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낳기를 고민할 수 있는 마지막 이유
아이 낳기를 고민할 수 있는 마지막 이유는, 고민하는 과정에서 이야기를 터놓고 나눌 사람이 주변에 많다는 것이다.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주는 사람들
아이 낳기를 고민하는 많은 이유 중에서 나를 계속 걱정하게 만들었던 건 커리어에 대한 고민이었다. 결국 이 글들의 첫 시작도 ‘일’에 대한 고민이었고, 이 글들의 마지막도 ‘일’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친구들에게 아이를 낳고서 커리어가 끊기는 게 아닐까 라는 고민을 말할 때, "내가 옆에 있을게"라는 이야기를 해준 친구들이 정말 많았다. 자신 역시 커리어에 대한 고민이 크다며 이 고민이 나 혼자만의 고민이 아님을 알려주기도 했다. 내가 글을 발행할 때면 매번 첫 번째로 읽고 의견을 주는 친구, 커리어가 끊길 리 없지만 만약에 끊긴다면 같이 사업을 하자는 친구처럼, 모두들 버팀목처럼 나를 지지해주고 있었다.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깨달았던 건, 내가 '경력단절'이라는 고민을 실제 크기보다 키워서 두려워하고, 내가 가진 실력과 별개로 커리어 고민을 크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언니가 실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 어느 회사를 가든 잘 해나 갈 거고, 언니의 사업을 해도 잘할 거 같은데 왜 그렇게 고민하는 거야?"
"무엇이 있으면 덜 불안 해질 거 같아?"
"그 고민은 나도 있어. 정말 공감해!"
경력단절을 옆에서 보고 커서 이를 제 크기보다 훨씬 크고 두렵게 느끼는 것이었고, 친구들과 이야기 나누면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명확히 그릴 수 있었다. 이제는 더 많은 사람들이 회사 밖에서 자신의 길을 만드는데, 커리어에 대한 고민은 그냥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직장인이라면 모두들 죽을 때까지 가질 질문이라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평생직장이 없는 세상에서 커리어가 끊길지 고민하는 대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실력에 대해 기록을 남겨두고, 직장인이 아닌 직업인으로 커나가기로 했다. 그래서 이 글도 쓰기 시작했고, 이 글 이후엔 ‘내 업’에 대해서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부지런히 남겨, 내가 회사와 독립적인 실력을 가지고 있음을 기록해두자고 약속했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이, 아이의 여부와 상관없이 모두들 겪고 있는 고민이라고 말해주는 사람들, 그리고 함께 해결책을 찾아가자고 말해주는 사람들. 내 커리어가 끊기지 않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 대신, 내가 회사 바깥에서 내 이름 석자로 설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고 말해주는 사람들 덕분에, 나를 조금 더 믿고, 내가 나 하나 먹여 살리지 못할까 하는 마음으로 해보기로 했다. 회사 바깥의 우리를 키워보자는 이야기를 하는 순간 커리어에 대한 고민은 한껏 작아지는 것이다.
그리고 여성의 일과 육아의 양립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
‘맘시터’ 이야기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육아와 커리어에 대한 고민이 정점에 달했을 때, 맘시터 정지예 대표님을 만난 적이 있다. 마케팅과 관련하여 썼던 브런치 글이 기회가 되어 만나 뵐 수 있었는데, 몇 번의 만남이 매번 인상 깊었었다. 육아를 하면서 사라지는 실력 있는 선배들을 보면서 경력단절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셨고, 한국 사회의 육아 문제는 정책보다는 비즈니스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명확한 방향성을 가지고 계신 점이 인상 깊었다.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에 대해 고민을 넘어서 해결책을 만들고 있는 대표님과 이야기하며, 이 고민이 나 혼자만 하는 고민이 아니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 고민에 공감하고 해결하기 위해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는 모습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맘 시터라는 플랫폼을 만들고 이를 키우기 위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아이를 낳고서도 엄마가 자신의 커리어를 유지할 수 있도록 세상에 변동을 일으킬 수 있을 거라는 믿음 또한 생겼다.
그리고 지금 내가 다니는 회사는 아직 그러지 못하지만, 다른 스타트업들에서 어린이집을 만들어야 한다는 논의가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정책적으로 풀지 못하는 것에 대해 가정과 주변 인간관계를 넘어서, 비즈니스적으로 풀어내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래도 아이 낳기를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사회가 만들어지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나 또한 버팀목이 되는 것이다.
평생직장이 없는 사회에 대해 직시한 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우선 이 글을 완성하는 것이다. 내 머릿속에서 나 혼자만의 커리어 단절을 고민할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느끼는 고민에 대해서 글로 남겨두는 것.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버팀목이 되고 해결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령 내가 하나의 선례가 되어, 스타트업에서 육아를 잘 해낸 케이스로 스타트업을 선택하는 여성이 고민을 덜 하도록 만들 수도 있고, 평생직장이 없는 사회에서 회사 바깥에서 커리어 플랜 B를 만들어 이런 대안도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하나씩 선례들이 만들어지다 보면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서로 연대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내 주변의 친구들이 그랬듯, 아이를 고민하지만 커리어가 끊길까 두려운 사람들에게 또 다른 케이스로 힘을 주기 위해 버텨줄 것이고 함께 할 것이다.
이번 글은 유난히도 완성하기 어려웠던 글이었다. 친구들에게서 받은 정서적 지지를 한 두 문장으로 풀어내는 것이 쉽지 않았고, 맘시터 대표님과 이야기 나누며 든든해진 마음에 대해서도 글로 풀어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리고 나 역시 하나의 케이스가 되어 버팀목이 되겠다는 부분에서는 ‘내가 뭐라고..’라는 생각까지 들어 글 맺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의 생각을 기록해두기로 했던 프로젝트의 마무리를 위해 이렇게 발행 버튼을 누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