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이 넘치게 커피를 주는 곳은 고마운 마음도 흘러넘친다. 한낮의 오후, 파스타를 먹으며 햇살과 분위기에 취하고 싶어 화이트 와인 한 잔을 시켰다. 나온 잔 안에는 와인이 조금 들어 있었다. 와인 잔에 눈금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정량을 알 순 없지만, 커다란 잔에 얕게 찰랑거리는 와인을 보면서 순식간에 불행해졌다.
오래 책방에서 진저 라테를 시켰다. 잔도 큰 데, 음료를 얼마나 많이 넣어 주는지, 아래 깔린 생강 청을 섞어 마시기 어려웠다. 기다란 티 스푼으로 커피를 저을 때마다 라테가 잔 밖으로 흘러넘쳤다.
“사장님, 커피를 너무 많이 주신 거 아니에요? 저을 수는 있게 주셔야죠?”
기분 좋은 투정을 했다. 한 바퀴, 두 바퀴, 살살살 음료를 저으며 컵의 경계 밖으로 커피 파도가 넘치지 않게 집중했다.
꽉 찬 커피를 보면서 영미 시 선생님의 딸이야기가 떠올랐다.
“내가 집에서 커피를 내려서 마시고 있었어요. 커피 원액을 넣고 우유를 가득 넣는 걸 좋아해서 늘 커피잔이 봉긋해지거든요. 늘 흘러넘치기 전까지 따라 마셔요. 어느 날, 우유량 조절을 잘 못 해서 커피가 흘러넘친 거죠. 그걸 옆에서 아이가 보고 있었어요. 내가 책상을 닦으면서 엄마가 너무 욕심부렸나 봐.라고 말했어요. 며칠 뒤, 또 실수하지 않으려고 잔에 커피를 조금 부었어요. 그랬더니 옆에서 딸이 이러는 거예요.”
“엄마, 욕심 더 넣어.” 커피에 바닐라 시럽도 아닌, 욕심을 넣으라는 아이의 말이 귀엽고 낯설었다.
카페에 가만히 앉아서 사람들을 바라본다. 커피 한 잔을 두고 서로 처음 본 사람들이 보험 이야기를 한다. 보험설계사가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보여주며 열을 올린다. 저 쪽에서는 학원 수업을 마친 아이가 엄마에게 달려온다.
“잘 갔다 왔어? 출출하지. 뭐 좀 먹을래?”
“응. 나 케이크 먹을래.”
“기다려 엄마가 시키고 올게.”
“아니야. 내가 할래. 내가 할 수 있어.”
아이가 일 층에서 케이크 한 조각을 조심조심 들고 온다.
“우와. 00 이가 해냈네.”
아이의 어깨가 슬며시 올라간다.
뒷 테이블에는 중년의 여성 네 명이 따뜻한 커피 네 잔을 두고 말한다.
“남편이 골프에 빠져서 머리 아파.”
“그게 나아. 우리 나이는 남편 건강한 게 제일 큰 행복이야. 우리 남편은 맨날 어디가 아프대. 너네 남편은 건강해서 좋겠다. 얘.”
내게도 곧 닥칠 삶의 예고편이 들려왔다. 커피잔 안에는 옹졸함, 인색함도 들어 있지만 누군가가 보내는 넘치는 사랑, 하루의 고단함을 녹이는 위로, 친구들과 나누는 즐거운 대화도 담겨 있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커피의 향도 달라진다. 사람이 원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