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은 이제 그만!
사랑은 쌍방향이어야 진해진다.
얼마 전, 생일이었다.
가난했던 어릴 적에 생일은 일 년에 한 번 내가 갖고 싶은 것을 받을 수 있는 날이었다. 일 년 내내 손꼽아 기다려서 정말 원하는 단 하나의 선물을 받는 날이라서 특별했다. 아주 비싼 것도 아니었지만 받기 전에 갖는 기대감과 받고 나서의 기쁨과 만족감은 어디에도 비할 수 없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그 기쁨은 점점 감소되고 나이만 먹는 것 같아 생일에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 않게 되었다. 그럼에도 지금도 가족들에게 받고 싶은 것을 말하고 원하는 것을 받는 전통은 유지되고 있다. 선물의 개수도 늘었다. 우리 집 딸들에게도 용돈을 주기 시작하면서 선물을 챙겨 받았다. 금액과 상관없이 카드와 함께 선물을 꼭 주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사랑의 마음만 가지고 안된다고, 너희 생일에도 사랑하는 마음만 주면 좋겠냐며 약간의 협박성 멘트도 곁들였다.
생일 전 주말에 친정식구들까지 모여 밥을 먹고 초를 불었다. 그러나 막상 생일날에는 아이들마다 스케줄이 있어 간소하게 남편이랑 밥을 먹었다. 큰 아이는 학원 갔다가 밤 11시 정도 집에 오고, 둘째는 시험 끝난 기념으로 한강에 가서 놀다가 10시가 넘어 들어왔다. 아침에 생일 축하한다는 이야기는 살짝 들은 것도 같지만 카드도 없고 선물도 없었다. 내심 기대했나 보다.
‘요놈들, 봐라.’
속으로 부아가 치미는 것을 참고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쿨한 척을 나름 잘하니까. 며칠 기다리면 주겠지 하는데 깜깜무소식이다. 부글부글 끓어오는 것을 넘어서 섭섭한 마음까지 들어서 다른 트집을 잡아서 짜증도 내고 혼도 냈다. 좁고 쪼잔한 마음을 들킬까 봐 애써 생일을 안 챙겨서 그런 것은 아니라고 스스로 합리화하기도 했다. 일주일을 참고 나니 바닥을 보일 수밖에 없었고 결국 버럭 하게 되었다.
“니들은 친구 생일 선물은 미리 꼬박꼬박 챙기면서 엄마는 일주일 지나도 안 챙겨주냐?! 아침에 잠깐 축하한다고 하고 놀다가 10시 넘어 들어오지 않나, 어이가 없어서 진짜. 선물은 둘째 치고(결코 둘째 칠 수 없지만) 카드 한 장 안 주는 것이 말이 되냐?! 엄마가 아주 만만하지? 엄마한테는 대충 해도 되는 거지? 올해, 선물 필요 없어. 카드도 필요 없어. 대신 니들도 기대하지 마!”
아이들의 변명을 하나 듣지 않고 내 안에 쌓여있는 서운함을 토해냈다. 어찌나 뜨거운지 뱉어내는 나조차 데일 듯하였으나 뒤도 안 돌아보고 쌩하고 나와버렸다. 진작 참지 말고 성질대로 하면 될 것을, 뭘 그리 쿨한 척을 했는지 억울한 마음마저 들었다. 그리고 잊었다. 역시 난 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지난 금요일, 둘째와 함께 집에 들어갔다.
“Surprise!”
첫째가 풍선으로 실컷 장식하고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폭죽을 터트리면서 아빠와 함께 나를 맞이하였다. 둘째와 합작이라면서 늦어서 미안하다고 내가 좋아하는 짱구 과자 2 봉지와 선물을 예쁘게 장식해두었다. 생일 이 주나 지났는데 하면서 황당한 표정을 지었더니 갑자기 첫째가 눈물을 흘렸다. 미안함의 눈물인지, 엄마의 분노를 그대로 받은 서러움의 눈물인지 알 수 없었지만... 아이도 나도 마음이 풀어져버려서 한참을 웃었다. 그동안 엄마의 분노에 서러웠다고 둘째도 또 울고... 아.. 뒤끝 작렬인 것은 아무래도 날 닮았나.
가끔 부모들은 착각한다. 부모가 아이를 엄청 사랑해주면 우리 아이도 다른 사람을 사랑해줄 것이라고, 아이를 배려해주면 아이가 나가서 다른 사람을 배려해줄 것이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 있다. 고기도 먹어 본 놈이 그 맛을 안다고 하지 않는가. 배려를 해준다고 아이가 스스로 깨닫고 다른 사람에게 배려를 하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구체적으로 배려를 요구해야 하고 사랑 표현 역시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절로 잘 자라서 시키지 않아도 잘하는 아이도 있겠지만 못 하는 아이가 더 많으리라 생각한다. 무거운 것을 양손에 들었을 때 문을 열어줄 수 있는 아이, 힘들어하는 부모의 어깨를 두드려줄 수 있는 아이, 맛있는 것이 있으면 먼저 부모 입에 넣어줄 수 있는 아이가 공주ㆍ왕자처럼 일방적으로 받는 아이보다 사랑스러운 것은 당연하다. 작은 아이들이 주는 사랑과 배려는 그 무엇보다도 크게 느껴져서 미운 마음이 싹 가시고는 한다.
아이들은 부모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믿기에 부모는 상대적으로 덜 챙겨도 된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친구와 주변 사람들을 알뜰하게 챙기면서도 자신을 늘 이해해달라는 아이들이 짠하기는 하지만 부모를 먼저 챙겨야 함도 배워야 한다. 효자와 효녀를 키우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서로 진하게 사랑하기 위해서는 짝사랑이면 안되지 않을까.
단방향의 사랑은 진해질 수 없고 일방적이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희생적이기도 하다. 이제 짝사랑은 접고 서로를 바라보고 진하게 표현함으로써 사랑을 더 많이 만들어 내면 어떨까. 이제 더 깊게 서로를 사랑하는 시간을 만들었으면 한다. 짝사랑은 이제 그만하고 서로를 진하게 사랑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