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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da Jan 17. 2021

어머님의 돌봄 약속

아이 낳기를 고민할 수 있는 세 번째 이유

편을 통해서 어머님이 우리 아이를 키워주시겠다고 약속하셨음을 여러 번 들은 적이 있다. 어머님의 돌봄 약속이 없었다면 나는 커리어가 끊길 것을 두려워해 아이를 낳지 않음을 결정했을지도 모른다. 결혼 전에도 아이를 낳은 이후를 상상해보았을 , 거제에 있는 엄마가 다른 일을 제쳐두고 서울에서 지내기도 어려웠고, 그렇다고 우리 부부 모두 회사를 가고 베이비시터에게만 아이를 맡기는  또한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있는 결정은 낳지 않는 것뿐이었는데, 어머님이 아이를 돌보아주시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아이 낳음을 고민할  있게 되었다.


 자식을 직접  키워서, 손자 손녀는 내가 직접 키워주마

어머님은 지금도 학원 수학 선생님으로 일하시는데, 오빠가 사람 손이 필요로   직접 키우지 못하셨다고 한다. 남편이 워낙 따뜻하고 배려심 깊은 사람으로 자라주어 오빠를 키우는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가끔씩 어머님이 아직도 미안하다며 말씀하시는 에피소드들에는 여성의 일과 육아의 양립이 정말 가능한 것인가 싶은 에피소드들이 가득하다.


담배 피우는 베이비시터

어머님의 일과 육아가 양립되는 동안,  남편은 아주버님과 함께 베이비시터의 손에 컸는데, 베이비시터는 자주 바뀌었다고 한다. 남편이 아직도 강렬하게 기억하는 장면은, 어떤 할머니 베이비시터가 집에서 담배 피우던 모습이라고 한다. 가족이 함께 하던 나의 공간에 처음 보는 할머니가 와서 담배를 피우며 남편을 바라보던 장면. 어머님은 할머니 베이비시터의 담배 사건을 뒤늦게 아시고 슬피 우셨다고 한다. 그리고는 운영하시던 학원 공부방의 작은 쪽방에서 오빠와 아주버님을 직접 키우면서 학원 수업을 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남편은 어렸을  홀로 집에서 배가 고파 초콜릿을 허겁지겁 먹느라 체한 후로는 초콜릿을 먹지 않는다. 남편은 커가면서 대부분의 일들은 거의 잊고, 초콜릿을 먹지 않는 작은 식습관에만 그때의 사건들이 남아있다. 하지만 어머님은 아직까지도 그때의 이야기들을 하신다. 아이는 금방 잊지만 부모는 잊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


공부방에 쪽방을 만들기도 하면서 일과 육아를 양립했지만, 그러면서도 남편이 학교를 들어가면서 일과 육아의 양립이 어렵다고 판단되자,  년간은 일을 하지 못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나중에 오빠가 학교생활을 하는 데에도 문제없을 만큼 나이가 들자 그때가 되어서야 다시 학원을 하실  있었다고 하신다. 베이비시터를 이용하면서 아이의 유아기 시절 일과 육아를 양립하더라도, 초등학교 입학 때와 맞물려 일을 그만두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어머님의 이야기였다. 다행히도 어머님이 수학교사라는 전문 능력, 회사 취업과 관련 없이 창업으로 해결할  있는 일을 했기에 지금까지 일을 하실  있었던 것이고, 만약 회사에 다니는 상황이셨다면 어머님도 경력단절로 이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어머님은 그때의 일들이 마음의 빚처럼 남아, 내가 아이를 낳게 된다면 키워주시겠다고 하셨다고 한다. 더욱 감사한 것은, 어머님은 자신이 키워주시겠다는 말을 내게 직접적으로 하신 적은 없는데,  말이 혹여라도 아이 낳길 강요하는 말이 될까 걱정해서다. 결혼한 지 2년이 넘어가지만, 어머님, 아버님은  번도 아이를 언제 낳을 계획이냐고 물어보신 적이 없다. 남편을 통해서만 너네가 아이를 낳는다면 내가 키우겠다 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어머님의 은퇴와 맞바꾸는 육아

어머님의 돌봄 약속이 너무 감사하지만, 어머님이 아이를 키워주신다는 말은  ‘어머님의 은퇴 의미한다. 학생에게 받은 편지를 카톡 프로필로 해놓으시는 어머님. 어머님과 대화를  때면 어머님이 지금 하시는 일을 사랑한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런 어머님은 나의 경력단절 대신 어머님의 은퇴를 선택하는 것이다.  다른 여성의 희생 없이 아이를 키우는 것은 가능하기는 할까.


좋은 베이비시터를 만나는 것을 ‘이모님 복’이라고 부르는 사회

베이비시터 서비스가 아무리  되어있다고 한들, 남편이 겪었던 담배 피우는 베이비시터, 뉴스에서 접하는 아동학대 사건 등을  때면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는 기분이다. 모든 분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나의 속도와 방향을 바꾸면서까지 겨우 결정 내린 소중한 아이를 누군가는 학대해도  못 하는 존재라고 치부한  대하는 것을 보면, 아이를 낳고서 일터로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 그리고 그런 일이 발생하더라도 단죄하지 않고, 그런 일이 계속 발생하도록 방관하고 있는 사회에도 좌절감을 느낀다.


이모님 복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베이비시터를 쓰더라도 누군가 옆에서 봐줄 사람이 필요하다, 지인과 먼저  년은 함께 일해본 검증된 베이비시터분을 모셔와야 한다는 이야기처럼 육아 시장의 정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를 들으면, 아직은 베이비시터 서비스가 가정의 돌봄을 대체하는 것은 어려운  같다. 좋은 베이비시터를 만나는 것이 ‘이모님 복’에 비유될 만큼 소중한 것이라면, 좋지 않은 베이비시터를 만날 확률은 더욱 높다는 말이니. 무조건 100% 양질의 서비스가 제공되어야만 하는 분야가, 복에 치부될 만큼 ‘확률의 게임 들어간 사회에서는, 가족이 도와주지 않으면 아이 낳겠다는 결정을 내리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핵가족단어가 나온 지 50년이 넘어가는 사회의 현실이다.


아마 나는 어머님 덕분에 육아휴직  빠르게 일터로 복귀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만약 어머님이 도와주실  있는 상황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아이 낳겠다는 고민을 시작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각자의 해결책을 찾아서 아이를 낳아야만 하는 사회에서, 어머님의 돌봄 약속은 아이 낳기를 고민할  있는 가장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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