. 그깟 밥 한 끼 계란 프라이라도 해서 먹이 던가 말던가. 목욕은 수건으로 대충 닦고 나와서 로션을 발라주던가 말던가. 아이들에게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느니 남편이 알아서 저녁도 먹이고 목욕을 마무리해보게 내버려 두고 싶었다.


갑자기 배가 허기졌다. 이럴 때라도 혼자서 잘 먹어야 한다고 생각이 들어 집 앞에 추어탕을 먹으러 갔다. 뜨끈한 국물에 밥 한 그릇 통째로 말아서 한입. 풋고추를 된장 찍어 한입. 배부르게 먹고 나니 기분이 좀 좋아졌다. 유치하게 이러지 말고 남편 추어탕이나 한 그릇 포장해서 집에 들어가서 기분 풀어주자. 마음먹은 찰나에 전화가 온다. 남편이다. 추어탕 집에서 받기엔 뭔가 추잡스러워 보여 선 듯 받지 못했다. 마지막 숟가락을 먹으며 포장을 주문하려는데 문자가 왔다.


 "지금 두 시간 됐지? 너 좋아하는 공평한 거 나도 하려고 너 나가 있는 시간만큼 나도 내일 사라질 예정이니 시간 보내고 싶은 만큼 보내"

“나 1박 2일 있다가 들어갈게 그럼.”


이때다 싶어 당당하게 하루 외박을 통보했다. 부재중 통화 5통. 진동이 울리던 말던 차 안에 누워서 밤하늘을 바라보며 잠시 멍하니 있었다. 갈 곳은 없고 나에겐 차뿐이구나. 그냥 차에서 잠시 눈을 좀 붙일까 싶어서 잠이 들려는 찰나에 친정엄마에게 전화가 온다. 느낌이 좋지 않아 받지 않았다. 아, 또 설마 우리 엄마한테 전화했냐. 친정 엄마의 부재중 전화 3통. 맞네. 했네. 유치한 놈. 잠이 확 깨고 화가 나서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어린 애니? 왜 우리 엄마한테 전화해”

“나도 이제 너 지긋지긋하다. 양가 부모님 오시라고 했으니까 너도 들어와. 부모님들께 제대로 말씀드리고 이혼하자.”

“이혼을 왜 부모님이랑 해? 당신과 나 둘이서 하는 거지. 어린애야? 우리 부모님께 절대 연락하지 마!”


이혼식이라도 올리려는 건가. 결혼식도 아니고 이혼하자는데 왜 양가 부모님을 모신 다는 건지. 결혼식을 할 때도 의견이 다르더니 이혼에 대한 생각도 그와 나는 맞는 게 하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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