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한 달 전 우리는 신혼집을 계약했다. 남편이 먼저 짐을 싸서 들어와 살기로 했다. 나는 신혼집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청소를 하며 남편을 기다렸다. 커다란 캐리어와 작은 가방을 들고 남편이 들어오면서 말했다.
"조만간 부모님과 함께 살아야 할 거 같아."
"응..?"
"내가 짐 싸서 나오니 엄마가 서운해하셔."
"아..."
"내가 부모님께 효도를 못해서 나는 네가 우리 엄마한테 효도해주면 좋겠어"
"... 응?"
드라마 대사에서나 듣던 소리를 리얼 현실에서 내 귀로 듣다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그러나신혼의 달콤함에 취해 당장 일어날 일이 아니니 넘어가기로 했다.
아들이 결혼을 해서 신혼집에 보내는 부모 중에 어디 서운해하지 않을 부모가 얼마나 있을까? 그게 어디 아들 가진 부모만의 일인가. 나의 친정 부모님도 내가 짐 싸서 신혼집 들어온 날 두 분이서 눈물 흘리시며 서로를 위로하셨다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난 우리 부모님 모시고 살 생각이 전혀 없었다. 결혼은 그와 내가 하는 것이지 부모님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이때 눈치를 챘어야 하는 건데 신혼의 달달함에 눈이 멀어 전혀 개의치 않았다.
'나 우리 엄마한테도 효도 못했는데?'
입에서 맴돌았지만 내뱉지 않았다. 사랑하는 그와 달콤한 저녁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에.
건강한 부부란 결혼을 한 순간부터는 부모로부터 온전히 독립을 해야 한다. 경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독립을 해야 한다. 그러나 그와 나는 결혼하고 나서도, 아이를 낳고 나서도, 완전히 독립을 하지 못했다. 부모에게 독립은커녕 부모를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남편의 어깨가 너무 무거워 내 어깨까지 짓눌리는 기분이었다. 동시에 그가 그의 부모를 걱정하기 시작하자 쓸데없는 경쟁심이 발휘되어 나까지 나의 부모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이 쓸모없는 '내 부모 걱정' 배틀은 우리의 얼마 남지 않은 에너지를 기생충처럼 갉아먹으며 피폐하게 만들었다.
나는 아이들 방으로 돌아와 누워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왜 그렇게 부모님을 부르려 하는 걸까. 우리 부부는 싸울 때면 왜 꼭 부모님이 엮이는 걸까. 부모 이야기만 나오면 우리는 왜 격하게 예민해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