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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건강 관리-음식 2

오늘 먹은 밥이 내일의 나를 만든다.

by ligdow


‘암세포의 에너지원은 당이다. 암세포는 빠르게 성장하려고 당을 섭취하며, 보다 많은 당을 섭취하고자 스스로 에너지 대사 방식을 변화시킨다.’(대사치료 암을 굶겨죽이다.-나샤 윈터스•제스 히긴스 켈리 지음)에서는 암세포가 더 많은 당을 섭취하기 위해 스스로 에너지 대사 방식을 바꾼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나의 음식 관리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혈당을 최대한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었다.


음식을 만들 때는 설탕이나 올리고당 같은 단맛을 내는 재료를 철저히 배제했다. 과당 함량이 높은 과일도 줄였고, 밀가루로 만든 국수, 빵, 과자 같은 정제 탄수화물은 먹지 않기로 했다. 이런 음식들은 혈당을 빠르게 올리고 결국 암세포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밥은 매 끼니 혹은 하루에 두 끼, 반 공기씩만 소량으로 섭취했다. 그 안에서도 단백질과 지방, 식이섬유가 많은 채소를 함께 섭취해 혈당이 급격히 오르지 않도록 조절했다. 가능한 한 혈당을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균형 잡힌 식사를 하는 것이 목표였다.


암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는 항암식 전문가가 준비한 음식들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균형 잡힌 식단이 규칙적으로 제공돼 음식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집에 돌아온 뒤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장을 보고, 직접 요리하고, 매 끼니를 고민하며 고민하고 만들어내야 했다.

음식 관리에 대한 기본 원칙은 분명히 있었지만, 매 끼니를 제대로 챙겨 먹어야 한다는 의무와 압박감은 때때로 나를 지치게 하기도 했다. 하나의 재료로 만들 수 있는 요리는 제한적이고, 조리법도 단순하니 먹는 즐거움보다는 건강을 위해 반드시 먹어야 하는 일로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애써 지켜내던 식단도 어쩌다 한 번 어긋나면 불안해지고 자책하게 되었다.

‘혹시 이게 암을 다시 깨우는 것은 아닐까?’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 시기에는 작은 선택 하나에도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며 스스로에게 엄격해졌다. 그래서 끼니를 거르는 일은 말 그대로 불가능했다. 치료 약을 깜빡 잊는 것처럼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음식 관리’라는 말처럼 그때의 관리는 철저함이 최우선이었고, 기쁨이나 만족보다 책임과 통제가 먼저여야만 했다. 그때는 그랬다.






7월 검사 이후 본격적인 지켜보기 단계에 들어서면서, 9월에 받은 첫 추적검사는 유독 긴장과 불안이 컸다. 치료자이자 관리자로서 스스로에게 던지는 첫 시험대 같은 느낌이었다.


다행히 원발암 부위는 이전보다 더 아물어 흔적이 옅어졌고 다른 부위들도 모두 정상이었다. 그 결과는 내가 잘 해내고 있으며 앞으로도 잘할 수 있다는 기대와 희망을 안겨주었다. 그 희망을 힘으로 삼아 더욱 철저한 관리와 루틴을 다져나가기 시작했다. 검사 간격이 3개월로 늘어나면서, 12월 검사를 목표로 음식, 운동, 수면, 마음관리까지 한층 더 규칙적이고 안정된 일상을 만들어갔다.



그중에서도 음식은 루틴의 중심이었다. 하루 식단이 머릿속에 자연스레 그려져 식단표를 따로 작성하지는 않았지만 매 끼니 직접 요리하고 사진으로 기록했다. 무엇을 먹을지, 어떤 재료를 선택하고 어떻게 조리할지 고민하는 시간은 매일의 작은 숙제 같았지만, 동시에 내가 나 자신을 돌보고 있음을 깊이 느끼는 소중한 순간이기도 했다.



빵이 당기는 날이면(그런 날이 가끔씩은 꼭 있다) 단호박과 바나나, 달걀, 콩, 호두를 넣어 밀가루와 설탕 없이 전자레인지로 간단히 구워 먹었다. 단호박과 바나나가 선사하는 자연스러운 단맛 덕분에 부드럽고 고소하면서도 은은한 달콤함이 입안을 감쌌다. 같은 재료에 단호박 대신 오트밀을 넣으면 좀 더 담백하고 포슬포슬한 식감의 빵이 완성됐다. 건강을 생각하는 선택이면서도 마음까지 따뜻하게 감싸주는 나만의 작은 위로였다.



제철 채소는 언제나 식탁의 중심이었다. 주로 믿고 다니는 유기농 매장에서 장을 보았고, 그곳에 없는 채소는 로컬푸드 직매장이나 새벽시장에서 구했다. 데치고 찌고 무치며 정성껏 한 끼를 준비했다. 고들빼기나물 무침이나 호박잎 쌈처럼, 자연의 맛이 한입 가득 퍼질 때면 몸이 한층 더 건강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씁쓸하면서도 고소하고, 투박하지만 부드러운 소박한 맛 덕분에 나물은 거의 매 끼니 빠지지 않는 반찬이 되었다.



밥은 현미와 백미를 섞어 짓고, 버섯, 우엉, 곤드레, 콩나물, 무 등 담백한 재료를 듬뿍 넣었다. 양념 없이도 재료 본연의 맛과 향이 깊게 우러나 천천히 씹을수록 고소함이 배어나며 속까지 편안해졌다. 소박한 재료로 차린 밥상이었지만, 그 안에는 매일을 성실하게 견뎌내려는 작고 단단한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10월 이후부터는 현미를 빼고 백미만 먹기 시작했다. 현미의 장점과 혈당 관리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잦은 검사와 긴장 속에 체중이 점차 줄어드는 상황이 더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다. 나는 당뇨병 환자가 아니었고, 그때는 체중 감소가 더 큰 문제라고 판단했다. 적은 양의 밥이라도 조금이라도 체중을 유지하기 위해 내 몸 상태에 맞춰 식단을 조절하는 변화였다.



단백질은 동물성과 식물성을 골고루 섭취했다. 적색육 같은 동물성 단백질이 대장암에 좋지 않아 피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 적정량 섭취는 괜찮다는 의견도 있었다. 수많은 극과 극의 정보 속에서 내가 내린 결론은 ‘중간’을 택하는 것이었다. 지나치게 제한하지도, 무조건 피하지도 않으면서 동물성과 식물성 단백질 각각의 장점을 균형 있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체중과 근육을 조금이라도 늘리기 위해 단백질 섭취는 필수적이었다. 치료 과정에서 빠진 근육을 회복하고 기초 체력을 지키려면 매일 일정량의 단백질을 꾸준히 섭취해야 했다. 또한 면역력을 유지하고 에너지 대사를 돕는 데에도 단백질은 꼭 필요한 영양소였다. 음식을 고를 때는 항상 내 몸 상태와 필요를 우선으로 생각했다. 무엇이 좋고 나쁜가를 따지기보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집중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하루에도 수십 개씩 건강 정보와 마주하고 있다. 포털 메인 화면도 유튜브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은 건강한 사람을 기준으로 하지만, 나는 지금 회복 중인 몸을 돌보고 있기 때문에 그중 어떤 것이 내게 맞을지 더 신중하게 바라보게 된다.



특히 콩을 두고는 한동안 정말 고민이었다.

식물성 단백질로써 분명 좋은 점이 많은 식재료지만, 피트산이나 렉틴 같은 항영양소가 영양소 흡수를 방해하거나 소화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접하고 나서는 섭취 방식을 고민하게 됐다.

시금치에 들어 있는 옥살산도 마음에 걸렸다. 데쳐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몸속에 남아 축적될 수 있다는 설명을 들은 뒤부터는 그런 작은 정보 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잘 챙겨 먹는데도 체중이 늘지 않는 이유가 혹시 매일 먹는 삶은 콩과 두유 때문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올해 4월부터는 두 가지를 끊고, 대신 두유를 발효시켜 요거트로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같은 재료라도 소화와 흡수가 더 편한 방식이 나을 것 같았고, 그건 나를 더 잘 챙기기 위한 작은 변화였다. 내 몸의 반응을 살피며 더 나은 방향을 찾아가는 건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었다. 물론 체중이 늘지 않는 이유가 그것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그때부터 멈춰 있던 체중이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고, 지금도 유지 중이다.



하루 세 번, 정해진 시간에 하는 식사는 단순한 끼니가 아니라 내 몸을 회복시키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내가 먹는 것이 곧 내 몸이 된다는 생각으로 한 끼 한 끼에 정성을 담았다. 어쩔 수 없이 가족과 함께는 어렵지만 혼자 차린 밥상에서 오히려 더 집중하고 단단해지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천천히 꼭꼭 씹으며 식사 시간에는 가끔 재미있는 영상을 보기도 한다.



처음에는 음식 관리가 마치 책임처럼 무겁게 느껴지기도 했다. 무엇을 먹을지, 어떻게 조리할지, 그것이 정말 내 몸에 도움이 되는 선택인지 하루에도 몇 번씩 스스로에게 물었다. 하지만 그런 고민과 실천이 쌓이면서 음식은 점점 일상이 되었고, 나를 지탱해 주는 중심이 되었다. 재료를 고르고 요리하는 모든 순간이 나를 돌보는 시간이고, 그 시간들이 모여 내 삶을 단단하게 지켜주고 있다.





6월 9일 월요일, 검사를 앞두고 금요일부터 음식 조절에 들어갔다. 내일 점심까지는 흰 음식만 먹는다.

두부, 흰밥, 사골국, 닭가슴살, 달걀, 흰살 생선, 바나나. 일요일 오후 5시에 미음을 먹고, 그 이후로는 금식이다. 검사가 끝나는 저녁 6시쯤 병원 식당에서 죽을 먹고 집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매번 이렇다.

작년 12월부터 생긴 CT 조영제 부작용은 올해 3월에는 더 심해졌다. 일주일 넘게 입맛이 없고 속이 불편해, 결국 암 진단 이후 최저 몸무게를 기록했다. 4-5월에 처음으로 겨우겨우 붙여 놓은 숫자들이 한순간에 사라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만두가 먹고 싶을 때는 만두소만 파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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