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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da Jan 10. 2021

집의 여유

아이낳기를 고민할 수 있는 두 번째 이유

남편과 함께할 공간만 있으면 충분했지만, 우리 부부는 운 좋게도 ‘우리 집’을 갖게 되었다. 우리 집이 생기면서 큰 과제를 끝냈다는 생각에 아이 낳기를 더 적극적으로 고민해볼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좋은 대학을 나왔고, 그래서 연봉 인상률이 높은 기업을 경험할 수 있었고, 남편 또한 안정적인 기업에 다니고 있고, 집 값이 폭등하기 전에 집을 살 수 있었고. 아마 죽을 때까지 대출금을 갚아야 하지만, 2년마다 내가 살 곳이 있을지 고민하는 위험이 사라지고 나니 삶이 평온해지는 것이다. 두 발 뻗고 누울 ‘내 집’이라는 존재.


불을 켜지 않으면 낮인지 밤인지 구분도 되지 않던 원룸

사실 내 몫의 일을 찾는 것만 어려웠던 것은 아니다. 지방에서 서울로 자리 잡는 동안도 늘 피로했다. 지난 10년간 내게 집은 ‘잠자는 공간’ 딱 그 정도의 개념이었다. 21살에 상경한 이후로 결혼하기 전 29살까지 근 10년을 학사, 불을 켜지 않으면 낮인지 밤인지 구분도 되지 않던 원룸, 퇴근하고 집에 갈 때는 너무 무서워서 달음박 쳐서 들어가야 하는 원룸에 살았다.

학사는 서울로 대학을 간 지역민 자녀들을 위해 지방자치단체가 서울에 지은 기숙사다. 경상남도는 학사가 없어, 제주도에 사시는 할아버지 원적까지 사용하며 탐라 영재관이라는 제주 학사에 겨우 들어갔었다. 학사에서 대학 시절 내내 지내며, 어떤 여름날은 너무 더워 울기도 했고 (정말 문자 그대로 더워서 울었다.) 학회에서 조모임을 하다 늦어져 새벽 1시에 학사 앞에 도착해 이미 셔터가 내려진 문 앞에서 경비아저씨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빌기도 했다. (하지만 학사는 정말 내 생명의 은인이다. 학사가 없었다면 더 가난한 시작을 했을지도 모른다. 언젠간 이 감사함을 기부로 표현해야겠다. 학교로 가던 672 버스 아직도 그립다.)


학사는 학점이 좋아야만 계속해서 머물 수 있었는데, 다들 학점이 좋다 보니 한 번은 학사에서 나가야만 하는 상황이 그려지기도 했다. 부모님은 거제에 있어 당장 머물 집을 보러 오시기 어렵고, 친구와 함께 학교 주변 고시원을 다니며 방을 알아보아야 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고시원’의 내부를 보게 되었는데, 그때의 암담한 기분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방에는 책상, 침대만 겨우 들어가고, (의자조차 없었다. 침대 끝에 걸터앉으면 책상 의자처럼 쓸 수 있으니) 욕실과 화장실은 공용이었다. 복도에 샤워 바구니를 든 학생 한 명이 지나갈 때, 고시원 아주머니와 나, 친구는 일렬로 서서 비켜줘야만 했다. 식당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공간에는, 큰 밥솥 하나와 테이블 여럿이 놓여있었다. 그렇게 월 30만 원. 나라는 사람이 밥을 먹어야만 하고, 잠을 자야만 하는 인간이라는 것에 화가 났다. 참 추운 2월이었다. 다행히도, 나보다 학점이 좋았던 학우가 자취를 결정하면서 다시 학사로 돌아올 수 있었고, 나는 졸업할 때까지 학점관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겨우 취업이 되어 학사를 나가야 할 때도, 집을 구하느라 막막했다. 취업을 한다고 바로 어른이 되는 건 아니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돈은 지난달 월급 이백여만 원. 부모님께서 전세금 5천만 원을 마련해준 덕분에 신림에 원룸을 구했다. 사실 굉장히 큰돈이지만, 서울에서 내 몸 하나 누일 집을 구하기에는 너무 작은 돈이었다. 지금은 5천만원도 어림없을 것 같긴 하다. 겨우 구한 원룸은 햇빛도 들어오지 않아 낮인지 밤인지 구분되지 않던 원룸이었다. 그곳에서는 사실 범죄에 노출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컸다. 신림역에 나와서 집까지 오는 길이 무서워 달음박을 쳐서 집에 들어오기도 했고, 집에 와서도 혹 내 방의 위치가 노출될까 싶어 불도 바로 켜지 못했다.

근 10년간 내게 집은 ‘인간이기에 잠을 자야 하니, 지낼 수밖에 없는 곳’ 딱 그 정도였다. 사실 이 시기가 사회초년생 시기와 맞물려, 대부분의 시간을 (새벽까지) 회사에서 보냈기에, 버틸 수 있었던 것도 있었다.


큰 냉장고가 있는 집

원룸에 지내는 동안 서울에 부모님과 함께 사는 친구 집에 놀러 간 적이 있다. 그 친구 어머님이 냉장고에서 케이크를 꺼내 주시면서 친구와 먹으라고 할 때 왈칵 눈물이 났다.

“나도 거제에 엄마 있는데...”

누가 엄마 없다고 한 것도 아닌데 서러웠고, 큰 냉장고를 가지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내 원룸 냉장고는 너무 작아서 음식을 담아 두면 늘 금방 상하고 늘 텅텅 비어 있었다. 몇 년 뒤, 양희은 선생님의 ‘나영이네 냉장고’ 노래를 듣다, 그때 기분이 떠올라 울고 말았다.

“냉장고에 먹을 게 많은 집에 살았으면 정말로 좋겠네. 맛난 반찬을 품어본 적이 없는 허전하고 외로운 냉장고”


이 감정을 잊고 지내다, 지난 크리스마스이브 남편과 함께 할 케이크를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랜만에 이 기억이 떠올랐다. 남편과 함께 할 음식을 채울 냉장고가 생겼다는 안정감, 배고파서 먹는 음식이 아니라 일상을 즐기기 위한 음식을 살만큼 큰 냉장고를 갖게 되었다는 생각에 날씨가 춥게 느껴지지 않았다.


내 공간의 행복, 첫 신혼집

웨딩홀을 고르고 드레스샵을 고르던 그동안의 결혼 준비는 행복하기만 했는데, 우리가 살아갈 공간을 찾는 과정은 즐겁지만은 않았다. 우리가 모은 돈에 전세대출을 고려해 맥시멈 버짓을 정해놓고 아파트를 찾으러 다녔는데, 마음에 드는 집은 버짓에 한참 넘어서고 버짓에 맞는 집은 한 두 군데씩 아쉬운 것들이 있었다. 출퇴근 시간은 1시간으로 늘어나고, 복도식이라 방 두 개에 햇빛이 들어오지 않거나, 역에서 아파트까지 20분은 걸어야 하거나. 하지만 예전과 다르게 내가 홀로 서울에서 살 공간을 찾아야 한다는 심적 외로움도 없었고, 남편과 함께 우리의 공간을 찾는다는 것 그리고 예전 원룸을 찾을 때보다 버짓이 커져 훨씬 나은 상황의 집들을 볼 수 있다는 것들이 감사하기도 했다.

남편의 발품 덕분에, 원룸에서 처음 아파트로 들어오던 날. 이사 차를 부를 것도 없이, 승용차로 한 번에 옮겨지는 짐의 양이 내 10년을 담고 있었다. 이사가 잦았던 탓에 큰 부피의 살림은 없고, 언제든 포장할 수 있게 몇십 개의 비닐팩을 가지고 있던 내 짐. 집에 도착해 신혼살림 소파에 앉아 아파트 단지를 내려다보고, 서울에서 욕조를 가져본 적이 없어 그동안 못하던 반신욕도 하고. 남편이 기념으로 사 온 와인도 먹으며, 이렇게 서울에 자리를 잡아가는구나 싶던 그날 밤 기억은 따뜻하다. 내가 지난 10년간 가져본 공간 중 최고의 공간에서, 아직은 이 곳이 낯설어 누군가의 집에 놀러 온 것 같기도 하고, 학사와 원룸에 살던 지난날이 먼 옛날처럼 느껴지기도 했던 그날 밤.


그리고 우리 집

남편은 그 집에서 1년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쯤, 이제는 집을 사야겠다며 조금은 더 북쪽에 위치하지만 더 아늑한 아파트를 찾았다고 했다. 이삿날까지 1년은 남았었지만, 우리는 주말마다 새로 이사 갈 아파트 단지를 놀러 가 앞으로 자주 가게 될 음식점, 카페들을 찾고, 아파트 산책로를 걷기도 하고, 아파트 단지에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 집은, 타일은 어떻게 할 것인지, 중문은 어떻게 만들 것인지 하나하나를 고민하게 하며 우리를 설레게 했고, 아파트 단지 바로 옆에 초등학교가 있던데, 우리 아이는 저 학교를 다니겠다며 미래를 이야기하게 만들었다.

이제 남편과 매일 퇴근 후 저녁에 맥주 한잔을 하며 오늘은 어땠고, 내일은 뭘 할지 이야기를 나눈다. 어제와 비슷한 일상들이 켜켜이 쌓이며, 마음의 곳간이 차오른다. 그리고 이제는 힘들었던 예전의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고, 그 덕분에 지금의 일상이 쌓이고 있음도 느낀다. 지금의 우리 집은 당연스레 얻어진 것이 아니라, 그때의 불안했던 나, 새벽 1시에 학사 문이 닫히는 걸 알면서도 조모임을 할 수밖에 없던 나, 신림 원룸이 잠자는 공간 그 이상 이하도 아니게 매일 새벽까지 야근했던 내가 모여 생긴 집이라는 것을 안다. 가끔은 이 행복함에 젖어 그때의 나들을 잊곤 하는데,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참 행복해할 것 같다. 그때의 나를 만날 수만 있다면 따뜻한 밥 한 끼를 해주고 싶다. 그렇게 오늘도 마음의 곳간이 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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