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들의 두 가지 운명.
설아.
나무 꼬챙이처럼 비쩍 마른 몸으로 대기실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있는 스무 살 여자 아이.
그 순간 내 눈에 비췬 설아는
눈 덮인 들판을 비틀거리며 서성이는 외로운
늑대 한 마리였다.
추위와 허기에 지쳐 있는 늑대는, 이제는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듯 텅 빈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설아를 상담실로 데려온 여자는 설아의 새엄마였다.
그녀는 설아 아빠와 2년 전 재혼했고
재혼한 남편과 설아, 그녀와 그녀의 초등생 두 딸들이 한 집에서 같이 산다고 했다.
그녀는 말끝마다 우리 딸은 이런데 설아는 이래요.
우리 딸은 이런데 설아는 왜 이럴까요..., 하며 그녀의 딸들과 설아를 비교했는데
그것은 그녀의 습관적인 말투인 듯 보였다.
그녀는 내게설아가 게임 중독에서 벗어나
취업할 수 있도록 상담을 해달라고 했다.
밥도 먹지 않고 16시간을 게임에 몰두하는 설아.
컴퓨터 전원 버튼을 뽑아버리면
미친 개처럼 달려든다고 했다.
그녀와 대화하며 내가 느낀 건
설아가 돈을 벌어 어서 자신의 집을 나가줬으면 하는 것이 그녀의 진짜 바람인 것 같았다.
그렇게 새엄마는 설아를 맡겨두고 센터를 나갔다.
상담센터에서 늑대들은 단골 손님이다.
그들은 부모 손에 잡혀
이곳에 끌려와
무기력한 얼굴로
간수를 쳐다보듯
나를 보곤한다.
...나는 설아를 보며 어색하게 입을 열었다.
“설아, 추워?”
“더워요.”
“밥 먹었어?”
“배 안 고파요.”
“아픈데 있어?”
“...저기 선생님 상담 안 해요? 빨리 하고 끝내요.”
이 여자가 상담은 안 하고 계속 이따위 질문만 하는 거야? 하는 짜증스런 눈빛으로
설아가 나를 보았다.
설아와 상담을 해야 할까?
뭐를 위해서?
취업을 위해서?
생존이 필요한 아이에게 취업이 필요한가?
“뭐 하고 싶어?”
“...네?”
“나랑 여기서 뭐하고 싶어?”
“...”
“여기선 네 엄마가 원하는 거 말고 네가 원하는 거 할거야.”
부모와 심리적으로 연결이 끊어진 늑대는
자연의 섭리에 따라
굶주린 야생 짐승들의 먹잇감이 된다.
무리 속에 있는 늑대보다
무리 속에서 떨어져 나와 혼자 들판을 헤매는 늑대가 훨씬 사냥이 쉬운 법이다.
자신을 보호할 수 없는
방어력이 제로인 그런 늑대는
떼를 지어 공격하지 않아도 된다.
구지 힘을 쓰지 않아도
손쉽게 늑대의 목숨을 끊어놓을 수 있다.
혼자가 된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보면... 티가 난다.
그런 아이들에겐 함부로 해도 될 것 같은, 막 해도 될 것 같은 분위기가 있지 않은가?
학창시절 부모가 이혼했거나
외조모 밑에서 자란 애들을 보면
쉽게 아이들의 따돌림, 공격의 대상이 되곤 한다.
혼자 된 아이들의 눈빛엔
버려진
거절된
깊이 상처받은 것 같은 영혼의 표정이 있다.
보이지 않지만
느껴지는
망가진 분위기.
그런 느낌을 짐승들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린다.
오래 전
센터에서 만난 젊은 여자는
부모님이 이혼을 했고
바쁜 어머니 밑에서 자라면서 늘 외로웠다고 했다.
여자는 인터넷에서 사람을 만나
모르는 남자와 잠자리를 가졌는데
관계가 끝난 후
그 남자가 다른 남자들을 불렀고
그녀는 그 자리에서 수십 명의 남자들에게 강간을 당했다.
여자는 미끈거리는 뱀이 몸에 기어다니는 것 같은 환각에 시달렸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늑대가 들판에 버려져
홀로 있으면
그 늑대의 몸은 물론이고
영혼까지 밟아 죽이는 것
그것이 인간이다.
어릴 때 부모와의 끊어짐은 아이들의
가장 깊은 곳
자신의 근원 어딘가에
상처를 남긴다.
설아에게도 그런 느낌이 있었다.
훼손된, 망가진... 아이.
그런 느낌은 그 아이의 눈과 표정, 행동
온몸을 통해 내게 전해져온다.
“아빠도 날 버렸는데 내가 왜 나를 버릴 수 없는 건데요!”
게임 중독으로
자신의 삶을 내팽개친 설아는
마치 눈으로 그렇게 내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잠시 고민하던 설아가 입을 열었다.
“자도 돼요?”
...그렇게 설아는 소파에서 한 시간을 쓰러져 잠을 잤다.
늑대들도...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한다.
먹잇감을 구하기 위해
주변을 헤매고 다닌다.
게임, 성(sex), 마약, 술, 포르노, 폭식, 친구들과의 일탈...
그런 것들은 늑대가 정서적으로 살기 위해 찾은 먹잇감이다.
부모의 관심, 사랑이라는
밥이 아닌
불량식품으로 연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살기 위해 먹었던 그 불량식품은 곧 자신의 몸에 독이 된다.
게임은 설아에게 정서적인 밥이다.
그것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다.
부모들은 그것이 그들에게 그토록 절실한 이유를 알지 못한다.
부모들은 아이가 집착하는 그것을 끊고
아이가 해야 할 일들을 스스로 찾아 하길 바란다.
아이가 살기 위해 했던 것을 빼앗고 아이가 살기를 바라는 것이다.
외로운 늑대들의 운명은 두 가지다.
짐승들에게 발견되어 그들의 발톱에
몸과 영혼을 수십 번 찔려 죽거나
죽는 대신
스스로 자신의 몸과 영혼에
독을 집어넣는 것.
그들이 다시 살아날 길은 없는걸까?
심리적 고아로 사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건강한 무언가와 다시 연결되는 것이다.
마음으로.
부모, 좋은 친구, 선생님, 애완견... 같은 따뜻한 무언가와 다시 연결되는 것이다.
자녀와 대화할 수 있는 부모는
자녀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 연결은
자녀의 사춘기, 방황, 혼돈의 시절에
자녀가 붙잡을 수 있는 빛줄기가 된다.
그런 연결 없이
아이가 다시 평범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나는 생각한다.
한 시간을 아무 말 없이 자고 나서
설아는 센터를 나갔다.
그 이후에 설아는 센터에 잘 나와주었고
설아와 나, 우리는.... 작전을 짜기 시작했다.