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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효복 Nov 19. 2023

코끼리 씻기기

코끼리 씻기기      



                

어쩌다 흘린 나를 주웠다는데 

더는 들킬 게 없어진 난

그늘 깊은 집에서 불안을 키웁니다  

   

가만히 두어도 잘 자라는 불안은

어두운 방을 차지하고 누워 귀를 세워요

비좁고 눅눅한 그곳에서 살을 찌웁니다 

시간을 퍼먹는 코끼리 같아요

      

아프고 뒤처지고 싸늘합니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것 같아요 

사람들은 나를 굴려 소문을 만들지요

      

커지는 코끼리가 나를 재촉합니다 

귀를 세차게 펄럭이고 코를 휘두르고 

진흙에 몸을 더럽힙니다    

 

샤워기를 틀어요 그 큰 몸을 씻어냅니다

먼지를 가라앉혀요 넘쳐흐르는 기분을 즐깁니다 

거품과 함께 미끄러집니다

모난 생각들은 어느 만큼 보드라워질까요 

    

코끼리 너머의 코끼리들

밀려나고 숨어있던 얼룩의 굵은 다리들 무수한 주름들

푹 패인 커다란 발자국을 지우며 

    

어제보다 가벼워지기를 

물 밖의 세계가 맑아지기를 바라는데요

     

창턱에 걸쳐진 긴 코가 재밌게 보이는 날 

난 조금 웃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문장웹진> 2023.10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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