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신부야.” “키가 책상다리만 해,” “그래도 저 눈빛을 봐 야무지게 생겼는걸.” 혼인예식 때 들었던 말들을 새기며 엄마는 절대 울지 않기를 마음속으로 다시 다짐한다. 시댁은 단칸방이다. 아직은 어린 신부인지라 시어머니는 가운데 누우시고 오른쪽에 아들 그러니까 신랑이 자리를 잡고 신부인 엄마는 홀시어머니 왼쪽 팔에 의지하여 잠을 청하는 그림이다. 혈기 왕성한 스무 살 청년도 눈만 흘기고 어쩔 수가 없는 딱한 처지이다.
그러나 어린 핑계만 댈 겨를도 없이 새벽부터 먼저 일어나 불을 때 밥을 하고 빨래도 해야 한다. 시댁도 살림 형편이 친정과 비슷하다. 남의 밭을 조금 빌려 씨앗을 뿌리고 거두는 작은 농사일을 할 따름이다. 시댁은 식구가 적은 것 한 가지가 다를 뿐이다. 어린 신부는 시어머니와 함께 낮에는 남의 집 일을 해야 했다. 밤에도 다른 사람 집의 길쌈을 하여 밤낮을 구별할 수 없을 만큼 부지런히 일을 한다. 인형같이 예쁘고 작던 손은 거칠어질 대로 거칠어진다. 신랑은 산에서 나무를 해서 지게에 지고 이십 리 넘는 도시에 내다가 팔아 살림에 보탠다. 착한 시어머니에 착하고 성실한 며느리가 들어왔다고 이웃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유혹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웃에 비슷한 처지의 시집온 두 살 위인 언니가 엄마를 유혹하여 도시로 도망가자고 제안을 하였다. 어린 마음에 보따리 싸서 뒤꼍에 감췄다. 다음날 새벽 몰래 잠자리를 빠져나와 문밖에서 기다리는데 약속한 언니가 오지 않는 바람에 그냥 주저앉고 말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약속한 언니 혼자서 가출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후로는 두 번 다시 그런 생각을 품지도 못했다. 방향감각도 없어 길도 모르겠고 학교는 근처도 안 가봤으니 글을 모르니 창살만 없을 뿐 교도소가 따로 없겠다 하는 생각도 가져 보았다. 신랑은 시어머니 심성을 닮아 착하기만 하였다. 융통성은 없는 사람이다. 콩 하나를 심으면 반드시 콩이 하나 싹이 나와야 된다.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손해를 입히는 그런 반칙적인 행위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야말로 ‘심은 대로 거두리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농부의 삶이 맞춤형이다. 그냥 아직은 오빠이려니 하는 맘으로 사노라면 정이 들겠지. 그리고 무엇보다 어떤 실수라도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감싸주시는 시어머니가 계시니 무엇이 걱정이냐? 든든한 응원군이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힘찬 발걸음을 옮기기만 하면 된다.
신랑과 둘이서만 갖는 시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시어머니께서 장에라도 가는 날에는 둘 만의 오붓한 시간이다. 하지만 서먹하고 어색하기란 마찬가지이다. 성적인 충동이 아직은 더딘 게 사실이다. 손을 잡아도 느낌은 무덤덤하다. 뽀뽀를 하려 해도 쑥스러운 얼굴이 왜 그렇게 붉어지는지 괜히 신랑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신랑도 신랑대로 꼬마 색시를 유리구슬처럼 상처를 내지 않으면서 곱게 성장하도록 지켜줘야 할 의무가 있는 입장이다. 생각하면 이 만남은 너무나 때 묻지 않은 순수한 한 가정의 시작이 아닌가? 나이 차이가 많으니 신랑은 신부의 순진함을 이해하여 이마를 마주하고 달래어 상처를 주거나 받지 않으며 서로 공간을 채워 가노라면 행복한 내일이 오리라 믿는다.
6월로 접어든 어느 날 아침식사를 마친 시어머니께서 시장에 다녀오겠다고 외출준비를 서두른다.
"편히 다녀오시지요." 신랑과 며느리는 각각 삽과 호미를 들고 따라나서며 인사를 한다. 밭에 무성한 풀을 뽑아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비록 남의 땅을 빌려서 일을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내 땅을 갖는다는 희망을 품고 열심히 일을 한다. 밭고랑에 둘이서 나란히 앉아 소곤소곤 얘기하면서 풀을 뽑으니 덜 지치고 빠르게 시간이 흐른다.
시장에서 돌아온 시어머니의 보따리를 풀어놓으니 생선과 고기를 비롯한 반찬거리와 며느리 간식으로 산 빵과 과자도 들어있는 게 보인다. “누구는 좋겠네.” 신랑이 시샘하듯 한마디 한다. “누가 혼자 먹을 가 봐요.” 색시가 당차게 화답을 한다. “그럼. 그래야지. 늘 서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거야.” 시어머니의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