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그런 것은 아닐테다.
이상하게 태생적으로 헷갈리는 것들이 있다.
나에게만 그럴수도 있고 남들도 그럴 수도 있다.
초등학교 사회 시간부터 청주와 충주가 그렇게 구별이 안되었다.
그때의 나도 이해가 간다.
청주와 충주를 가본 적도 없었고 둘 다 충청도이고 이름도 한끝차이이고 어찌 구분이 가겠는가?
여하튼 나는 시험볼 때마다 고민을 했고
그 고민을 아들 녀석에게도 미리 이야기해주었으나
여지없이 아들 녀석도 고민의 늪에 빠져서
결국 시험에서 틀리고 나타나더라.
이렇게 생태적으로 헷갈리는 지명이
약수와 옥수이고 목동과 묵동이었는데
목동에 살았던 바람에 목동과 묵동은 해결되었는데
약수와 옥수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약수역에서 약속하고 옥수역을 떠올리기도 한다.
이름도 그렇다.
나이가 들면서 더 이상 학생들의 이름을 저절로 외우기는 힘들다만 특히 구별이 되지 않는 이름들이 있다.
다연이와 다현이, 성우와 승우 같은 식의 이름이다.
이름을 지어주는 작명가들도 그 해의 선호 이름이 있는 것인지
매해 많은 비슷비슷한 이름들이 대세를 이룬다.
아들 녀석을 출산한 1988년도의 대세 이름은 아마도 <~수> 였나 보다.
같은 해 3월에 출산한 아가씨네 딸 이름은 연수,
나의 아들 이름은 정수,
나보다 3달 전에 출산한 동료 교사 딸 이름도 정수, 나보다 한 달 뒤 출산한 동료교사 딸 이름은 윤수였다.
이러니 서로 서로 구별이 될 리가 있나.
모두 수수수 였다.
물론 한자로는 달랐다만.
설렁탕과 곰탕을 맛으로는 구별하지 못하는 것도 이상하다.
면을 넣어서 구분하는 방법이나 고기로 판단하는 방법 말고
국물 맛만 보았을 때 설렁탕인지 곰탕인지를 도저히 구별을 할 수가 없다.
내 입맛으로는 말이다.
설렁탕과 곰탕이 요새 새로운 퓨전 형태로 탈바꿈하고 있는 식당도 많이 있는데
기본적인 것은 파를 얼마나 많이 썰어넣는가의 차이인 듯 보이기도 하고
밥을 말아서 제공하는가 아닌가의 차이인 듯도 보인다.
합정역 주변에서 새로운 느낌의 곰탕을 두어번 먹어보았는데 새로운 신세계였다.
물론 세련된 식당 공간 스타일과 그릇의 컨디션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만.
아직도 아무 자료도 제공하지 않고 단지 국물로만 설렁탕과 곰탕을 구분해보라면 성공 확률 50% 이하이다.
오늘 병원에 가는 남편을 지하철역에 내려주고는
내비언니 가르침을 잘 쫓아가다가 첫번째 출구로 나가라는 지시문을 충실히 따랐다고 생각했는데
아뿔싸. 이번 출구가 아니랜다.
그럼 도대체 어디가 첫번째 출구인것이냐?
저 멀리까지 서울 근교를 한 바퀴 삥삥 돌아서
비오는 날의 살떨리는 드라이빙 연습을
삼십분이나 더 하고서야 학교에 도착하였지만
다행히 강의는 생각보다 유연하게 잘 진행되었고
학생들은 나의 다리 부목에 깜짝 놀랐고
마침 재해재난과 안전 부분이 강의에 포함되어 있어서 안전사고 대비 부분을 미리 앞당겨서 진행했다.
(내가 안전사고를 당할 줄 미리 알았었나?)
그런데 한달간 열심히 다녔던 강의실 건물에서 학생식당까지의 동선이 아직도 헷갈린다.
조그만 쪽길이 있는데 그곳이 지름길인가 싶은데 가보면 건물 입구가 안보인다.
가뜩이나 부목을 댄 버쩡다리로 기껏 돌아왔더니
방금 수업을 끝낸 학생이 그 길로 내려와서 학생식당으로 들어온다.
귀신에 홀린듯하다. 분명 길이 없었는데...
내가 모르는 동선이 숨어있었나보다.
아직도 내가 알아야 많은 것들이 있고
비슷비슷해서 구별하기 어려운 것들은 계속 존재한다.
어쩔 수 없다.
어차피 인생 헷갈리고 헷갈리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나만 그런것은 아닐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