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소설
02.
동기들과는 계절에 한번 정도 모인다. 종로 5가 6번 출구 골목에 있는 낡은 호프집. 취업에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국문과 04학번 모임이다. 20대 때는 매달 보았다. 열정적으로 술을 먹고, 또 먹고, 내가 술을 먹고, 술이 나를 먹고, 삶에 대해 열띤 토론을 했다. 우리가 읽었던 전공 서적을 바탕으로 뭐라도 아는 듯 인생을 논했다. 누가누가 더 철학적인가. 매번 누가 더 그럴듯한 말을 하는가 대회가 열렸다. 30대가 되자 사는 게 바빠졌다. 모이려 하면 야근이다, 와이프랑 여행 계획이 있다, 남자 친구랑 기념일이다, 하며 모이지 못하는 이유가 점점 늘어났다. 그래서 점점 보지 못하는 달이 늘어났고, 이제는 분기별 모임을 가진다. 그래도 지나가는 그 계절을 같이 한번 느껴보자는 아직은 국문과스러운 이유로.
변한 건 모임 횟수만이 아니었다. 결혼을 한 사람도, 결혼을 앞둔 사람도, 40을 앞둔 비혼자도 모이면 제일 관심 있는 주제는 돈이었다. 막걸리를 마시며 정호승의 ‘슬픔이 기쁨에게’를 외우던 우리는 없었다. 우리의 관심은 이제 재테크였다. 누가 코인으로 얼마를 벌었다더라. 주식은 우량주보단 테마주다. 짧게 먹고 빠지는 것이 최고다. 정권이 바뀌면 무슨 동 규제가 풀릴 것이다. 거길 사야 한다. 이제 이곳엔 니체도 없었고, 짜라투스트라도 없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인지 나는 아까부터 옷을 다 입고도 고민하고 있었다. 고민하며 핸드폰을 본다. 이미 약속시간이 10분 지났다.
[어디야?]
[금방 가]
3분 전에 수현에게 온 메시지에 답장을 하고는 가디건과 우산을 챙겨 집을 나섰다.
“뭐야, 비 많이 와?”
늦게 도착한 내게 담배를 피우러 나오던 호신이 묻는다.
“꽤? 차 안 가져왔어?”
“종로 이 골목에 차를 어떻게 가져오냐. 주차도 안되고. 회사에 두고 왔어. 아씨, 우산 없는데.”
“뭔 걱정이야 사면되지.”
반갑다는 표시로 인사 대신 호신의 어깨를 툭치고 호프집 안으로 들어갔다.
“프리랜서가 왜 제일 늦게 와.”
“지각이야, 지각.”
오랜만에 보는 동기들과 손을 흔들며 자리를 잡는다. 앉자마자 알 수 있다. 오늘의 주제는 부동산이다.
“그래서 막차 탄 게 얼마나 다행인지.”
성현은 지난달 영끌을 해서 성동구에 작은 아파트를 샀다. 평수는 작지만 지어진 지 오래되지 않은 아파트로 상태가 좋다고 했다. 정부 규제로 금리는 올랐고, 대출 규제는 심해졌다. 성현은 규제가 더 심해지기 전 대출을 받은, 이른바 막차를 탄 사람이었다.
“오, 영현이 왔네. 오랜만이다 야.”
지난번 모임에 아이가 아파 오지 못했던 상혁이 나를 보고 인사를 건넨다. 상혁은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우리 중 제일 먼저 장가를 갔다. 어린 나이에 아빠가 되었고 그래서 제일 먼저 돈의 무서움을 알았다. 아이들이 태어날 때마다 집을 옮겨 지금 집은 3번째 집이었다. 전셋집을 그냥 옮기는 것도 힘든데, 아이들 짐이 늘어난 상태에서 이사를 하는 것은 더욱 힘들다는 푸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런 상혁의 표정이 좋아 보였다. 상혁은 청약 때문에 아이를 낳은 건 아니지만, 두 아이 덕분에 드디어 청약의 1순위가 되었다고 했다. 우리는 상혁을 위하여 맥주잔을 부딪쳤다.
혜영은 운이 잘 풀린 케이스다. 결혼을 하며 남편과 영끌 대출을 받았고, 서울의 작은 구축 아파트를 샀다. 몇 년 뒤 전체 부동산 가격이 뛰어 팔고, 꽤 많은 차익을 얻었다. 그 돈에 또 대출을 받아 좀 더 평수를 늘려 아파트를 사고, 또 팔고, 지금은 마포구에 33평대 아파트에 거주 중이다. 3억이 12억이 되었다. 동기 중 제일 재테크에 능한 사람이 되었다.
“내가 코인, 주식 다 해봤는데 역시 투자의 최고는 부동산이야.”
“야, 근데 부동산도 또 오르기만 하는 건 아냐.”
“그러니까 선택을 잘해야지. 정보도 중요하고.”
지용은 재개발을 기다리며 오래된 빌라를 샀다. 재개발 소문이 들리자마자 사서 1년도 안돼서 5000만 원이 올랐다 했다. 어느 시공사가 들어올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남는 장사라고 했다. 이 주변 지역이 모두 새 아파트가 지어지고, 재개발이 되는 중인데 이 구역 하나 남았다며 안될 리가 없다 호언장담했다. 지용은 마치 재개발 관련 직업 종사자처럼 앞으로 재개발될 지역을 우리에게 좋은 정보를 주듯 나열했다.
“재개발은 돼봐야 아는 거지.”
그런 지용의 말에 심기가 불편했는지 태호가 한마디 던졌다. 태호는 부모님과 함께 산다. 지난겨울에 드디어 완공된 새 아파트에 입주 예정이었으나 입주 예정일을 고작 이틀 남기고 조합과 시공사의 공사대금 분쟁이 해결되지 않아 골머리를 썩었다. 당장 입주가 되지 않아 다른 조합원들과 소송을 제기하고, 힘든 시간이었다며 소주를 들이키며 이야기했었다. 다시는 재개발의 재자도 듣고 싶지 않다고 했다. 태호의 말에 기분이 상했는지, 지용의 화살은 나에게로 향했다. 기분이 상했으면 제발 입 좀 다물고 있지.
“영현이 너는? 아직 거기 살아?”
나 대신 수현이 대답했다.
“응. 용산에 아직도 살지.”
“용산도 진짜 많이 올랐지.”
내가 답했다.
“나는 전세야.”
내 말에 지용이 왜 집을 안 사냐며 훈계를 한다. 전공 F 맞았던 놈이 뭐라도 된 마냥. 호신도 옆에서 거든다. 대출도 능력이라며, 지금 집을 안사면 우리는 50대에 후회할 거라고 얼른 집부터 사라고 말한다. 나는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며 물방울이 맺힌 맥주잔을 들이켰다.
언제부터인가 동기모임에 다녀올 때면 불편했다. 여전히 보면 좋은 사람들인데 이상하게 찝찝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 날은 더욱 불편했다. 곧 전세 연장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부동산 이야기가 특히나 무겁게 들렸다.
전세를 살면서 나이스 한 집주인을 만난 다는 것은 생각보다 천운이 필요하다. 계약 시에 세입자에게 연장을 얼마나 할 수 있는지 미리 고지하고, 말을 바꾸지 않고, 다음 전셋집을 알아볼 때까지 적당한 기간을 주고, 누수 등의 문제가 생겼을 때 내가 나서지 않아도 빠르게 해결해주는 집주인을 만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해 보이지만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 집의 주인은 그런 면에서 나이스 했다. 그냥 좋은 집주인으로는 설명이 다 되지 않았다. 노부부인데 원래는 아들을 위해 마련한 집이었으나 아들이 사정이 있어 필요 없게 되어 세를 준다고 했다. 방 2개짜리에 깨끗한, 혼자 살기에 좋은 크기였다. 도배를 새로 안 해도 될만한 상태였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새로 도배도 해주셨다. 덕분에 2년 동안 조용한 동네에서 잘 살고 있었다.
지난봄에 윗집에서 생긴 누수로 옷방 벽지가 울었다. 옷방의 옷들이 젖고 있었는데도 몰랐다. 밑에 집에서 올라와 내게 누수가 생긴 것 같다며 이야기했을 때야 알았다. 하지만 원인은 우리 집이 아니었다. 위층에서 시작된 누수가 아랫집까지 내려간 것이다. 집주인에게 연락을 했고, 집주인은 내게 3번이나 사과 메시지를 보냈다. 불편하게 만들어서 미안하다고. 윗집에 얘기해 최대한 빨리 도배도 새로 하고, 세탁비도 지불하겠다 했다. 옷이 몇 가지 되지 않아 세탁비는 받지 않았다. 원래 한쪽에서 너무 친절히 나오면 나도 그만큼의 친절이 나가는 법이다. 여하튼, 그만큼 나이스 한 분들이었다.
하지만 동기들의 말을 듣고 있으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집주인이 나이스 한 건 나이스 한 거고, 40대를 앞두고 집이 없는 것은 꽤 불안한 일이었다. 나는 이제 소라게가 아니라 뿔소라 대자를 사 먹을 수 있는 어른은 되었지만 집은 없었다. 소라게도, 달팽이도 있는 그 집. 성현처럼 영끌하여 아파트를 뒤늦게라도 사야 하는지, 아니면 지용처럼 재개발 지역을 알아봐 구축 빌라라도 사야 하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 이러다 영영 나만 집 없는 50대가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