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통의 전화, 그리고 봄비

덕분에 살아냅니다

by 글장이


충북 단양 장안사. 일 년 전쯤 어머니는 그 곳에 방을 하나 얻어 한 달간 머물렀습니다. 가족과 불화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시험이나 글을 쓰기 위함도 아니었지요. 홀로 고요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에 마침 먼 친척이 작은 절 하나를 품고 있어 다니러 갔던 겁니다. 비슷한 나이 할머니 한 분도 계시고 음식도 입에 맞아 잘 지내다 오셨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어머니는 그 곳이 그리웠나 봅니다. 며칠 전부터 한 번 더 다녀오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지요. 아버지의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짐을 꾸렸습니다. 오늘 아침, 일찍부터 차를 몰고 충북 단양 장안사에 어머니를 모셔다드리고 왔습니다.


가족 나름의 철학이 있습니다. 서로에게 해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각자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자. 아내와 저도 부모님 눈치 보지 않고, 아버지와 어머니도 저희 내외한테 애쓰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서로가 애틋하게 잘 챙기며 살지요. 아웅다웅 티격태격 사람 사는 소리가 날 때도 많지만, 그래도 무슨 일 생겼다 하면 맨 먼저 가족부터 챙깁니다.


두 시간 반쯤 걸렸습니다. 왕복 다섯 시간이네요. 도로가 막히지 않아 편하게 다녀왔지만, 오랜만에 장거리 운전을 했더니 몸이 찌뿌둥했습니다. 아마도 먹구름 잔뜩 낀 하늘과 봄비 탓인 것 같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커피 한 잔 마시며 책상 앞에 앉았지요.


휴대전화 벨이 울립니다. 친근한 분입니다. 언제 한 번 만나서 밤새 얘기 나누고 싶은 사람. 뺀질하지 않고 가식도 없습니다. 배움이 짧고 인생도 거칠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자신의 삶을 일궈내고 있습니다. 전화를 받고 인사를 건넸지요.


"몸이 아파 쉬고 있습니다. 기분도 울적하고 힘도 없었는데 작가님 얘기 떠올라서 이런저런 글 쓰고 있습니다. 콘티도 작성해 보고, 책도 읽고요. 마음 편안해지고, 문득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간 지나면 이 기분 잊혀질까 싶어서 감사하다는 말씀 전하려고 전화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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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에 들러 음료수 하나를 샀습니다. 횡단보도 앞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빗줄기는 약해졌지만 여전히 시커먼 구름이 가득합니다. 봄비를 머금은 구름은 그 색깔도 연분홍이어야 하는 것 아닌가 엉뚱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밤에는 문장수업을 진행합니다. 저의 말과 글이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어깨에 힘 들어가게 만듭니다. 대충 말할 수 없고, 대충 쓸 수 없고, 대충 살아서는 안된다는, 묵직한 힘. 덕분에 저도 오늘을 살아냅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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