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편해야지>
미용실에 가려고 머리를 감았다. 대중목욕탕에서 이발을 해 오다가 코로나19로 인해 미용실로 옮겼다. 그런데 지난번 머리카락을 자를 때 여자 원장이 머리를 감기고 잘라주었기 때문에 오늘은 집에서 미리 감고 가는 것이다. 달력에 분명 입춘 절기임을 적고 있는데 아직은 영하의 날씨다. 모자를 쓰고 가면 머리카락이 눌려 다시 감을지도 몰라서 모자도 쓰지 못한 채 올 때 쓰려고 작은 가방에 넣어 숨겨 놓았다. 작은 미용실엔 원장을 비롯 원장보다 약간 키가 큰 실장 미용사 그리고 머리를 감겨주고 계산도 하는 아가씨 이렇게 셋이 일하는 곳이다. 지나다가 <무지개 미용실> 간판 밑에 '남성커트전문'이라는 안내 표시에 미혹되어 정해진 것이다. 그렇다고 남성만 아용하는 것은 아니다. 여성들도 파마를 하기 위해 오는 곳이다.
이발을 마치고 미용실에서 나오니 곧바로 전화벨이 손짓한다. 아내에게서 온 전화다.
"여보. 양파 한 봉지와 오이 두 개 사 가지고 오세요."
"알겠습니다." 미용실에서 집 쪽으로 오는 길 세 번째 위치한 야채가게를 아내도 알고 있었다. 가게에 들어가니 점심식사를 하는 부부가 앉아있었다. 삼십 대 후반인듯한 남편이 일어서서 나온다. 양파는 작은 봉지에 담긴 것이 삼천 원 오이가 두 개에 삼천 원이란다. 나는 지갑에서 만원 지폐를 꺼내 주었다. 안으로 들어간 주인 남자는 오이와 양파를 담은 검은 비닐봉지와 거스름돈을 가져와 나에게 건네며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인사를 한다.
오후에는 도서관에서 빌려온 시집을 읽는다. 세 시가 지나 아내와 함께 중학교 운동장을 한 시간 걸었다. 매일 거르지 않고 하는 운동이다. 집에 돌아와 가계부를 열었다. 머리 커트 팔천 원 양파 삼천 원 오이 삼천 원. 난 쓰던 가계부를 잠시 멈추게 되었다. 양파 삼천 원에 오이 삼천 원이면 육천 원이다. 그럼 거스름돈 사천 원을 받아왔어야 맞는다. 그런데 가게 주인이 주는 대로 받아왔고 적다 보니 분명 오천 원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천 원의 착오가 생겼다. 그래서 쓰기를 멈춘 것이다.
"여보 야채가게에 다녀와야겠소 거스름돈 천 원을 더 받아왔거든."
"오이 한 개에 오백 원씩 했었잖아요. 아마 주인이 깎아줬나 봐요. 추운 데 가지 마요."
"아니요, 그때와 지금은 값이 달라요. 작은 가게에서 천 원 손해를 보면 어찌할 거요."
"갖다 줘도 나중에 가요."
편한 마음이 아니다. 나는 다시 옷을 갈아입고 신발을 신었다.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야채가게로 향했다. 남자 주인이 아는 체를 한다. 가끔 들르는 곳이기에 그러하다. 오이는 그 자리에 그대로 두 개씩 묶여있다. 분명 삼천 원이라고 적혀있다. 나는 주인에게 오전에 양파와 오이 두 개를 사고 만원을 건넸는데 집에 가서 가계부를 쓰다 보니 오천 원을 줬기에 다시 왔습니다. 천 원이 더 와서 천 원 때문에 다시 왔습니다라고 했다. 그리고 천 원을 그에게 주고 돌아섰다. 천 원을 받아 든 남자 주인은 돌아서는 나에게 밀헸다.
"아버님. 추우신데 번거롭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춥지만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쓰다가 멈춘 가계부를 다시 정리하고 아내가 차려놓은 저녁식탁의 자리로 옮겨 앉았다.
며칠 후 과일을 구입하려고 가게에 들렀다. 메고 올만큼 사과를 사서 가방에 담았다. 값을 지불하고 돌아서려는데 "잠깐요, 지난번 추운 날씨에 일부러 천 원을 갖고 오셨는데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 사과 두 개를 덤으로 가방을 열고 넣어준다. "당연한 일입니다. 언제든 같은 일을 겪게 되면 똑같은 결과를 만들 것입니다.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어렸을 때부터 남에게 손해를 끼치면 안 된다고 가르쳐 주셨답니다. 이러다가 이 집 가게 단골이 되겠습니다." 하고 얼굴을 마주 보며 웃었다. 천 원이 인연이 되어 다정한 이웃으로 한 가정을 사귀게 된 것은 덤이 아닐 수 없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