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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과학 교사의 수업 이야기 127

내 생애 마지막 학생 인솔

by 태생적 오지라퍼

아침부터 마음이 바빴다.

<2025 녹색기후상> 시상식날이고

나의 공식적인 교사 마지막 업무인

시상식 참가 학생 인솔이다.

처음 가보는 국회의사당이니 먼저 가서 근처를 돌아본다.

빌딩사이로 부는 여의도 칼바람이 매섭고

이른 아침부터 각각의 이유로 시위를 하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1번 출구와 6번 출구 사이에서 고민하였고

잠정적으로 점심 먹을 곳과 디저트 먹을 곳을 결정하면서

혹시 싶어서 꼬마 김밥 2개와 어묵 국물을 조금 먹었다.

결과적으로 그걸 안먹었으면 쓰러질뻔 했다.

학생 인솔이 얼마나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일인지

그 사이에 까맣게 잊어버렸다.


국회의사당은 존재 그 자체로 다가서기가 두려운 건물이다.

오늘 시상식은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렸다.

학생들과 입장 서류를 작성하고 게이트를 통과하여 들어간 국회의원회관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조금 일찍 가서 식당도 돌아보고(점심 한 끼에 5,500원이었는데 메뉴가 썩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카페도 돌아보고(우리 UCC에 넣은 플라스틱 일회용컵 수거함이 놓여 있었다.)

기념 사진도 찍고는 당당하게 시상식장에 들어갔다.

다른 공식적인 행사가 늘 그렇듯 여러 중요한 분들의 이야기는 길었으나

오늘 수상자 중 최고인 대상을 받는 EBS PD 이야기는 시사점이 있었다.

<날씨의 시대>와 <우리에게 남은 시간> 다큐를 보거나

강의 자료로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져주거나

시청률이 높거나 할 주제가 전혀 아니지만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기에 최선을 다하는

방송 관계자도 있다는 것을 확인하니 조금은 기뻤다.

어제 <최강야구>를 둘러싼 방송국과 PD 사이의 힘겨루기 분쟁을 보고나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기다리던 부분별 시상식이다.

우리학교는 교장 선생님과 동아리 학생들이 한꺼번에 수상 무대에 올라갔다.

박수만 치라고 바쁜 그들을 부른게 절대 아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열심히 활동해준 그들이 맞다.

나는 열심히 사진 촬영을 했다.

우리가 상을 받는 그 순서에 마침 국회의장이 시상식장에 들어섰고(나이스 타이밍)

중학생인 우리의 활동에 많은 격려를 해주셔서

(본인도 중학교때 멋진 체험을 한 것이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다고 하셨다.)

마치 우리가 대상 수상팀인 듯 기분 좋은 수상 타임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학교의 수상 소감도 나는 학생에게 시켰다.

떨리기는 했을테지만 너무도 훌륭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 자리에 모인 분들은 모두 기후변화와 관련된 활동을 직접 하신 분들이라는 것이 정말 자랑스럽다.

더 열심히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겠다.>

이런 취지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우리만 수상자에게 당연하게 주는 꽃다발을 준비하지 않았다.

잠시 고민했으나 우리 아그들이 어느 꽃보다도

더 이쁘다고 생각해서였다.


여의도 빌딩 숲 사이에서 미나리삼겹살을 먹고

다같이 버스를 타고 그들과 나의 마지막 행선지는

우리 학교였다.(아직은 학교 소속이다.)

멋진 그들이 학교에 가보자고 한 것이다.

내가 가자고 한 것이 절대 아니다.

그들이 만들었던

3층 과학실 뒤편 풍선 장식도 정리할 겸

그 사이 교실 이동 및 공사로 더 좋아진 학교를

보고 싶다고 했다.

나만 학교가 그리운 것은 아니었나보다.

그리고 오늘 나를 가장 감동시킨 말을 바로 이것이었다.

<선생님. 핸드폰 바꾸셨네요. 신발도 새로 구입하셨나봐요. 머리도 짧아지셨는걸요?>

세상에 남편이나 아들도 잘 알아보지 못하는 나를 알아봐주는 그들이다.

무려 졸업식 하고 한달만에 만난건데 말이다.

역시 과학의 기본은 세심한 관찰이라는 것을 수차례 강조한 효과가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감동한 것은 위 사진이다.

국회의원회관 한쪽 복도를 차지하고 있는 장식인데

아는 사람만 아는 봄철 별자리이다.

왕관이랑 목동자리를 나타낸 것이다.

왕관자리 가운데 밝고 큰 별이 젬마

목동자리 가운데 밝고 큰 별이 아크투루스를 나타낸다.

천체관측 동아리 출신 후배가 확인해준 내용이다.

국회의원회관에 천문학을 아는 누군가가 있는 것이다.

지구과학 전공자로 고맙기만 하고 고무적인 일이다.

이렇게 찐감동을 하면서 공교육 교사로서의

마지막 임무를 마무리하였다.

장하다. 그들도 그리고 나도.

오늘 하루 정도는 우리 모두 가슴을 자랑스럽게 내밀고

오늘 사진으로 뽐내며 다녀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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