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길들이기
그는 해체되어 회전문 안에서 배양되었다
난산 끝에 거대한 그림자를 낳았다
다리만 긴 그 희귀 곤충은
얼마 남지 않은 남자의 살점을 뜯어먹는다
끈질기게 달라붙어 몸을 휘감는 불편한 동거는
빛이 없어도 계속되는데
그늘에선 서로가 경계를 푼다
발이 많은 그림자끼리는 쉽게 들키고 몸을 키우며
한 번에 멀리 뛰어오른다
주차장에 웅크린 불안과 비둘기의 잘린 발
벤치 위에 구부린 잠을 끌어와 거미처럼 공중을 넓힌다
한낮에도 햇빛 아래를 활강하는 곤충은
겁 없이 몰려다니는 아이들 같아
빛에 녹아버릴까 걱정이 되기도 하는데
남자가 밥을 먹는다 혼자가 아니어서 수저를 건넨다
보이지 않는 손이 젤리를 굴리고 흔들흔들 찰리푸스를 듣는다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어깨를 내주고 발을 맞춘다
나눠 가진 그림자들이 탈피를 꿈꾼다
발아래 깊숙한 곳에서도 탈피한다
햇빛 아래 남자를 업은 그림자가 걷는다
분리불안을 앓고 있다
<문장웹진> 2023. 10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