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코 달팽이 ㅣ 04

연재 소설

by 오 지영

04.

집이 없는 달팽이는 괴생명체처럼 생겼다. 달팽이는 귀여운데, 민달팽이는 귀엽지 않았다. 그래도 달팽이니까 상추는 좋아하겠지. 나는 어릴 적 키웠던 예삐를 생각하며 그릇장을 열고 그럴듯한 플라스틱 통을 찾았다. 처음에는 눈에 보이는 와인잔을 꺼냈다가 달팽이가 담겼던 와인잔에 와인을 먹을 생각하니 구토가 올라오는 것 같아 잘 쓰지 않는 깊은 통을 찾았다. 그리고 상추 한 장을 씻어 지호에게 건넸다.


“감사합니다.”


지호의 눈이 반짝인다. 나도 예삐를 봤을 때 저랬으려나. 저 나이 때의 아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게 되었을 때 상대에게 무척 감사해한다. 지호는 지금 내게 최대한 감사해하고 있다. 민달팽이를 우리 집에 들여올 수 있게 해 줘서. 우리는 테이블에 앉아서 상추를 먹는 민달팽이를 보았다. 안타깝게도 생물학과 임지호 교수님의 민달팽이 지식은 내게 설명한 그게 다였다. 그렇기에 질문 놀이가 시작됐다.


“그럼 민달팽이는 뭐를 제일 좋아해요?”

“민달팽이의 서식지는 어디예요?”

“민달팽이는 그럼 어디에서 자요?”

“민달팽이의 천적은 뭐예요?”


아이 질문에 대충 대답하면 결론은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멍청한 이모가 된다. 둘째, 거짓말쟁이 이모가 된다. 나는 테이블에 놓여있는 노트북을 켜며 지호에게 양심선언을 했다.


“이모도 잘 몰라. 대신 이모가 검색을 해볼게. 같이 봐보자.”

나는 초록색 검색창에 민달팽이라고 검색하고 나무 위키를 클릭했다.


[민달팽이과 생물이다. 보통 달팽이와 다르게 집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청정지역에 살기 때문에 환경오염을 나타내는 지표로서 중요한 생물이다. 서양난 같은 것을 사면 뿌리 속에 숨어있다가 밤에 기어 나온다. 건드리거나 공격하면 양쪽 더듬이를 집어넣고 동그랗게 웅크리는데, 처음 보면 대체 이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보통 달팽이와 달리 껍데기가 없는 이유는 이동하기 불편하고 귀찮기만 해서 상당한 지장이 있다는 이유로 일부 종이 퇴화해 버렸기 때문이다. 사실 달팽이 껍데기는 그렇게 단단하지 않아서 쉽사리 잘 부서진다. 그러다 보니 여느 달팽이들에 비하면 덩치도 좀 더 커지고 이동도 더 쉬워졌지만, 한편으로는 몸을 보호해줄 장치가 없어서 쉽게 상처를 입게 되었다. 그래서 몸을 보호하기 위하여 외투막도 더 두꺼워지고 더 많은 점액을 분비하게 되었다.]


“이모, 퇴화가 뭐예요?”

“외투막이 뭐예요?”

“점액이 뭐예요?”

“분비는 뭐예요?”


교수님이 내게 질문을 쏟아낸다. 답을 말했는데 또 질문이 돌아오는 상황. 대학생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을 안고 나는 어린이어로 퇴화에 대해 설명한다. 퇴화란, 앞으로 쓸 일이 없어져서 버린 거야. 진화 알지? 그래, 그 포켓몬에 나오는 진화. 진화의 반대가 퇴화야. 글쎄, 왜 퇴화를 하는지 이모는 모르겠네. 강화? 아, 그래. 강화는 사탕이 많이 들어? 글쎄, 이모는 피카츄밖에 모르겠네. 고라파덕도 좋아해. 교수님은 퇴화로 시작해 포켓몬 게임으로 나를 이끌었다. 산으로 가고 있는 대화를 하면서 나의 시선은 계속 나무 위키의 민달팽이에 가있었다.


지호는 잠이 들기 전까지 민달팽이를 보았다. 잘 쓰지 않는 손수건에 아주 살짝 구멍을 내어 통의 위를 덮었다. 도망가서도 안되고, 숨이 막혀 죽어서도 안된다는 지호의 걱정 때문이었다. 손수건은 숨이 막히지 않는다고 설명해 주었지만 지호는 구멍이 있어야 된다 했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직접 가위질을 해서 구멍을 만들었다. 사실 두 번째 손수건이었다. 첫 번째 손수건은 구멍을 너무 크게 잘라 달팽이야 도망가렴 손수건이 되었다. 그래서 두 번째 손수건을 내어주었다. 지호는 이모의 배려에 한번 더 감사해했다. 두 번째 손수건에 첫 번째보다 더 신중하게 구멍을 내었다.


나도 잠이 들기 전까지 민달팽이를 생각했다. 집이 없는 달팽이. 집이 없는 나와 비슷하다 생각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보통의 달팽이였다가 이동하기 불편하고 귀찮기만 해서 변해버린 종이 아니라 나는 어쩔 수 없이 집이 없는 종이 었다. 집이 생긴다면 감사합니다 하고 받을 민달팽이였다.


핸드폰을 들어 불빛을 최대한 줄이고 다시 민달팽이를 검색했다. 유튜브에서 민달팽이를 봤다. 집이 없는 대신 덩치가 더 크고, 달팽이보다 이동도 빠른 민달팽이. 집이 없기 때문에 외투막이 더 두꺼워진 민달팽이.


우리에게 행복에 겨운 세대라고 했다. 낭비하고, 아낄 줄 모르는 세대.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우리는 의식주 중에 주가 해결이 안 되는 세대다. 집 한 채 있는 게 너무나 어려워진 세대. 집이 이미 있는 자들은 집을 더 늘리고, 보통의 사람들은 집 한 채를 얻기 위해 평생을 일을 해야 갚을 수 있는 빚을 지는 세대.


남들 결혼할 때쯤 취업을 했다. 스물아홉. 조금 늦은 나이였다. 전공을 살려보려고 늦게까지 이것저것 해보다 결국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서른이 되기 바로 전에 취업을 했다. 성현의 말에 따르면, 이것도 막차였다. 그리고 남들이 첫 아이를 낳을 때쯤 퇴사를 했다. 회사를 다녀보니 남들과 섞여 일을 한다는 것이 내게는 조금 벅찬 일이었고, 마침 친한 선배가 개인적으로 편집 거리를 주었다. 그 뒤로는 프리랜서 편집자가 되었다. 많이 벌지는 못했지만 내 입 하나 건사할 정도로는 벌었다. 둘은 아니고, 딱 하나. 그래서였나, 결혼은 생각지도 않았다. 남들이 집을 살 때쯤엔 차를 샀다. 전부터 사고 싶던 SUV였다. 다들 내게 안 어울리는 것 같다고 했지만 상관없었다. 전부터 가지고 싶던 드림카가 내 소유가 되었다.


직업도 있고, 차도 있지만 늘 동기 모임에 가면 남들의 속도에 맞추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주 잔소리를 들었다. 그래서인지 남들보다 느린 달팽이 같다는 생각을 몇 번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오늘 보니 나는 그중에서도 민달팽이인 것이다. 집도 없는 민달팽이. 집이란 무엇일까. 집이 있는 것은 진화고, 집이 없는 것은 퇴화일까. 그렇다면 나는 퇴화한 것일까. 남들이 그렇게 산다고 해서, 남들에게 그것이 진화라고 해서, 나에게도 과연 그것이 진화일까. 민달팽이에서 만들어진 물음표가 계속해서 내 안에서 소용돌이쳤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게 그것은 진화가 아니었다. 프리랜서로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데도 대출을 받아 집을 사고, 집값이 오르길 기다리고, 대출금과 대출이자를 갚아나가는 삶은 진화랑은 거리가 멀어 보였다.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늘 내 수준에 맞는 소비를 했다. 흔한 카드 할부도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뭔가를 갚아나가는 능력은 부족했다. 내가 지금 유지하는 삶이 내겐 진화고, 남들 사는 것을 쫓아가려는 것이 퇴화였다. 어쩌면 민달팽이는 퇴화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진화를 한 것 아닐까.


집 없는 민달팽이처럼 가볍게 살고 싶었다. 집보다는 내 몸집을 더 강하고, 튼튼하게 만들고 싶었다. 통에 담겨있는 민달팽이를 보았다. 처음 봤을 때보다 더 강해 보였다. 빛나 보였다.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지호가 민달팽이에게 안부를 물었다.


“쪼마리, 잘 잤니?”

“쪼마리가 뭐야?”

“쟤 이름이요.”

“왜 쪼마리야?”

“포켓몬에 있어요. 쪼마리. 달팽이 비슷한 거.”

지호는 내게 쪼마리를 보여주겠다며 손바닥을 내밀었다. 나는 패턴을 풀어 지호에게 핸드폰을 넘겼다. 지호가 보여준 쪼마리는 벌레 타입의 포켓몬이었는데 귀엽게 생겼지만 집이 있었다. 마치 달팽이처럼 보이지만 민달팽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얘는 집이 있잖아.”

“그럼 어쩌지.”

“다시 지어주면 되지. 지호가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지어줘 봐.”

“그럼, 슈룩챙이!”

“포켓몬 말고.”

“초록이?”


초록이. 지호 동생의 이름이다. 언니의 뱃속에 있다 동생이 되지 못하고 떠나간 아이의 태명. 초록이는 지호가 5살이 되던 해 생겼다. 봄의 초록 초록한 것을 많이 보고 태어나라고 지은 초록이. 새 생명에게 어울리는 좋은 태명이라고 생각했는데, 안타깝게 초록이는 세상에 나오지 못한 채 떠나갔다. 지호는 동생이 태어나길 무척 기다렸다. 어쩌면 영주의 남편보다 더 기다렸으리라. 5살 난 아이에게 동생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음을 알리는 것은 너무도 어려웠다. 설명하고 설명해도 지호는 다음날이면 엄마 뱃속의 초록이를 찾았다. 갑자기 언니가 보고 싶어 졌다.


“초록이 말고.”

“테디?”

“그래 좋아. 얘 이름은 이제 테디.”


테디 베어의 테디일 것이다. 무척 곰인형 이름 같지만 좋다고 생각했다. 나도 예삐에게 제일 강아지 같은 이름을 지어주었으니. 우리는 밥을 먹으며 테디를 보고, TV를 보다 테디를 보고, 불이 꺼진 상태에서 불빛을 비추어 테디를 보고, 깻잎으로 테디의 저녁밥을 바꿔주었다. 테디는 깻잎을 싫어했다.


졸린지 눈을 껌뻑 껌뻑하는 지호가 내게 묻는다.

“이모, 테디 내가 집에 데려가도 돼요?”


분명 언니가 한숨을 쉴게 뻔했다. 나는 지호를 한 팔에 안고, 소파에 등을 기댄 채 지호에게 묻는다.


“이모가 어제 뭐라 했지? 테디는 필요하지 않아서 집을 없앴다고 했는데."

“퇴화!”

똑똑한 7살. 장한 7살. 어쩌면 영재일 7살.


“테디는 집이 없고 싶어 했는데 집으로 데려가는 게 맞는 걸까?”

지호는 심각하게 고민했다.

"지호야. 이모 생각에는 퇴화는 또 다른 진화 같아."

"진화?"

"집을 없앤 것도 결국엔 진화인 거지."

이해를 했는지 못했는지 모르겠지만 지호는 아 소리를 내며 끄덕였다.

“우리 내일 화단에서 테디와 인사를 하자.”

“슬프지만 알겠어요.”

지호는 마치 어른 같은 말투로 내게 말하고는 그대로 잠에 들어버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기어코 달팽이 ㅣ 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