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적당한 거리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적절한 거리가 단단한 관계를 만든다.

by 보름달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과의 관계를 만들어 갈 때마다 여지없이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냥 좋다는 마음으로, 그 사람을 얼른 알고 싶어 하는 열정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 사람과의 거리가 어디까지가 생각하기보다는 내가 다가서서 진심을 보여주면 금세 친해질 것이라며 참으로 뜨겁게 다가갔다. 나의 순수함은 날카로운 외모로 인해 보이지 않았고 결국 한걸음 물러서는 상대에게 상처받았다. 상대의 마음도 모습도 살펴보지 못한 채 좋은 관계라는 불에 뛰어드는 불나방이었다. 결국 '거부' 혹은 '부담'으로 밀어내는 것에 상처받고 물러나기를 참 많이도 했다. 상처받고 나면 다신 그러지 않아야지 했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좋은 사람에게 직진 모드로 들이댔다. 그래서 얻은 사람도 있고 그래서 잃은 사람과 상처받은 내 마음도 있다.

열정이 사그라들고 시간적 여유가 상대적으로 사라져 버린 순간부터였을까. 불로 뛰어들기에는 에너지가 부족했고 상처를 감당할 자신이 점점 없어졌다. 그러다 보니 상대를 관찰하고 탐색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섭불리 한걸음을 내딛기보다는 조심히 살펴보았다. 상대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적절한 거리가 필요함을 그때서야 깨달았다. 참 늦게도 알았다. 그가 원하는 마음을 알기 위해, 부담을 주지 않고 다가서기 위해, 존중하면서 친해지기 위해, 침범이 아니라 옆에 있어주는 것이라는 믿음을 주기 위해 거리가 필요함을 알았다. 물론 사람마다의 그 거리가 각각 있다는 것도 말이다. 요즘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 관계를 형성할 때 먼저 어디까지 적절한 거리인가를 가늠해본다. 물론 내 주위의 모든 사람과의 거리를, 간격을 잘 유지하려고 애쓴다. 침해하지도 침해받지도 않는 거리에서 상대를 존중하고 지켜주려 늘 노력한다. 사람과의 관계가 조금 틀어지거나 다툴 일이 생기면 먼저 그 사람과의 거리가 유지되지 않았나 하면서 마음을 내려놓는 시간도 갖는다. 평온하게 산다는 것은 늘 내려놓는 연습을 바탕으로 한다.


아이와의 관계도 그렇지 않을까. 부모로서 아이를 키우고 내 아이를 잘 아는 사람은 부모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특히 부모에게 많은 이야기를 조잘거리는 아이의 경우 그 믿음은 커진다. 아이의 성향, 성격, 행동 그리고 밖에서의 아이 모습도 다 알 수 있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아이와 나의 물리적인 거리와 심리적인 거리를 의식하지 못하고 다가서는 경우도 많다. 부모니까 당연하다고 아이의 영역에 성큼 들어서지 않는가. 다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다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부모의 바람일 뿐이고 욕심일 뿐이다. 아이는 다 말하는 듯 속에 담아두는 이야기도 꽤 많다. 좋은 딸, 착한 아들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자신의 일부는 한 구석에 잘 두고 보여주지 않을 수도 있다. 속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바라는 아이상을 보여주고 싶을지도 모른다. 딸이 다 이야기한다고 생각했다. 워낙 구체적으로 너무 많은 말을 하는 아이라서 딸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안다고 믿고 있었다. 나중에서야 엄마인 나에게 부끄러운 딸이 되고 싶지 않아 이야기하지 않은 부분도 있고 지나치게 걱정하고 개입할까 봐 못한 이야기도 많았음을 늦게서야 알아차렸다. 나는 매사 왜 이렇게 늦게 알고 늦게 깨닫는 것인지 알 수 없다. 한동안은 내가 아이를, 아이 일을 다 알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렸고 어떤 부분에서는 지나친 개입으로 아이를 힘들게 하기도 했다. 개입이라는 것은 내 방법만 옳다고 그대로 말하고 행하라는 지시였을지도 모른다. 늘 물리적인 거리, 심리적인 거리가 필요하다고 외쳤을 뿐 실제 나는 참 많이도 침범하고 아이를 곁에 바짝 두려 했다. 어리석다.

그렇다. 아이를 존중하기 위해서는 아이의 영역을 지켜주어야 한다. 아이와의 거리를 두되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조금 떨어져서 믿음으로 지켜봐 주어야 한다. 그 간격이 남보다는 좁을 수 있지만 아이가 원하는 만큼 또 내가 필요한 만큼은 유지되어야 할 것이다.


부모라는 이름이기 전에 우리는 한 사람의 어른이다. 아니 한 사람이다. 우리 아이 역시 내 아이 이기전에 한 사람이다. 그럼 사람으로서 서로를 바라봐주는 적절한 간격을 찾아내고 지켜주고 유지해야 하지 않을까. 서로 마음이 상했다면 누군가 먼저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거나 미묘하게 그 공간에 발을 넣은 것일 것이다. 관계를 잘 맺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사람과의 간격이 어느 정도 적당한지는 가늠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게 잘 유지해나가는 것은 정말 필요한 것 같다. 그게 부모 자식 간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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