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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효복 Nov 23. 2023

구름 속으로 발을 넣었다

구름 속으로 발을 넣었다   



                

남자는 오랫동안 공중을 읽어왔다  

성공 또한 해지도록 읽었다

눈이 짓무르도록 한 곳만 보았다     


베란다 창에 몸을 기댄 채

시선을 멀리 두면 가진 게 많아지는 것 같았는데  

   

먼 산 너머 구름만큼 부푸는 신발을 갖고 싶어

꽉 낀 구두를 벗어난 젖은 발은 

건널 곳이 많은 발은

희고 아름다운 맨발은

     

남자가 뛰어내렸다

앵두의 목이 길어지고

흰 손들이 한꺼번에 펼쳐져 그를 받아안았다 

    

가벼워 얇은 잠처럼 쉬이 찢어지는

닿을 듯 말 듯 허공에 잠긴 저 꽃잎은 

땅에 닿지 못하고     


제 것이 아닌 허물을 나눠 가질 수 없어서

방향 없이 흩날리는데    

 

꽃부리가 놓아버린 맨발 위로 앵두꽃잎 내려앉고   

  

추락인지 비상인지 알 수 없어 비가 내린다 

벌어진 입이 울음인지 웃음인지 알 수 없어 꽃잎 진다

     

무른 흙 위로 둥근 꽃무덤이 젖는다

저 떨궈진 꽃잎들은 머지않아 붉은 생을 일으키겠지    

 

그는 오늘 한꺼번에 많은 잎을 떨궜다 

팔다리를 잃었으므로 꿈을 셀 수 없다  

   

우는 것들의 한기로 봄이 느리게 지나갔다      




<문장웹진> 2023. 10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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