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흘린 나를 주웠다는데
더는 들킬 게 없어진 난
그늘 깊은 집에서 불안을 키웁니다
가만히 두어도 잘 자라는 불안은
어두운 방을 차지하고 누워 귀를 세워요
비좁고 눅눅한 그곳에서 살을 찌웁니다
시간을 퍼먹는 코끼리 같아요
아프고 뒤처지고 싸늘합니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것 같아요
사람들은 나를 굴려 소문을 만들지요
커지는 코끼리가 나를 재촉합니다
귀를 세차게 펄럭이고 코를 휘두르고
진흙에 몸을 더럽힙니다
샤워기를 틀어요 그 큰 몸을 씻어냅니다
먼지를 가라앉혀요 넘쳐흐르는 기분을 즐깁니다
거품과 함께 미끄러집니다
모난 생각들은 어느 만큼 보드라워질까요
코끼리 너머의 코끼리들
밀려나고 숨어있던 얼룩의 굵은 다리들 무수한 주름들
푹 패인 커다란 발자국을 지우며
어제보다 가벼워지기를
물 밖의 세계가 맑아지기를 바라는데요
창턱에 걸쳐진 긴 코가 재밌게 보이는 날
난 조금 웃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문장웹진> 2023.10 발표
Photo-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