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감을 나누는 걷기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걸을 때 나눌 수 있다.

by 보름달

지독한 몸치다. 아니 몸을 움직이는 것을 에너지 낭비라고 생각했던 사람이다. 침대와 한 몸이 되어 물아일체를 진하게 누릴 수 있는 사람이다. 아직도 이게 게으름이구나를 감탄하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은 지녔지만 20, 30대에 움직이지 않았던 몸이 40대에 들어서부터 삐꺽거리기 시작했다. 우선 가벼운 물건을 들려고 굽힌 허리가 삐걱했다. 통증 주사를 맞고 파스로 등을 도배한 채 일주일을 지냈다. 그런 일이 일 년에 한두 번씩 일어나자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세도 좋지 않은 데다가 체력의 한계를 모르고 몸을 막 쓰는 사람이라 뭐 어쩔 수 없지 하면서도 한번 아프면 너무 오래가서 생활이 되지 않을 정도가 되어서야 걷기 시작했다. 출퇴근길을 이용해서 하루 1시간 30분 정도씩 걷는 것을 습관처럼 만들었다.

걷는 것을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한 의무감으로 생각하는 단계에서 이젠 웬만한 거리는 걷는 것이 즐거워진 단계까지 이른 나는 종종 딸들을 끌고 나간다. 휴일에는 집 근처 둘레길을 걷고 야자를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가서 같이 걸어온다. 그 시간에 정말 별의별 이야기가 오간다. 나에게는 남편이자 아이에게는 아빠인 가족 중 유일한 남자 흉을 보는 것을 시작으로 학교에서 있던 사소한 일, 속상했던 일, 자랑스러웠던 일, 이상한 선생님 흉으로 이야기꽃을 피운다. 평소 저녁 식탁에서 마주 앉아서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하는데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을 때는 좀 더 깊은 곳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아이가 어렸을 때 "마주이야기"가 육아 이야기에서 큰 유행이었다. 아이와 대화를 통해 아이가 한 말을 그대로 적거나 적게 하는 것, 아이의 말이 글이 될 수 있는 경험을 만들어주자는 것이 그 취지였던 것으로 기억난다. 들어주면 저절로 교육이 이루어진다는 것이었다. 나는 "마주이야기"가 "대화"의 순우리말인 것을 모르고 마주 앉아서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으로 착각했었다. 그래서 마주 앉아서 그 눈을 바라보면서 이야기하려고 애썼다. 하여간 무식하면 몸이 고생이다. 그러면서 아이가 하는 순수하고 웃기며 감동적인 말을 받아 적어 놓았다. 마주이야기는 그렇게 나와 아이를 친밀하게 만들었고 아이의 말을 적은 마주이야기 공책은 지금도 하나의 즐거움이 담긴 추억이 되었다.

큰 아이들을 만나 가르치면서 마주 보면서 이야기하는 것을 포기했다. 내 아이 역시 크면서 눈을 바라보고 이야기하데 있어 깊은 실패감을 맛보았다. 무섭단다. 마치 그 속을 꿰뚫어 보는 느낌이라 오싹하고 뭔가 다 말해야 하는 것 같은 부담감이 느껴진다나 뭐라나. 아니 뭐 나는 이렇게 생기고 싶어 생겼냐는 항변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마주 앉아서 진지하게 오래 이야기하는 것을 못 견디어했다. 그런 아이들이었기에 어느 순간 눈을 마주치면서 하는 대화 대신 손을 잡고 나란히 걸었다. 묻지도 않고, 이야기를 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는데 걸으면서는 방언이 터진 것처럼 어느새 조잘조잘거리는 모습을 보았다. 이런저런 이야기, 부모님의 부부싸움 이야기와 부모님과의 갈등, 친구 사이에서 있는 고민까지 스스럼없이 말한다.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방법을 바꿨다고 그리 편하게 말할 수 있다니..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이제는 고학년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거나 졸업생들이 찾아오면 마주 보고 앉지 않는다. 나란히 앉아서 하늘 보고 이야기한다. 마치 타인처럼, 가까운 타인처럼 말이다. 그러면 아이는 혼잣말하듯이 속 깊은 이야기까지 한다. 그럴 때는 그냥 듣는다. 아주 잘 들어준다.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것, 걷는 몸을 느끼면서 말하면 참 편안하다. 들여다보지 않고 이야기하는 것이 서로를 기다려주는 여유이지 않을까. 꼭 뭔가를 말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아니라 그냥 함께 하니까 툭툭 꺼내놓기 쉬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와 걷는 시간은 행복하다. 혼자 걷는 것도 좋지만 아이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다 보면 어른과 아이가 아니라 동등한 위치에서 하나의 방향을 향해 같이 걸어가는 동료애가 진하게 느껴진다. 사실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누군가 내 곁에 있다는 믿음이 생겨 위안을 얻기도 한다. 삶이라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길을 걸어가는데 누군가 옆에 있다는 것은 어찌 좋지 아니한가. 대화가 어렵다면 나란히 걸어보라고 자꾸 함께 걸으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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