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낳기를 고민할 수 있는 첫 번째 이유
아이를 낳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의 시작은 내 마음 곳간이 차오르기 시작했을 때부터다. 동생이 엄마와 이런 대화를 한 적이 있다고 한다. 대기업을 다니던 때의 언니와 스타트업에 다니며 형부와 함께 하는 언니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언니의 삶이 얼마나 평온해졌고, 얼마나 행복한지를 아냐고.
원하던 나를 만났다.
동생의 말처럼, 내 일상은 예전과 다르게 많이 단순해졌고 쉽게 행복해졌다. 그 이유 중 첫 번째는 원하던 나를 만났기 때문이다. 그동안 늘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감, 네임밸류에 대한 압박감을 가지고 있었다. P&G를 겪고서야 모든 것이 충족되고, 내게 있던 압박감이 사라졌다. 그 시기는 내 스스로가 버거워할만큼 힘든 시기이기도 했지만, 겪지 않았다면 나는 끊임없이 그 세계를 동경한 채 가지 못한 곳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시선으로부터”라는 책에 이런 글이 있다.
예술을 했어야 했는데 하지 못한 사람이, 남들이 보기엔 그럴듯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면서 천천히 스스로를 해치는 것을 제가 얼마나 자주 봤는지 아십니까? ... 큰 회사에 다니고, 가업을 잇고, 대단한 돈을 거머쥐고, 다정한 반려인이나 귀여운 아이들을 얻고 나서도 무언가 안에서 그네들을 갉아먹습니다. 차라리 예술을 편히 시작할 수 있었을 나이에 시작했더라면, 그 성취나 결과가 형편없었을지는 몰라도 나았을 겁니다. 자기 자식이 어떤 성품인지 다 아실 테니 재능의 있고 없고를 떠나, 하지 않으면 스스로를 해칠 것 같습니까? 즐겁게 그리고 쓰고 노래하고 춤추는지, 하지 않으면 괴로워서 하는지 관찰하십시오.... 그런 아이들을 움직이는 엔진은 다른 사람이 조작할 수 없습니다.
이 문장들을 읽으며, 나를 읽었다. 내 강점 중 하나는 ‘초점’이라고 한다. 목표를 향해 달려나가고 있는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내면의 내가 끊임없이 물어보는 초점. 그런 강점 때문인지, 한 번 갖겠다고 생각이 든 것은 스스로 내려놓지 못하고 가지기 전까지는 나를 채찍질하고 저 문장의 ‘갉아먹는다’는 표현처럼 나를 갉아먹는다. 대학생 시절 마케팅을 배운 직후 좋은 마케터가 되고 싶어 공모전 등을 준비하면서 공황장애를 겪기도 했고, P&G를 다니는 동안 브랜드 마케터로서 잘 해내고 싶은데, 대기업이라 제약사항은 많아 원인상황을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스트레스로 손이 부들부들 떨기도 하고, 한국어로 쓰면 금방 끝냈을 리포트를 영어로 쓰느라 밤샘 작업을 하면서 이래저래 마음 고생을 했었다. P&G 3년은 다니자는 나와의 약속을 지키고, 다시 좋아하던 스타트업 필드로 나오면서 이제야 내가 원하는 나를 만났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남이 보는 내가 어떤지에 대해 꽤 안절부절 못했었는데, 이미 스타트업이 나와 맞다는 것을 졸업 후 조인했던 첫 스타트업에서 알았으면서도 늘 의심 했었다. 내가 작은 조직에 있어서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아닌지 객관적으로도 잘하는 것인지도 궁금했었고, 스타트업이 재밌다는 것이 혹 자기합리화가 아닌지 의심했던 것도 사실이다. 브랜딩을 배우고 싶었고 큰 기업에서 제대로 일해보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기에 P&G를 가게 되었고, 그 곳에서 많은 것을 배운 것도 맞지만 결국 내가 즐겁게 하는 일은 스타트업에서 하던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력서의 잦은 이직 또한 흠이 되는 사회에 살고 있기에 3년은 다니자고 나를 달래던 시기였다.
이제는 더이상 네임밸류에 괴로워하지 않는다. 남들이 가고자 하는 회사도 그 회사만의 고충이 있음을 이제는 알고,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해도 그것이 더이상 자기합리화가 아니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들에게는 이 회사가 무엇을 하는 회사인지 설명하는 삶으로 돌아간 것처럼 보이지만, 이제 내면의 모든 것은 충족 되었고 ‘일의 재미’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내가 재밌어하는 일을 선택해도 더이상 마음이 시끄럽지 않은 상태. 원하던 나를 만났다.
그리고 일의 여유
매번 막차 시간을 훌쩍 넘길 때까지 일을 하고, 3년차가 겪기에 큰 상황들을 책임지면서 짧은 시간 안에 성장했던 것 덕분이겠지만, 이제 일의 여유가 생기고 퇴근 후에도 에너지가 남는다는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예전 회사에서는, 내 스스로도 커리어적 성공이 중요해서 그랬던 것도 있지만, 끊임없이 챌린징하는 회사 분위기도 맞물려 그 때는 일에서 여유를 찾을 수 없었다. 퇴근 후의 삶은 다음날 출근을 하기 위한 준비 시간 정도였다. 그런 내게 ‘일이 여유로워졌다는 것’은 처음에는 warning sign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성장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내 커리어 첫번째 질문인 만큼, 일의 여유는 곧 내 러닝커브가 줄어드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비상벨을 켜고서 주변에 많은 조언을 구하러 다녔었다. 사람들의 반응은 비슷한 듯 달랐는데, 보통 내 연차쯤부터 다들 일이 운용범위 안에 있다는 느낌을 받고, 이 또한 당신이 노력해서 얻은 산물이기에 즐겨보라는 사람도 있었다. 혹은 그 시점 즈음 대학원 진학, 전직처럼 새로운 활로를 찾은 사람들도 많았다. 물론 아직도 정답을 찾은 것은 아니지만, 새롭게 찾아온 커리어 단계에서 내가 알고 있던 것들을 기록해두기로 했다. 브런치에 마케터란 무엇인지, 마케터도 숫자를 봐야하는지 지난 몇 년간 내가 알고 있던 것들을 기록하고 나를 돌아보면서, 당혹스러움은 차츰 안정감으로 바뀌었다. 매번 새로울 수는 없지만,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단단히 하면서 새로운 시각으로 내 일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이제 이 단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 믿는다. 그리고 그 여유로움을 두려워하지 말고 한 편으로 즐기는 것도 맞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대학원 고민 등으로 시작했던 고민은, 이제 먼 미래의 나에게 넘겨놓았던 아이에 대한 고민으로 와닿게 되었다.
남편을 만나면서 마음 곳간 또한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동안 나는 마음 곳간에 쌀을 채우기 보다는, 내 곳간이 어떻게 보이는지에 더 집중했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아침에 커피 한 잔을 먹으며 일상의 즐거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럴 때에도 늘 내 마음은 시끄러웠던 것도 사실이니까. 원하던 나를 만나고 남편과 함께 하면서, 미처 챙기지 못했던 마음 곳간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퇴근하고 집에 왔을 때 남편이 김치찌개를 끓이고 있을 때, 남편과 주말에 서점에 가서 한 주 동안 읽을 책을 사고 돌아오는 길에 정육점에 들려 미역국 소고기를 살 때, 신혼집으로 방 3개 있는 집을 꼭 구해야 한다고 했던 이유가 거제에 있는 내 동생들이 언제든 올라와서 쉴 공간을 주기 위함이라고 말을 해줄 때. 그럴 때마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를 정도로 행복하다는 마음이 샘솟는다.
우리 둘의 자아실현이 이루어지는 와중에도, 남편이 늘 나와 우리의 가족을 생각하는 것을 보면서 그동안 비어있던 마음 곳간이 차오르는 것이다. 이제는 남편과 저녁으로 무엇을 먹을지, 이번 주말에는 또 어디를 가볼지 고민하는, 그렇게 단순하고 쉽게 행복해지는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런지, 요새 참 살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