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소설
01.
내가 초등학생 때는 소라게를 키우는 게 유행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국민학생 때. 마트에서도 살 수 있었고 동네 문방구에서도 살 수 있었다. 친구들 집에 놀러 가면 여러 마리의 소라게를 볼 수 있었다. 소라게는 잠을 자기도 하고, 먹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했다. 직접 보진 못했지만 친구의 말로는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집에 들어가기도 하고 서로의 집이 바뀌어있다고도 했다.
당시 우리 집은 그리 가난하지도 그렇다고 여유가 넘치지도 않는 보통의 집이었다. 이 보통의 집이 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서른 중반이 돼서야 알았다. 부모님은 맞벌이로 늘 바빴고, 나도 소라게가 갖고 싶다고 말할 수 있었지만 말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집에 돌아가는 길은 세 가지가 있었다. 현수네 아파트를 거쳐 가는 길과 마트가 있는 육교를 건너가는 길, 그리고 놀이터를 가로질러 가는 길. 엄마는 육교가 있는 두 번째 길로 다니라 내게 일렀지만 나는 세 개의 길 중 세 번째 길을 좋아했다. 놀이터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세 번째 길은 돌아가는 길이라 집까지 제일 오래 걸렸다. 그러면 그만큼 집에 늦게 도착할 것이고, 퇴근하는 엄마를 조금만 기다리면 되었다.
비가 오는 하굣길에 우산을 쓰고 걸었다. 우산을 흔들며 발을 보며 걸었다. 아빠의 그러면 넘어진다고, 앞을 보고 걸으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지만 그날 발을 보며 걷지 않았으면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달팽이와는 그렇게 처음 만났다. 내 발에 뭉개질뻔한 달팽이는 조그만 나뭇잎 위에 있었다. 나는 잎을 들어 달팽이를 쳐다보았다. 작디작은데 등에 무언가를 업고 있는 달팽이. 친구네 집에서 본 소라게와 비슷했다. 나뭇잎채 달팽이를 집으로 데려왔다. 아니 모셔왔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고이 모셔온 달팽이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비밀번호를 누르는 도어록 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퇴근해서 오자마자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부엌으로 가 음식 준비를 했다. 엄마가 음식을 하는 동안 나는 식탁에 앉아 발을 흔들었다. 한참 발을 흔들다 의자에서 내려 엄마 옆에 섰다.
“엄마, 내가 만약 무언가를 키운다고 하면 어떨 것 같아?”
나는 무언가 허락을 받을 때나 혼이 날 행동을 하고 나서는 꼭 저렇게 묻고는 했다. 엄마, 내가 자전거를 잃어버렸으면 어떨 것 같아? 엄마, 내가 유리창을 깨뜨렸으면 어떨 것 같아? 엄마, 내가 신발주머니를 잃어버렸으면 어떨 것 같아? 엄마, 내가 지윤이네서 자고 간다고 하면 어떨 것 같아? 그럴 때마다 엄마는 다 안다는 듯이 결론을 물어보고는 했다.
내 질문에 엄마는 나를 힐끗 한번 쳐다봤다. 손은 멈추지 않았다. 한 손으로는 소금 간을 하고 한 손으로는 바쁘게 감자를 볶았다. 나는 숨죽인 채 엄마의 대답을 기다렸다.
“뭔데?”
방으로 돌아가 손에 달팽이가 붙어있는 초록잎을 들고 와 엄마에게 보여주었다. 엄마는 힐끗 보더니 다시 시선을 볶던 감자로 옮겼다. 그리고 “그게 뭐야?” 하고 물었다. 엄마의 눈에는 잎 밖에 보이지 않았다. 달팽이는 그렇게 작디작았다.
“달팽이.”
엄마와 밥을 먹고 달팽이의 집으로 사용할 통을 찾았다. 늦게 퇴근한 아빠가 뚜껑에 작은 구멍들을 몇 개 내주어 달팽이의 집을 완성했다. 내가 달팽이의 집을 만들어주었다.
아빠는 내게 달팽이의 집은 아주 약하다고 했다. 특히나 이렇게 작으면 더 약하니, 오래 돌보고 싶으면 손으로 힘주며 잡지 말라고, 생명은 원래 지켜볼 때 제일 행복한 것이라 했다. 나는 비장하게 알겠다 답했다.
수업이 끝나면 제일 먼저 교실을 빠져나와 집까지 뛰어갔다. 발을 보며 걸을 새가 없었다. 쉬고 싶지 않았지만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한번 정도 쉬고 다시 뛰었다. 집에는 달팽이가 있으니까. 나는 달팽이에게 이름을 지어줬다. 예삐. 누가 들어도 강아지 같은 이름을 달팽이에게 지어주었다. 운동장에서 철봉에 매달려 노는 친구들이 “너 어디가?” 하고 물으면 “예삐 보러!” 하고 외치며 달렸다. 아무에게도 예삐가 무엇인지는 설명해주지 않았다.
예삐는 상추를 좋아했다. 당근도 먹긴 했는데 좋아하진 않았다. 나도 당근을 싫어하는데, 그래서 더 좋았다. 예삐는 상추를 먹으면 초록색 똥을 쌌고, 당근을 먹으면 주황색 똥을 쌌고, 포도를 먹으면 보라색 똥을 쌌다.
예삐를 돌보는 건 생각보다 힘들었다. 엄마가 마련 해준 하얀 통이 금세 똥으로 지저분해졌다. 나는 예삐를 잠시 다른 그릇에 옮기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화장실에서 열심히 통을 닦았다. 닦으면서 계속 그릇을 쳐다봤다. 느리다는 것을 알면서도 도망갈까 봐 계속해서 보았다. 통을 다 닦고 나면 구멍 난 상추를 버리고 새로운 상추를 넣어줬다. 예삐가 먹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하나도 지겹지 않았다.
계절이 바뀌자 예삐는 조금 커졌다. 그게 날 흥분하게 만들었다.
“우리 예삐가 자랐어!”
마치 우리 아이가 걸음마를 했어, 처럼 기뻤다. 달팽이가 얼마나 살지, 얼마나 커질지는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이게 달팽이에 대한 나의 기억. 예삐가 죽었는지, 내가 죽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냥 어린날에 소라게 대신 달팽이를 키운 기억. 내 인생에서 무언가를 처음으로 돌보았던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