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살 꼬마 신부

10남매를 낳을 전주곡 /5남5녀/

by 이상수

양지쪽 담벼락 밑에서 희남이를 비롯 아이들 셋이서 소꿉놀이를 하고 있었다. 이웃을 모두 합해야 초가집 세 채뿐인 외진 산골 마을이니 아이들은 모두 모인 셈이다. 3월도 하순에 접어들었지만 아직은 바깥공기가 조금은 차갑게 느껴진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이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아들들은 어려운 살림에도 걸어서 십리가 넘는 학교에 보냈지만 딸들은 엄두도 낼 수 없는 딱한 처지였기 때문이었다. "희남아."하고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가 담을 넘어온다. "다녀올게."하고 엄마에게로 달려온 희남에게 엄마는 손님이 오셨으니 손을 씻고 인사를 드려야지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희남이는 손만 씻고는 괜히 무서운 생각에 옆방으로 들어가 구석에 숨어 있었다. 잠시 있으려니 손님으로 오신 아주머니가 내가 있는 곳으로 와서 두 팔로 덥석 안아 코를 닦아주며 "우리 집에 가 살자."라고 꾀었다. 쌀밥을 해주고 고운 옷도 입혀준다고도 했다.

손님이 다녀 간 그날 밤 엄마와 아빠가 말다툼하는 것을 잠결에 들을 수 있었다. "이제 겨우 열두 살이야 어린것을 어떻게 보내." 아빠의 말이다. "보낸다. 못 보낸다."로 다투다가 끝내는 긴 논쟁을 거쳐 엄마의 "굶기느니 저나 먹고살게 보내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려 결론이 났다. 시집을 가라는 거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자 희남의 눈가에 뜨거움이 느껴진다. 혼사가 이렇게 결정된 까닭이 있다. 그즈음 이 지방에는 대추 한 알로 끼니를 때운다는 흉년이 휩쓸고 있었다. 평소 엄마의 말을 새겨보면 굶느니 밥이나 먹을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이 불쑥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얼마 후 이른 새벽에 엄마가 희남이를 깨웠다. 부엌으로 데리고 가서 가마솥에 데운 물로 머리를 감기고 몸을 씻겼다. 속옷을 갈아입혔다. "가마가 오면 울지 말고 타라고." 했다. 해도 뜨기 전에 낯선 어른들이 가마를 메고 와서 조그만 보따리 하나를 엄마에게 주었다. 보따리를 푼 엄마는 우는 희남이를 달래며 새로 지은 무명옷으로 갈아입혀주며 시어머니, 신랑 말 잘 듣고 밥도 많이 먹으면 못쓴다며 글썽거렸다. 안 가겠다고 엄마에게 매달리는 희남이를 가마꾼이 덥석 안아다 가마에 태웠다. 가마꾼들의 물씬한 술냄새와 억샌 팔뚝의 근육을 잊을 수가 없다. 문틈으로 보니 돌아 앉아 훌쩍대는 엄마의 모습을 가슴 한 곳에 깊이 새기게 한다. 서서히 가마가 움직이는데 울긋불긋 단청된 가마의 창문 사이로 휘날리는 하얀 눈발은 시집가는 신부에게 손짓하는 인사인 듯싶다. 신부의 아버지가 혼자서 힘없이 가마의 뒤를 따르고 있다.

신랑 집은 십여 리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이웃 동네이다. 가깝다면 가까운 거리이다.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리니 벌써 시댁에 도착했나 보다. 가마가 마당에 닿자마자 성급한 동네 아낙네들이 가마의 문을 슬며시 열어 본다. "꼬마각시야, 그래도 살결은 고운데 이제 겨우 열두 살이라고." 하며 킬킬거린다. "별소리를 다하네 어서 주방으로 가서 일들이나 하지. "낯익은 목소리가 들린다. 바로 지난번 우리 집에 손님으로 왔던 그분이다. 그러니까 시어머니시다. 반가웠다. "우리 아기가 오느라고 고생이 많았지." 방으로 들어간 꼬마각시는 잠시 후 족두리에 원삼으로 갈아입고 신부화장을 하고 사모관대로 성장한 스무 살의 신랑 앞으로 안내를 받으며 나온다. 신랑과 맞절을 했다. "신부의 키가 상다리만 밖에 안 되네."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냐, 키는 작아도 저 초롱초롱한 눈빛을 봐 보통은 아니겠는데." 하는 수군거림이 귀에 들린다. "그래, 오늘부터 절대 울지 않는다." 희남이는 속으로 굳게 다짐을 했다. 얼떨결에 예식은 시키는 대로 진행이 되고 끝이 났다.

시가는 홀어머니에 외아들이었다. 시아버지 되시는 분은 신랑이 아홉 살 되던 해 돌아가셨기에 둘이서 살아온 것이다. 방이 하나뿐이어서 건장한 신랑과 그야말로 초조도 겪지 않은 어린 신부를 위해 그날은 시어머니가 이웃으로 마을을 갔었다고 내게 얘기해 주셨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