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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과학 교사의 수업 이야기 130

제주 택시기사님들께 배운 과학

by 태생적 오지라퍼

제주 2박 3일은 버스, 택시, 그리고 도보로 다닌 여행이다.

제일 많이 이용한 것은 카카오택시이다.

서울보다 제주에서의 카카오택시가 어디서든

3분 이내에 달려와주어서 훨씬 효율적이었고

다행히 실내에서 담배 냄새도 안나고 친절하며

제주에 대한 다양한 상식을 알려주는 택시기사님들을 만났다.

행운이다. 이번 여행을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이다.

다음은 그분들께 들은 이야기를 요약하여 적어본 것이다.


유채꽃을 보러 왔다했더니 아직은 많지 않을 거라면서

3월 2주차는 되어야 이쁘게 보이고 사진찍을만 할 거라 했다. 가보니 진짜 이제 시작이었다.

유채꽃은 노란색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얀색도 있다 했다. 잘 살펴보니 하얀색이 보인다.

그리고 4월에 가면 무꽃이 이쁘다고도 알려주셨다. 보라색과 흰색이 우아함의 끝판왕이라고...

그런데 4월에 그것을 보러 또 올수는 없을 듯 하니 아쉽다.

5월의 가파도 청보리는 4년 전에 심한 멀미를 간신히 참고 보러갔었는데

바람에 따라 흔들리는 물결이 장관이었다.

그리고 흙의 성질에 따라 재배하는 식물 품종이 달라진다고 세세하게 안내해주었다.

구좌쪽에서는 부드러운 흙에서 당근이

애월쪽 토양에는 단단하고 바위가 많아서

잘 버틸 수 있는 양배추, 비트, 무, 브로컬리 등이

잘 자란다고 알려주셨다.

그러고보니 지나다니는데 대부분 양배추 밭이다.

토양의 성질에 따라 재배 작물이 달라지는 것은 과학이다.

온도와 습도에 따라 식물의 개화시기가 달라지는 것도 과학이다.


숙소에서 바라보는 오션뷰 끝에는 새벽에 작은 불빛들이 보였다.(이틀 모두 잠을 설쳤다.)

고기잡이 배일거라고 짐작은 했다.

기사님께 여쭤보니 지금은 아마도 갈치잡이가 대부분일 것이라 했다.

얼마 전 방영된 아마도 12월 초에 촬영했을 <김성근의 겨울방학>에서는 방어와 부시리를 잡았었다.

조금 지나면 오징어 잡이가 대세가 될 것이라 했다.

그런데 점점 제주에서의 오징어의 조업량이 줄어들고 있다고 걱정하셨다.

그 기사님 입에서도 기후변화, 지구온난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정도이다.

수온에 따른 해양 생물 종류의 변화는 분명 과학이다.

제주 바다에서 잡은 옥돔을 배송할까 말까 동문시장에서 고민 좀 했다.


택시를 탈 경우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기사님 취향에 따른 음악을 듣게 된다.

트로트일수도 클래식일수도 가요나 팝송일수도 있다.

그나마 잔잔하게 틀어놓아 주시면 좋은데

(그런 분들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꽝꽝 음악을 울리시는 분도 계시다.

(이런 분들은 입을 꽉 다물고 대화를 싫어하시는 분들이다.)

음악 감상실이나 요새 잘나간다는 LP바를

가지 않았어도 택시에서 많은 음악을 들었고

나 혼자 걸어다니는 시간에는 내 핸드폰에 있는 플레이리스트 속의 음악을 질리도록 들었다.

물론 노래 중에는

크리스마스 노래와 여름 바닷가에 어울리는 노래가 섞여있었다만

55곡이나 되는 내 취향의 노래를 이렇게 마음 놓고 들어본 적도 오래 전이다.

음악은 과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내 멘탈을 잘 관리할 수 있게 해준다.

택시 기사님과의 애매한 분위기를 바꾸어 줄 수 있는 계기도 된다.

그리고 오랜만에 학교 밴드반이 축제에서 연주한 그곡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를 들었다.

축제 이후로 들으면 울컥할까봐 의도적으로 피했었다.

젊은이 대상의 노래와 가사가 맞는데

묘하게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나에게 힘을 주는 듯 했다.

우리 이쁜 밴드반 녀석들은 고등학교에 잘 적응하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제주에는 전기자동차가 많다.

사용해보시니 어떻냐고 여쭤봤다.

겨울에는 배터리가 쉽게 단다고

제주는 괜찮지만 영하 10도 이렇게 내려가는 지역은 외부주차하면 안좋을것 같다하셨다.

자율주행도 괜찮다고.

전문가님의 조언을 자율주행 전기차 구입을 염두에 두고 있는 아들 녀석에게 전달했다.


제주 마지막날 나는 의도치않게 두 번의

민폐가 되는 택시 탑승을 했다.

한번은 공항 3층에서(이곳에서는 하차만 되고 승차가 안된단다.)

한번은 제주대학병원에서(이곳도 승차지점이 정해져 있다한다.)

둘 다 전혀 의도한 일이 아니었고 심지어 안내문도 없어서 나는 아무 생각없이 탑승한 민폐녀가 되었다.

그런데 한 기사님이 힐난조로 이야기를 한다.

왜 거기서 탔냐고?

그렇게 안되는 것이었으면 차를 세우고 나를 태우지 말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아니면 좋은 말로 나에게 이곳에서는 승차가 안된다고 어디로 이동하라고 알려주었으면 되는 것 아닌가?

제주 기사님들에 대한 좋았던 이미지와

기꺼이 제주 경제를 살리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자부했던 마음이 조금은 무너져 내렸다.

사람과의 좋은 관계는 상호적인 작용이고

이것도 과학이다.

화학 반응이 아무렇게나 일어나지 않는것과 같다.

과학이 다루어야 할 내용은 이렇게 무궁무진하다.

따라서 교양으로서의 과학, 삶과 밀접하게 관련 있는 과학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나는 그것을 위해서 40년을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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