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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효복 Oct 21. 2023

우산 펼치기

우산 펼치기          




전화를 할 때마다 비가 쏟아졌다   

밤낮으로 걸었으므로 우기였다

골목 안에 오래 서 있었다


예보는 자주 빗나가서

우산을 준비하지 못했다

어긋난 날씨는 짐작이 어려웠지만

나는 믿는 일에 한결같았다


골목이 잠겼다

여름이니까 괜찮다

쉽게 찢어질 수 있다고 해도

나는 떠오를 것이고 잘 마를 것이다


보이지 않던 얼룩에 물이 고이고

웅덩이 안으로 검은 새떼가 날아들었다


펼치지 않은 비옷은 가방 속에 있고

비와 햇빛 사이를 오가며

나는 녹을 흘리고 있었다  

     

아무것도 아닌 감정들로 흐려진 이름들이 주소록에 남았다

전화벨이 울리고

어느 곳의 우기가 나를 불러 세우는지


비가 내리고

창 닫히는 소리

난간에서 사라지는 얼굴들


비에 잠겨 손목을 잃어버렸다

젖지 않은 사람을 향해 헤엄쳤다





계간 『시로여는세상』2023 봄호 발표





photo-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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