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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유전자로 결정되는가?

유전자, 환경, 개인의 의지

by 공상과학철학자
본 브런치북은 과학적인 시선으로 인간사회를 탐구해 보며, 함께 살아감을 생각해 보는 철학 시리즈입니다.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유전자인가, 환경인가, 개인의 의지인가?


일단 개인 의지는 제쳐두더라도, 유전자와 환경 중 어느 것의 영향이 크냐부터가 풀어내기 어려운 난제다.


이를 생각해 보기 위해, 우리에게 언제나 아이디어를 주는 코끼리를 떠올려 보자.

아프리카 초원을 달리는 코끼리는 시속 40km까지도 속도를 낼 수 있다. 인간의 유전자는 코끼리보다 느리게 달리도록 설계되었다.

야생 동물원에서 차 밖으로 나와 코끼리 심기를 건드리면, 코끼리는 달려올 것이고, 대부분의 사람은 코끼리에게 달리기를 따라 잡혀 치명적인 공격을 당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러나 매일 꾸준히 달리기 훈련을 한 육상 선수들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100미터를 10초에 주파하는 선수들의 시속은 36km인데, 순간적인 속도는 시속 40km를 넘는다. 즉, 코끼리보다 먼저 스타트를 끊어서 도망쳤다면 코끼리의 추격에서 가까스로 도망쳐 차에 탑승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운전자는 바로 차를 출발시켜야 한다.).


우리는 코끼리보다 느리게 달리는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환경이라는 후천적인 노력으로 타고난 한계를 살짝 뛰어넘을 수도 있다. 우리의 운명에는 유전자와 환경이 모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개인의 의지도 운명에 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개인의 의지를 개인이 주체적으로 내는 것인지, 유전자가 내도록 만드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과학자들, 철학자들의 논쟁이 있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사회 환경적 유전자, 밈(Meme)


환경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흥미로운 개념 중 하나는 바로 밈(Meme)이다.

유전자 결정론의 대가, 리처드 도킨스가 제시한 개념이다.

그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인간이 생물학적 유전자를 통해 신체적 특성을 물려받는 것뿐만이 아니라, 아이디어, 문화, 행동 양식 등을 '밈'이라는 무형적 유전자를 통해 다음 세대에 전달한다고 했다.

밈은 과거에는 모방과 인쇄를 통해, 현대에서는 미디어와 SNS를 통해 퍼져나가며 진화한다.


늑대와 함께 발견된 러시아 어린이들의 사례는 '밈'의 중요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인간은 '말을 할 수 있는'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다. 하지만 말을 배울 수 있는 결정적인 시기에 사람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자란 늑대 소녀들은 결국 말을 하지 못했다.

이는 말할 수 있는 유전적 잠재력이 있더라도, 언어라는 사회적 환경(밈)이 주어지지 않으면 그 능력을 발현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말을 할 수 있는 하드웨어(뇌와 발성기관)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그 하드웨어를 작동시킬 소프트웨어(주변 사람들의 언어)의 입력 시기를 놓친 것이다.


그래서 현대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언어는 물론, 사회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모든 법, 제도, 문화, 관습은 인류 집단의 생존을 높이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전승하고 축적해 온 '밈'의 집합체가 된다. 그리고 그것은 개인의 특성을 구성하는 한 부분이 된다.



유전자가 묶는 강한 사슬


그러나 사회적 환경으로 사람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매우 부분적이고 제한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일란성쌍둥이 연구는 이를 증명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일란성쌍둥이들이 좋아하는 취미, 선호 색상, 이성친구 이상향 등 비슷한 성향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환경이 성격과 행동에 영향을 주더라도, 그 바탕에 깔린 '본질적인 기질'은 유전자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손'을 예로 들어 보자.

피아니스트의 손은 수많은 연습을 통해 유연하고 정교한 근육을 가지게 된다. 골프 선수는 검지와 중지의 근력과 감각이 무척 좋을 것이다. 건설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손은 굳은살이 박이고 두꺼워진다. 때로는 사고로 손가락이 잘려나가기도 한다. 환경에 의해 손의 피부와 숙련도가 일부 변하는 것이다.

하지만 손이라는 기본적인 속성, 즉 손가락 뼈가 5개인 것이나, 손톱이 붙어있다거나, 오므렸다 폈다 하는 것은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 것이다. 아무리 훈련을 해도 손톱이 사자처럼 날카로워지거나, 손가락이 6개가 되거나 날개로 변하지는 않는다.

환경이 유전자의 근본을 바꾸지는 못하는 것이다.


손이 그렇다면 다른 신체 기관인 뇌도 비슷할 것이라는 추정 역시 충분히 가능하다.

학습 경험과 즐겁고 괴롭던 기억들은 뇌의 특정 부위를 발달시키지만, 뇌의 구조와 신경 회로를 설계하는 것은 결국 유전자다.

특정 분야에 대한 학습 능력, 성격에 영향을 미치는 호르몬의 민감도는 유전자의 영향을 받는다.

수학에 재능이 있지만 음치인 학생에게는, 아무리 노래 연습을 시켜도 어느 정도만 개선될 뿐, 원래부터 가수의 재능이 있는 학생들의 노래 실력을 따라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결국 환경은 유전자라는 설계도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건축물'에 색깔을 칠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이 유전자라는 설계도에 담긴 가장 강력하고, 결코 바뀌지 않는 명령 중 하나는 무엇일까?

바로 '생존'이다.

환경이 아무리 각양각색이더라도, 인간이 추구하는 궁극적 목표는 변하지 않는다.


혹시 당신에게 주어진 환경이 매우 높은 인생 난이도를 테스트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기억하자.

당신의 유전자가 당신의 근간이며, 모든 유전자는 주어진 환경에 최대한 적합하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사실. 그리고 태어난 이후에도 유전자는 또다시 적응하며 생존해 나가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음을 말이다.

유전자의 힘을 믿어도 좋다. 필요한 것은 그 힘을 깨울 굳건한 마음과 실천 한 스푼뿐이다.


그리고 또 하나.

유전자의 바뀌지 않는 궁극적 목표 나머지 하나는 바로 '번식'이다.

직전 브런치북 [영혼을 보듬는 새 시대의 과학철학]에서는 다루지 못했던, '번식' 본능에 대해서 이제 본격적으로 파고들어 가야 할 차례다.

우리는 왜 아름다움에 끌리고, 사랑에 빠지고, 질투와 집착을 느낄까? 우리의 사랑도 유전자의 꼭두각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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