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시작은, 늘 자리가 차지 않은 사무실에서 커피한잔을 하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그것은 마치 일과를 위해 나서는 출사(出師) 의식 같은 것이었다.
내가 짧지 않은 사회생활에서 아침 출근과 함께 주변을 돌아보고 일과를 점검하는
행위는 오랫동안 의식처럼 지속되어온 루틴이다.
아침 출근길을 함께하고 짬이 나는 시간에 요즘은 뜨거운 보이차를 즐긴다.
아직 더위가 기승이고 에어컨 없이는 더위를 피할 길이 없지만, 뜨끈한
목 넘김의 시원함으로 잠시 쉼을 즐긴다.
노파(老婆)라는 말은 할머니를 이르는 말로, 할머니 같은 마음으로 세상 온갖 일이
걱정이라는 뜻이 노파심의 어원이다.
구십 먹은 노인이 집을 나서는 칠십 먹은 아들을 걱정하여
“ 조심 조심 하고 일찍 들어오너라!”하는 당부를 한다.
막내가 분가 선언 후 이것저것을 준비하기에 분주한 그를 우려 담은 시선으로 지켜보게 되고,
한참 공부를 하여야 할 시간, 손자의 백주 느닷없는 방문에 화들짝 놀란다.
본인들의 몫은 알아서 충분히 잘하고 있으려니 믿기도 하고
지나친 기우일 수도 있으나, 그들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이 늘 조심스럽다.
걸음마를 배우는 어린아이의 발걸음은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 뒤뚱뒤뚱 위태롭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성장 한다.
넘어질 듯 위태롭기도 하고, 때로는 넘어져 무릎이 깨지기도 한다.
그것이 성장의 과정이고 절차다.
지난(至難)한 세월을 지켜보고 기다려 주는 것이 어른의 본질이지만, 나의 아이는
어려운 과정을 거치지 않는 무난한 행보를 바라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세상 부모들의 과욕이다.
그이율의 배반으로 충돌되는 의식 때문에, 지켜보며 성장을 기다려 주는 것이
당연한 이치임에도 성급한 마음은 달리는 마차를 채찍 한다.
그것이 내달리고 있는 시간으로 기인한, 나의 초조한 맘 탓은 아닌가 하여 우려스럽다.
오후에 서점에 들려 캘리그라피와 민화 교본을 별도로 구매하였다.
복지회관에서 잠깐씩 배우는 것에 대한 미진한 부분을 스스로 채우기 위한 일환으로,
눈으로 보고 배우는 것에서 마음으로 느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한 발작을 더 다가서야 할 필요를
느낀 탓이다.
막내가 바쁜 일정 중에도 첫 번째 브런치북의 발간을 독려하다.
벌써 책으로도 한권이 발간 될 만큼 ‘이야깃거리’가 쌓이는 시간이 지나간
모양이다.
마치 문장의 한 단원쯤 끝나는 쯤에서 쉼표를 찍고 난후, 다음 단원으로 넘어가는 기대가 있다.
언덕너머의 들판에는 더 풍성하고 지천으로 널려진 들꽃향이 가득하기를
앙망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