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였다면 풀자, 대화가 필요하다
이거, 나 엿 먹으라는 거지?
그게 아니면 도대체 왜 이렇게 하셨는데요? 이게 그런 뜻이 아니고 뭐예요 대체?
사람들의 대화 중 정확한 의미를 정확한 워딩으로 표현하는 소통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직설적이고, 직접적인 표현은 소통에서 불편함을 줄 수 있기에 쿠션을 주기 마련이다.
쿠션이 딱딱한 쿠션일지, 우리가 예상하는 말랑말랑한 쿠션일지는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그리고 쿠션이라고 생각했는데 큰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돌베개일 수도 있다는 점, 유의해야 한다.
돌싱에 어린 딸이 있는 남자와 만나던 여자가 머리를 잘랐다. 과감하게 숏컷으로.
불쌍한 모습을 보였던 남자는 당시 여자가 자신의 그런 모습에 끌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여자가 자신을 떠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런 연민으로 자신에게 끌렸다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했을까. 고백하듯 읊었다.
여자는 남자를 연민도 하고 사랑도 하고 존경도 한다고 했다.
남자는 여자에게 물었다.
근데 머리는 왜 잘랐어요?
여자는 말한다.
난 뭐, 머리도 자르면 안 돼요? 머리도 못 잘라요?
여자는 남자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힘들게 하는 존재로 하나 더 보탠 것이 아닌가 싶었다.
특별한 의도가 없었다. 여자는 그냥 머리를 잘랐다.
드라마에 나오는 장면이었다.
머리를 자른 것에 놀란 남자는 덜컥 마음에 겁이라도 났을까. 질문을 던진다.
나라도 그랬을까?
나였어도 머리를 자른 것에 대한 의미를 물어봤을까. 문득 생각이 들었다.
머리는 그냥 자를 수도 있다.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여자는 자신에 대한 화로 머리를 자른 것처럼 보인다.
남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여자의 심경에 변화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오해는 다른 사람의 의도를 파악하는 시도에서부터 나온다.
의도를 담고, 의미를 담아 행하는 행동과 내뱉는 말도 분명히 있다.
직접적으로 표현하면 상처를 받을 수 있으니, 돌려서 이야기하기도 하고
날것의 표현하는 것이 민망한 경우 알아들을 수 있는 비유와 돌려 말하기로 서로를 보호하기도 한다.
사람에 대한 불신으로, 그동안 겪었던 경험이 워낙 불편했어서 그 사람이 취하는 행동과 말에 의심을 품고 그냥 넘어가기보다는 곱씹고 또 되새김질해보는 경우가 있다.
충분히 의도가 있을 법한 상황이라 다그쳐 물어가며 의도가 뭐냐, 이렇게 받아들이라는 것이냐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경우도 있다.
상대방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순수한 마음에, '그냥' 그랬을 수 있다.
내가 상대방의 이야기와 행동을 보통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사람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늘 경계태세를 갖추고 의심해 가면서 주위를 살피고 행여 나를 다치게 하는 것은 아닐까,
나를 향해 웃고 있지만 뒤로는 어떤 칼을 숨기고 있을까, 아니면 내가 모르는 음흉한 마음이라도 있을까,
노심초사 사람과의 관계를 힘겹게 이어 나간다.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보통 사람 속은 사람이 알 수 없기에 경계태세를 충분히 갖추고 방어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다만, 내 주위에 깨끗하고 순수한 '있는 그대로'의 인간이 있다면 참 소중한 사람일 것이다.
그런 사람과 '의도치 않은 오해'와 '쓸데없는 의심' 속에서 관계를 잃지 않기를 바란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늘 상황에 맞는 소통이 필요하다.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서로의 마음을.
직접적인 표현이 못 되어서 오해가 생기고 불편해졌다면 꼬인 것은 풀어야 한다. 대화로. 소통으로.
의도가 없는 사람은 참 투명하다.
험한 세상에 어떻게 저런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투명하다.
내 주변에 이렇게 투명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운과도 같다.
투명한 사람 곁에 있는 나도 투명해진다. 언제든 더럽혀질 수 있다는 위험이 있지만 투명한 것은 보통 모든 것을 투영하고 표현해 낸다. 솔직함과도 비슷하며, 투명함이 가진 힘은 무시할 수가 없다.
있는 그대로, 투명하게 소통하고 대화해 보자.
아무런 의미를 담지 않고 솔직하고 진솔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고 훈련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그렇지 못했다면, 이제라도 시도해 보자. 생각보다 매력적이다.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