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는 새 가족으로 맞이할 준비를>
첫째 선이가 열일곱의 봄을 맞이했다. 아버지를 닮았는지 키도 제법 큰 편이다. 얼굴은 호감을 주는 계란형이다. 지난겨울부터 이웃 면에 살고 있는 정 씨 집안의 총각을 소개하는 얘기가 있었다. 그 동네에서 시집을 온 순길이 엄마가 그 집 사정을 잘 안다면서 거듭 말하는 것이다. 아직 어리잖아요. 하는 어머니에게 순길네는 뭐가 어립니까. 또 신랑이 네 살 많으니 색시를 위해 줄 거요.
"선이 엄마는 그 나이에 선이를 낳으셨습니다."
그 말에는 다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딸의 의견을 들어 봐야겠지?"
하며 뜸을 들인다.
"총각 집에서 좋다고 하면 미룰 게 있습니까."
라고 하며 순길 엄마는 돌아선다.
제헌 국회의원을 뽑은 그해 5월 하순경 선의 상견례가 있었다. 읍내 식당에서 양가의 부모와 예비 신랑 예비 신부 이렇게 모인 자리이다. 기본적인 예의만 갖추고 할 수 있는 대로 지나친 형식은 배제하기로 했다. 혼인식은 추수가 끝나는 11월 신랑집에서 하기로 약속하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어른들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서로 편안한 길이 되기를 바라는 나눴다. 누나는 남자 앞에 혼자 앉아 있기는 처음이라서 어색하기만 하 하다. 매부 될 사람은 키가 누나보다 작다. 하지만 아주 단단해 보이고 고집도 있는 듯싶다. 겉으로 보기에 그렇다는 말이다. 물론 사람을 겉모습을 보고 판단할 수는 없는 것이려니.
둘은 극장에 가기로 하여 식당에서 나왔다. 워낙 좁은 거리인 까닭에 보면 다 아는 얼굴이라서 조심스럽기만 하다. 유치원 어린이처럼 겨우 따라가 마침내 극장 안에 들어갔다. 그야말로 남동생 외에 다른 남자 하고는 처음 함께 와보는 극장이다. 자리에 앉아 있어도 작은 가슴은 참새 숨을 쉬듯 조마조마한다.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 영화가 무슨 이야기인지 희미하다. 신랑 될 사람도 비슷한 감정인가 보다. 주머니에서 수건을 꺼내 이마의 땀을 닦는다. 극장에서 나오며 곧 각자 집으로 가기로 했다. 걸어서 가는 길이라 누나에 비교하면 미래에 매부 될 사람은 갑절의 시간이 걸려야겠지.
가을은 재촉하듯 서둘렀다. 처음 잔치라고 오히려 이웃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모두 어려운 때를 살고 있는데 혼수도 장롱에 겨울, 여름 이불에 입을 옷 몇 벌 준비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지나치게 할 수 없는 것이다. 혼인예식은 신랑집에서 하기로 했다. 딸을 보내는 날 음식을 준비하여 이웃과 함께 정을 나누며 아쉬운 마음을 달래다.
해가 바뀌었다. 둘째 하는 교사가 꿈이다. 사범학교에 가야 하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하며 준비했다. 마침내 시험 보는 날 새벽 일찍 일어나 기차를 타기 위해 강경역으로 걸어갔다. 인솔하는 선생님과 함께 지원하는 열다섯 명이 모두 모여 기차에 몸을 실었다. 대전역에 도착한 후 사범학교까지 자동차로 이동하였다. 각 교실에 배치를 받아 긴장된 가운데 시험을 봤다. 대체로 만족스럽다. 내가 쉬우면 다른 친구도 쉬울 것이고 내가 어렵다면 다른 학생들도 어려울 것이다. 이제 일주일 후 2월 20일 결과를 기다릴 뿐이다.
20일 아침이 밝았다. 지금은 방학이라 집에 있는 시간이다. 둘째는 자꾸만 밖을 내다보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눈치다. 그렇다. 사범학교 시험 결과를 전보로 알리게 되어있다. 불합격이면 기다릴 필요가 없다. 합격했을 때 연락이 오는 것이기에. 10시쯤 되었을까. 자전거를 타고 우체국 아저씨가 오고 있는 게 아닌가. 우리 집에 들어서면서 큰 소리로 "이상하 합격." 축하한다. 집에 있던 가족 모두 박수를 치며 좋아한다. 문제가 어려워 여덟 명이 합격했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다. 셋째 딸 덕이가 학교 가는 해다. 넷째 아들 수는 누나와 두 살 차이이나 생일이 2월로 빨라서 다음 해에 학교 문을 열게 되었다. 역시 누나에게 했듯이 내 손을 꼭 잡고 다음 해 입학식을 찾으셨으니 누나하고는 한 학년 차이다. 6.25가 난 해다. 우리 가족은 큰 누나 시댁이 있는 쪽으로 파난을 갔다.
성공적인 인천상륙작전으로 반전이 이루어져 우리도 피난길에서 돌아왔다. 둘째는 대전 하숙집으로 향했다. 둘째 누나로부터 나까지 넷은 함께 국민학교에 다니고 큰 형은 법원에 출근하며 부지런히 공부를 한다. 넷째 딸은 두 돌이 지나 재롱을 보이고 있다.
아는 아저씨 한 분이 인삼의 고장 금산에서 가까운 이웃으로 이사를 왔다. 서로 오고 가는 사이이다. 한 번은 어머니에게 자기 집안에 좋은 색시가 있는데 큰 형과 짝을 맺어주면 한다는 제안이 왔단다. 큰 형에게 말하니 너무 이르다고 거절이다. 할머니는 그게 아니다. 색시만 좋으면 혼인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큰 형은 강의록을 끼고 살더니 6.25 다음 해 여름 치러진 고등학교 졸업검정고시에 합격하여 실력을 과시하고 칭찬을 들었다. 가족들의 기쁨도 두 배였다. 금산으로부터 자꾸 소식이 밀려오고 할머니는 서두른다. 상견례 날과 장소를 정하고 멀리 금산에서 오는 부모와 규수를 맞이했다. 지난번 사위를 처음 만났던 곳이다. 사돈이 될 분들이나 딸 모두 순수하고 꾸밈이 없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아들과는 나이가 세 살 차이다. 둘 다 오염되지 않은 총각과 처녀이다. 중매하는 아저씨가 양 가정을 잘 알기에 소개한 대로였음을 서로 확인하는 자리가 되었다. 급속도로 진행이 되었다. 다음 해 봄에 신랑 집에서 결혼식을 하기로 하다. 그럼 신랑이 스무 살. 신부가 열일곱의 피어나는 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