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크리스마스 선물로 시작된 입덧은 나 혼자만의 비밀이었다. 그러나 해가 바뀌면서 점점 심해져 숨길 수 없게 되었다.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토하고 싶은 것은 것은 기본이다. 쉽게 바로 알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나 할까.
"아가야 괜찮다. 다 아는 병인데 걱정하지 말고 잘 먹어야 한다."
사랑스러운 시어머니 말씀이다. 하지만 죄송한 마음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사다 주겠다고 하는 신랑의 배려도 귀에 들리지 않는다. 우선 먹을 수가 없으니 말이다. 먹으면 돌아서서 토하게 되니 먹기를 포기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밥 냄새조차 싫을 때도 있으니 너무 심한 일이다.
긴 겨울에도 농촌에는 할 일은 많다. 볏짚으로 새끼를 꼬아야 하고 가마니를 만드는 일도 해야 한다. 가마니는 틀로 둘이서 짜야하기 때문에 아무리 입덧이 심해도 그냥 누워만 있을 수도 없다. 차라리 일하면서 극복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잠시라도 잊으려는 생각에서다. 물론 남편은 가장으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쉬지 않고 힘써 일을 한다. 틈만 있으면 추위를 무릅쓰고 산에 올라가 나무를 해서 지게에 지고 가까운 도시에 내다 파는 일을 계속하여 가계에 보탬이 된다. 한 번은 남편이 나무를 팔러 갔는데 해가 이미 기울고 날이 어두워졌어도 늦어진다. 함께 간 이웃 아저씨는 벌써 귀가했는데 걱정이 되어 언덕 위에서 올라오는 길목을 바라보며 기다린다. 시간은 어둠과 함께 별들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추위를 잊으려고 하나, 둘 별을 헤아려도 발부터 시려오는 차가운 공기는 더욱 움츠려 들게 한다. 발길을 돌리려 할 때 언덕 아래에서 움직이는 그림자가 기다리고 있는 엄마 쪽을 향하고 있다. 가까워져 걷는 모습을 보니 남편이 분명했다.
"여보. 왜 이렇게 늦었어요."
"색시 주려고 도넛을 사 갖고 오느라고 늦은 거야. 추운데 뭣하러 여기까지 나왔어. "
"걱정이 돼서요. 이웃 아저씨는 벌써 왔다는데 늦어지니 무슨 일인가 해서요. 어머님도 기다리고 계세요."
부엌에 들어간 엄마는 서둘러 늦은 저녁상을 차려 방으로 들고 들어왔다. 아들을 기다리던 시어머니도 함께 한 세 식구의 오붓하고 행복한 식탁이다.
"아가야. 뱃속의 아기를 위해서라도 많이 먹어라 알았지. 아들도 수고했어."
"네, 어머님."
아들과 며느리 둘이서 합창하듯 대답한다.
춥고 길었던 겨울이 끝나고 따뜻한 봄날이 새들의 노래 따라 찾아왔다. 어느 토요일 오후 예고도 없이 친정어머니께서 두 여동생을 데리고 내가 사는 시댁에 오셨다. 가깝다면 가까운 거리임에도 왕래할 수 없었던 불문율이라도 있었던가.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았노라는 말 밖에 다른 설명이 필요 없음이다. 여러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마당으로 내려서는 언니를 향해 동생들이 달려와 셋이서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훔친다. 그리고 친정 엄마의 품에 안긴다. 몇 년 만에 느껴보는 편안함이다. 장모를 맞이한 사위는 두 사돈이 손을 잡고 인사하는 사이 두 처제와 반가운 미소를 나누며 방으로 들어간다. 친정어머니와 동생들이 갖고 온 보따리를 푸니 딸이 좋아하는 먹거리들이 가득하다. 구하기 어려운 과일 통조림도 있다. 소문으로 임신했다는 소식을 들었나 보다. 그리고 입덧으로 고생하더라는 얘기도 아울러 들었는지 염려하는 눈빛으로 엄마를 바라본다. 이야기 꽃을 피우다 보니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갔다. 걸어서 돌아가야 할 길이기에 못다 한 이야기는 다락에 숨겨 두기로 하다. 딸을 두고 떠나는 친정어머니와 두 동생들의 모습이 멀어져 점점 작아진다. 아주 작아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일 줄 모른다.
여름은 더위와 싸우기도 힘겨운 일이다. 한낮의 거리엔 사람의 왕래도 드물다. 이제는 견딜만하다. 들판의 곡식들이 점점 살찌우고 있다. 엄마의 배도 불러왔다. 누가 봐도 아기를 낳을 것이라는 얘기를 할 모습으로 둔하게 보였다. 9월이 시작되었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닷새째 날 저녁밥을 먹고 잠을 자려는데 잠이 오지를 않는다. 이상하다 생각할 때 배가 아파 온다.
신랑이 주무시는 시어머니를 깨운다.
"아무래도 진통이 시작되는가 보다. 아들, 솥에 물을 가득 붓고 아궁이에 불을 피우도록 해."
시어머니께서 서두르신다.
"아가야. 첫아기라 힘이 들 거야. 힘들더라도 참아야 된다."
시어머니의 말씀이 들리지도 않을 만큼 배는 굉장히 아프기만 하고 얼굴에는 땀이 흐른다. 초저녁에 시작된 진통은 자정을 넘기고 있다. 신랑도 시어머니도 지칠 만도 하다. 잠시 눈을 붙이는가 싶다. 성급한 닭들이 새벽을 깨운다. 엄마에게 다시 심한 진통이 온다. 어쩌면 마지막 진통인지 모를 만큼 굉장하다. 같이한 시어머니께서
"그래, 힘을 줘야지! 조금만 더! 힘을 내."
"어머님! 너무 힘이 들어요. 죽을힘이 들어요."
"엄마 되기가 쉬운 게 아닌 거야. 이제 다 왔어. 다시 하는 거야."
"자!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으앙!!!"
새벽닭의 울음소리와 함께 첫 딸을 품에 안는 순간이다.
"아가야 수고했다. 고생했소 여보."
시어머니와 남편이 같이 한 말이다. 열일곱 살 아기가 아기를 낳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