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획자 이형식 May 03. 2024

문서대화의 기본 작법(2)

그 정치인처럼 하라

기획은 2형식이다.

기획은 ‘문제’와 ‘해결’의 2형식 사고방식이다.

기획서도 2형식이다

기획서는 ‘질문’과 ‘대답’의 2형식 대화형식이다.


비즈니스 대화와 일상 대화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의도’의 유무다. 비즈니스 대화는 분명한 목적과 의도를 가진 대화다. 즉 질문의 의도가 있고 대답의 의도가 존재한다. 고도의 수 싸움이자 주도권 싸움이다. 의도컨텍스트다. 상대의 질문을 순진하게 텍스트로 듣고 순박하게 텍스트로 답한다면 내가 목적하는 바를 얻을 수 없다.


상대의 질문 의도를 파악하고 나에게 유리한 컨텍스트로 대답이라는 텍스트를 설계하는 것, 그것이 문서대화 설계의 핵심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기획서란 내 생각을 디자인하는 문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기획서는 상대방의 생각을 디자인하는 문서다. 기획서는 단순히 내 생각을 표현하고 설명하는 과정이 아니라 상대방의 생각을 내 의도대로 이끌어 가는 과정인 것이다. 그 과정이 기획서 내러티브의 설계가 된다. 상대는 내가 이끄는대로 결론에 다다랐지만 마치 스스로 그것을 찾아낸 것 처럼 좋아하게 될지도 모른다.


다음의 대화를 보자.

-공부를 잘했나.

“잘해야만 했다. 도망치려면.”

-도망이라니?

“어린 시절 어머니와 나, 두 살 터울 쌍둥이 남동생이 매일같이 아버지 폭력에 시달렸다. 열심히 공부해서 집에서 최대한 멀리 떠나는 것, 엄마를 구출하는 것이 목표였다.”

-고생 하나 모르고 살았을 것 같은데.

“첫 자취방은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30만원. 언덕 두 개를 올라가서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 4층의 고시원 크기 방에 살았다. 옷장 들어갈 데도 없어 침대 위로 옷을 걸어놓고 겨우 잠을 잤다. 형편이 어려워 삼 남매가 한꺼번에 대학 다니기도 어려웠다. 돌아가며 휴학을 했다. 어떻게든 버텨서 졸업을 해야했다. 돈을 벌어야 하니까.

-그래서 취직은 했나.

“취직해 정규직이 됐을 때, 대출해 어머니께 월세 방을 얻어 드렸다.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진짜 ‘독립’시켜 드린 것이었다. 아, 가족 얘기를 하니 멍해진다.”


모 신인 정치인과 기자의 인터뷰를 재구성한 대화다. 기자는 질문했고 정치인은 답했다. 답변한 정치인의 입장에서 대화의 흐름을 자세히 살펴보라. 이 대화는 그냥 일상의 대화가 아니다. 정치인 본인이 꼭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상대의 생각을 디자인한 답변이다.


기자는 본인이 궁금한 것을 차례로 질문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아니다. 기자는 정치인이 의도하는대로 질문을 이어갔다. 정치인의 답변은 기자의 다음 질문을 디자인하며 이끌어갔다. ”공부를 잘했냐“는 질문에 일반적인 답변은 ‘잘했다, 못했다, 보통이다’ 정도다. “잘 해야만 했다”라는 의외의 답변은 “도망치려면.”이라는 말과 함께 철저히 기획된  말이다. 상대의 어떤 반응을 의도한 답변인가. 궁금증이다. 호기심이다. ‘도망치려고 공부를 잘 해야했다는 게 무슨 말일까?‘라는 흥미로운 궁금증이 생긴다. 그래서 기자는 물을 수 밖에 없다.

“도망이라니?”


이런 식으로 대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치인의 의도대로 흘러갔다. 정치인 승.


정치인이 말하고자 했던 핵심은 이것이었다.

제가 정치에 뛰어든 것은 개천의 용이 아니어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나라, 개천인지조차 구분할 필요가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서예요.


본인이 정치하게 된 이유를 임팩트있게 전달하기 위해 “공부를 잘 했나?“라는 기자의 평범한 질문에 굳이 어려웠던 가정사에 대한 답변들을 함으로써 대화를 본인이 의도한대로 이끌어갔던 것이다. 폭력과 가난을 진하게 경험한 한 정치인의 컨텍스트에서 우러난 위와 같은 답변의 텍스트는 파괴력이 작지 않다.


기획서도 마찬가지다.

나의 대답으로 상대의 다음 질문을 디자인한다.

상대의 생각을 내가 의도한대로 이끌어간다.


그 정치인처럼 하면 된다.




https://brunch.co.kr/@221b/10




이전 05화 문서대화의 기본 작법(1)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